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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동북공정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의 집회.
ⓒ 오마이뉴스 남소연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가 갈수록 태산이다. 내년 2월 중국의 동북공정팀이 고조선부터 부여, 고구려, 발해까지 한강 이북의 고대사가 모두 중국 역사라는 내용의 완결 보고서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한민족의 역사가 한강 이남과 이북으로 두 동강날 판이다. 이념 분단에다 역사 분단까지 겹치게 될 형국이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중국은 만주 지역 지린성의 광개토왕비를 자기 나라 유적이라며 세계문화 유산에 올려놓은 상태다. 이번에는 백두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러다간 우리의 얼과 역사가 얼마나 온존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답답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 움직임이 결코 역사 문제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백두산 개발 및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서 한반도 사태나 통일에 대비해 백두산 영유권 확보를 위한 유리한 기반 조성 의도라는 것이 문화재청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근본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동북공정 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중화민족주의의 흐름이다. 동북공정은 단순하게 역사의 문제나 만약의 한반도 사태에 대비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통치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오래 전부터 진행돼 온 대전략이라는 뜻이다.

주목해야 할 중화민족주의 전략

1912년 반포된 '중화민국 임시약법'에 뿌리를 둔 중화민족주의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이후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중화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강화된 것은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면서부터다.

강화 이유는 개혁개방으로 인한 소수민족들의 이탈 움직임을 막고, 56개 민족을 '중화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결집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집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사회주의를 대신할 통치이데올로기로서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중국 정부는 1983년 사회과학원 직속 연구기관으로 '중국변강사지 연구중심'을 설립했다. 목표는 국가통일, 민족단결, 변경안정이었다. 쑨찐지 등의 중국 학자들을 중심으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입각하여 고구려사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견해가 이 때부터 등장했다.

1986년 중국 지린성을 방문한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개리 레드야드 교수가 중국 학자들의 견해에 놀라며, 고구려 역사를 놓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할 만큼 그들의 역사 왜곡 주장은 이미 널리 퍼진 상태였다. 2002년 2월 설립됐다는 '변강사지 연구중심'의 뿌리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중화민족주의의 역사 왜곡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돼온 것이다. 이런 변화를 오랜 동안 모르고 있었던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문제는 한민족의 얼과 역사 훼손으로 나타나는 중화민족주의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 견제와 봉쇄를 겨냥한 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관계와 이에 편승한 일본의 민족주의 및 군사대국화가 중화민족주의의 불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이 2005년 2월 19일 발표한 '안보공동성명'도 중화민족주의를 자극한 대표적 사례다.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타이완 해협 문제를 미국과 일본이 '공동 전략 목표'로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 다음 달인 3월 14일 무력행사를 통해서라도 국가 분열을 막겠다는 '반국가분열법'을 만들고 나설 정도로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의 집권세력은 중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들의 민족적 반발을 내심 반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본은 이웃 나라들에게 영토나 역사 문제를 도발적으로 일으키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과 중국의 반일 현상이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이 일본인들의 민족주의 의식과 심리를 자극함으로써 일본의 보수 정치 기반을 넓혀주고, 평화 헌법 개정 및 군사대국화의 길을 열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강화되고 있는 동북아 민족주의 불길

▲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홈페이지에 실려있는 '조선반도 형세변화의 동북지구 안정에 대한 충격'이라는 문건. 한반도 유사시 북한 난민들의 동북지역 유입에 대비한 대책을 수립할 것 등을 명시하고 있을 정도로 동북공정은 미래전략을 준비한다.
고약한 것은 이런 식으로 불타오르는 주변 강대국들의 배타적 민족주의 불길이 한반도로 번지게 된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는 독도 침탈 야욕과 과거 침략의 역사 왜곡 망언으로, 중국은 한강 이북의 고대사 왜곡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터에 중국의 고대사 왜곡에 대해 제대로 항의도 하지 못하고, 여론 무마에만 급급하는 한국 정부의 소극적 대응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 외교부가 중국 사회과학원의 연구 내용을 중국 정부 입장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다.

1980년대부터 중화민족주의라는 통치이데올로기에 따라 진행돼 온 중국 정부 차원의 역사 왜곡을 한국 정부 당국만 모르고 있다는 것인가.

한국과 중국은 2004년 8월 합의한 양해사항에서 역사 문제로 인한 한·중 우호협력 관계 손상을 방지하고, 고구려사 문제의 공정한 해결을 도모하여 정치 문제화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등의 내용에 합의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이 합의에 따라 두 나라의 우호협력 관계를 해치는 중국의 역사 왜곡 중지를 요구했어야 마땅하다.

근본적으로 걱정되는 것은 동북공정의 배경에서 진행되는 강대국들의 민족주의적 대립과 갈등이다. 강대국들의 각축이 벌어지는 마당에 한반도 정세가 좋아질 리 없기 때문이다. 동북공정 문제를 근본에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 정부의 안이한 처사가 그래서 문제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기반이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꼬여가는 터에 북한 핵 문제가 잘 풀리겠는가. 남북간 화해와 교류, 협력 사업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안이한 대처는 위험하다

동북아의 대립과 갈등 구조가 한민족 불행의 근원이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전략적 대책이 필요하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기본적인 틀의 모색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그 시금석이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성공적 진행이다. 6자회담의 성공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출발점이자 토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회담에 민족의 운명을 걸고 있는 남북한이 당사자로서 주도적 해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워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벗어나서 민족의 고유 문화와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서로 공존, 공영할 수 있는 평화민족주의의 모색이 필요하다.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에서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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