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가을 햇살이 너무 좋아 큰골 밭 두렁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오르다 보니 뭔가 후루룩 날아갔습니다. 날아가는 폼을 보니 틀림없는 방아깨비였습니다. 눈부신 햇살 아래 사방에서 후두둑 뛰어다니는 메뚜기도 있지만 이처럼 날개 짓이 크지는 못합니다. 사마귀도 날 때가 있지만 이렇게 먼 거리를 날지는 못합니다.

살금살금 다가가 풀숲을 살펴보니 과연 잘 생긴 방아깨비가 칡넝쿨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로 제 몸을 찍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태평하게 앉아만 있을 뿐입니다.

ⓒ 이기원

강아지풀 꺾어들고 메뚜기 잡으러 다니다가 방아깨비 한 마리를 잡기라도 하면 기분이 최고였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잡아서 다리 아래쪽을 잡고 있으면 쿵덕쿵덕 디딜방아 찧는 시늉을 합니다. 그게 신기해서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며 놀다보면 어느새 녀석의 다리 하나가 떨어져나가기도 했습니다.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 방아깨비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다리 끝을 잡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쿵덕쿵덕 방아를 찧습니다. 가을 햇살에 영글어 가는 곡식처럼 녀석의 몸도 잘 여물어 방아 찧는 다리에 제법 힘이 붙었습니다.

ⓒ 이기원

사람들은 녀석의 몸짓이 디딜방아 찧는 것과 닮았다며 웃고 즐기지만 녀석은 달아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는 것이겠지요.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사람의 손길을 벗어나기 힘들 때에는 다리 하나를 떼어내고 달아날 길을 찾기도 합니다. 메뚜기도 사람 손에 잡히면 다리 하나를 떼어내고 달아나기도 합니다.

제법 여물어 다리에 힘이 붙은 녀석을 슬그머니 풀숲에 놓아주었습니다. 갑자기 풀어주니 어리둥절하던 녀석은 허둥지둥 풀숲으로 사라졌습니다. 녀석이 사라진 풀숲으로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앉았습니다.

ⓒ 이기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