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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두고 사귄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생리할 때 여자가 생리대를 몇 개나 쓰게?"

고심하던 끝에 나온 대답은 그동안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지 못했는지 여실히 확인하게 해주었다.

"두 개나 세 개 정도 쓰나?"

'여자는 한달에 한번 마법에 걸린다'는 문구가 광고에 등장했을 무렵부터 월경, 혹은 생리한다는 표현은 '마법에 걸렸다'는 말로 '순화'돼 표현됐다. 월경을 겪어보지 못한 남성들은 여자가 한달에 한번 마법으로 괴로워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한달에 한번'은 한달에 '하루쯤'으로 해석하게 만들기도 했다.

▲ '내 몸을 사랑하자는 의미'로 확대된 8회 월경페스티벌
ⓒ 이지영
여기서 광고를 탓할 이유는 없다. 우리사회에서 광고에서 얻는 월경에 대한 정보가 밖으로 표현되는 정보의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생리에 대해 알고 싶다면 관심가질 만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9월 9일 시작해 23일까지 서울 인사동 쌈지길과 홍대 앞 클럽에서 열리는 제8회 월경페스티벌이 바로 그것이다.

'바빌로니아 언니'의 기도 "부디 이 병을 거둬가소서"

'여성으로서 겪어야만 하는 고통이 제 몸을 파고드나이다. 신이시여, 부디 제게서 이 병을 거둬가소서.

기원전 3000년경 바빌로니아 여인이 토기판에 새겨놓은 내용이다. 몸을 파고드는 고통, 신에게 기도할 정도로 간절했던 바빌로니아 언니의 고통을 여성이라면 아마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생동안 약 450번이나 되는 생리를 경험하는 여성의 경우에는 평균 월경일수를 5일로 잡았을 때 2550일이나 월경을 한다.

그만큼 생리는 여성의 일생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생리 현상'이다. 다행히 세월이 흐르며 각종 진통제와 치료법이 개발돼 여성의 고통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상태다. 그렇다면 월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에 비해 얼마나 발전했을까?

대학생 이모(24)양은 생리 때마다 바깥 활동이 어려울 정도다. 생리 전에 우울증이 생겨 거울을 보기가 싫고 혼자서 울기도 한다. 그러나 진통제를 먹는 것 말고는 딱히 치료를 받지 못한다. 월경전기증후군이라는 증상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괜히 혼자만 유난인 것 같아 웬만하면 그냥 내색을 하지 않고 참으려고 한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한 직장인 여성은 생리휴가가 근무사항에 명시돼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피가 철철 나도 근무해라'하는 식의 모욕적인 언어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 생리할 때 여성의 고통을 표현한 공연장면.
ⓒ 이지영
이러한 사례들은 생리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의 이해가 여성의 현실과 동떨어진데서 오는 현상이다. 또한 여성 자신이 생리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다 사회적인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부족하다는 것까지 포함하면 결국 '바빌로니아 언니'의 고통은 계속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고통은 이제 몸을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파고든다.

S라인 너만 잘났냐. 통통하고 야무진 내 몸도 잘났다!

올해 8회째를 맞는 월경페스티벌은 과거 젊은층들이 많이 모이는 신촌, 명동 일대에서 열렸던 것과 달리 올해엔 전통의 거리 인사동에서 개최됐다. 그만큼 참여자들의 연령층도 다양했다.

올해 거리행사의 주제는 '자화자찬'. 그동안 월경이라는 좁은 의미 안에서 치러졌던 행사를 올해엔 여성의 몸이라는 넓은 범위로 확대했다. 생리를 부끄러워하는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고 나아가 자신의 몸을 사랑하자는 자신감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 '생리대에게 말걸기' 행사. 그동안 감추려고 했던 생리대, 이젠 펼쳐보자!
ⓒ 이지영
우리 사회에서 성공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외모다. 특히 여성은 밖으로 보이는 얼굴과 몸매가 상품화되거나 심지어 뒷담화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정작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런 뜻에서 올해 월경페스티벌의 주제인 자화자찬은 의미심장하다.

TV에서, 혹은 회사, 거리에서 나를 보고 말하는 내 몸이 아닌, 내가 말하는 내 몸에 대한 아름다움을 칭찬해보는 것, 이 칭찬은 내 몸과 자아를 긍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보다 넓은 개념의 여성성을 나타낸다.

그 안에서는 브래지어도 '올인원'(몸에 달라붙어 몸매의 선을 살려주는 의류)도 필요하지 않다. 예쁜 모양의 가슴을 만들기 위한 브래지어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고려한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 이제 자유롭게 입고 벗지 못하게 됐다. 다른 사람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나의 몸이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시간을 잠시 잊고,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나의 가슴에게 숨을 쉴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23일 저녁 홍대 롤링홀에서는 가슴에게 숨 쉴 기회를 주고 '내 몸'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노브라 파티'가 열린다. 이밖에도 편안한 소통의 자리를 위한 파자마파티도 곁들여진다.(월경페스티벌 홈페이지 참고 http://mensefest.org/)

성관계에 있어서도 이해는 필수

▲ 자신의 성감대에 스티커를 붙이는 행사. 당당한 성을 즐기기 위한 참여위주의 행사가 많이 마련됐다.
ⓒ 이지영
'남자와 생리대는 겪어봐야 안다'는 문구도 있듯이 생리대와 남자는 얼굴 마주하기 힘든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닮은 존재이기도 하다.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점과 여자를 무척 귀찮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좋은 생리대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새는 것을 방지하는 꼼꼼한 옆선과 부드러운 촉감이라면 남성의 경우는 섬세한 배려와 철저한 준비가 첫번째 기준일 것이다. 여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끄러움에 앞선다. 행사장에서는 이런 이유에서 정확한 피임법을 홍보하기 위한 책자가 제작돼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끌어내고 있었다.

행사를 기획한 이고은(27)씨는 "행사의 일환으로 연인들에게 생리대나 피임약을 나눠줘 왔는데 예전에는 피하고 받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줄을 서서 받아간다"며 "성관계에 있어서 피임이나 여성에 대한 배려가 많이 늘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

행사에 참여한 최은하(20)씨 또한 "요즘에는 남자친구들도 생리에 대한 개념이 많이 열려있어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해 생리나 성관계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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