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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에서 줍는 과학>
<들풀에서 줍는 과학> ⓒ 지성사
김준민의 <들풀에서 줍는 과학>은 생물 이야기 과학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읽다 보면 에세이로 다가올 때도 있고 어느 정도는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교양서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그래서 글쓴이와 읽는 이 사이에 때로는 정감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지적 교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글쓴이가 들려주는 참나무(참고로 이름이 참나무인 나무는 없다) 이야기는 맛이 있다. 임금님 상에 그 묵이 올랐다고 하여 지어진 '상수리나무'하며 짚신바닥이 해지면 그 잎을 깔았다 하여 지어진 '신갈나무'하며 떡을 쌀 만큼 잎이 넓다 하여 지어진 '떡갈나무' 등등 이런 이야기들을 정겨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참나무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생물 수업 들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천이(遷移)'니 '극상림(極相林)'이니 이런 개념이 뜻밖에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이미 오래전 얘기지만 우리나라 산림을 대표하는 나무가 참나무인지 아니면 소나무인지에 대해 한때 생태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았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산림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그 모습이 변하는데 그런 변화의 과정을 생물학에서는 '천이'라고 한다. 그런데 천이의 마지막 단계로 나타나는 우리나라 극상림이 소나무 숲이냐 아니면 참나무 숲이냐에 대해서 설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중략) (주로 참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나무학파의 목소리가 더 높았는데 이후 연탄과 석유 등으로 연료가 바뀌자 전세가 서서히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참나무가 급속히 번식하면서 서서히 소나무 숲을 고사시켜나갔던 것이다." (12~13쪽)


참나무와 관련한 속설/속담을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설명해 주고도 있다. "도토리는 벌을 내려다보면서 연다."(도토리는 산에서 벌을 내려다보고 벌이 풍년이면 안 열리고 벌이 흉년이면 잘 열린다는 말)라는 속담은 과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은 생태학적인 설명이 가능한데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토리 꽃이 피는 오뉴월은 바로 모심기 철인데 이 무렵에 비가 많이 오면 모심기에는 유리하지만 도토리 꽃은 아예 피지 않거나 피더라도 일찍 져버린다." (15쪽)

글쓴이는 아카시아 예찬론자다. 이유가 있었다. 훼손된 산림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나무가 아카시아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지금껏 불러온 아카시아나무는 아카시아나무가 아니라 '아까시나무'이며 정작 아카시아나무는 따로 있다고 한다.

"아카시아는 산불이 발생한 장소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목재를 베어낸 곳, 버려진 풀밭, 황폐한 길섶 등에서도 왕성하게 자란다. 일단 한곳에 정착한 아카시아나무는 빠른 성장으로 불과 3년 만에 그 높이가 8m에 이르게 된다." (166쪽)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 지구에 우리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수한 생명이 이 지구에 같이 살고 있다. 오히려 인간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지구를 가꾸어온 생물이 있다. 토양 속의 미생물들이 그것이다.

"정작 이 지구의 물질순환계를 통제해 지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아늑한 환경을 제공하는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다. 바로 흙 속에 숨어있는 미생물들이다." (200쪽)

인구문제에 대한 노학자의 말도 들어보자. 흥미 있는 것은 '생태발자국'이란 개념을 통하여 문제의 정도를 파악하고 있는 부분이다. '생태발자국'이란 자연에 남겨진 인간의 발자국을 뜻하는 말로 인간이 음식, 옷, 집, 에너지 등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토지,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토지 등 인간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토지 면적을 헥타르로 나타낸 지수이다. 이에 따라 계산하면 그 예측 결과는 비관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글쓴이의 생각은? 글쓴이는 오히려 그럼에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인류는 지난 20세기에 공전의 대번영을 이룩하였다. 그 결과 인구가 몇 배로 증가했고, 그동안 발달한 과학기술로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리는 데 성공했다. 이런 경험에서 보면 세계 인구가 지금보다 두 배 더 늘어난다 하더라도 심각한 식량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21세기에도 꾸준히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213쪽)

지리산 반달곰이 농가에 내려와 피해를 끼친다는 보도가 최근에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대체로 곰 한 마리의 행동반경은 대략 20~30제곱킬로미터로 20~30마리의 곰이 지리산에서 살기에는 면적이 충분치 않은데다가 수십 개의 등산로까지 사통팔달로 얽혀있어서 애초에 반달곰 방사는 무리였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세계사를 바꾼다'라는 꼭지글은 무척 흥미롭다. 기후가 역사를 만든다고 해야 할까? 기후가 변하면 역사도 변한다고 해야 할까?

이집트는 더운 계절과 서늘한 계절이 반복되는 가운데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으로 농업생산성을 크게 증대시킬 수 있었고, 진시황의 진나라가 북방 이민족들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만리장성만이 아니라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북방 이민족들이 방향을 돌려 북방 고원지대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칭기즈칸이 남하하기 시작한 것은 급변한 기후(한파)가 그 배경이었다고 하며 아일랜드의 비극(인구 급감과 미국으로의 대거 이동)도 추위로 인한 기근 때문이었다고 한다.

노학자는 이 책의 끝자락에서 미래 과학자에게 메시지를 띄운다. 자신을 포함한 1세대 생태학자들이 우리나라 자연환경의 변화과정을 제대로 기록해두지 못한 점을 굳이 반성하면서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현장에서 후학들이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야외생물학연구실'이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생태학은 현장에서 오랜 시간 자연생태를 수시로 관찰해야 한다는 뼈저린 경험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덧붙여 과거 우리가 산림녹화사업을 진행하면서 경험했던 성공과 실패 사례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북한의 황폐한 산림 복원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었다.

"환경단체들이나 일부 학자들이 그토록 갯벌의 중요성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갯벌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된 과학논문 한 편을 제대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나는 우리가 진작부터 야외생물학연구실을 마련하고 산림, 갯벌, 늪지 등 귀중한 자연 생태계에 대해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했더라면 요즈음 제기되는 중요한 환경문제들에 대해서 보다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296쪽)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김준민 / 펴낸날: 2006년 8월 22일 / 펴낸곳: 지성사 / 책값: 1만 8000원


들풀에서 줍는 과학 - 한 세기를 걸어온 생물학자 김준민, 생명과 자연을 관(觀)하다

김준민 지음, 지성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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