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중국 상하이까지 가는 비행시간은 베이징서 상하이로 가는 비행시간보다 더 짧다. 짧은 비행거리만큼이나 두 나라는 뗄 수 없는 밀접한 나라가 되었다. 중국은 지난해 한국 수출의 21.7% , 해외투자의 40.3%를 감당하는 최대 교역 대상국인 것이다.
"현재 상하이에 장기 체류하는 한국인은 약 4만5000여명 정도 된다고 말하지만, 공식 통계에 들어가지 않는 장기체류자까지 합치면 약 10만 명 정도 된다"고 현지 사정에 비교적 밝은 한국인들은 말한다.
오늘도 많은 한국인들이 관광 목적이 아닌 장기체류를 하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상하이 푸둥공항을 통해 들어온다. 하루 평균 인천·부산·제주 등 한국에서 상하이로 들어오는 비행기 대수가 30여 편에 이를 정도다.
들어오는 사람들 면면을 살펴보면 과거와 많이 다르다. 4~5년 전에는 관광객이나 혹은 유학생, 회사 주재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소자본 자영업자, 퇴직자, 사업아이템을 찾아 조사하는 사람, 조기유학 '기러기족' 등 다양해지고 인원도 많다.
속속 떠나는 한국인들... 거액 사기 치고 줄행랑도
한국 캐주얼 의류시장의 한계를 느끼고 중국 현지에서 의류를 직접 만들어 한국 쇼핑몰이나 중국 내수시장에 팔기 위해 들어온 이상향(37)씨는 최근 작은 사무실을 열었지만 몇 달 안 가 중국시장 개척의 어려움을 몸소 느꼈다.
이씨는 "그동안 4개월 정도 있으면서 사무실도 차리고 상하이 인근과 항저우의 의류시장 조사를 하고보니 인건비, 부자재 값이 너무 올라있었다"며 "여기서 장기간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아 앞으로 2년 정도만 체류하고 바로 베트남으로 옮겨 가야겠다는 판단이 선다"고 말해 한국에서 생각했던 장밋빛 기대와 현실과의 차이를 토로했다.
무턱대고 들어왔다 큰 손해를 보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 케이스로 상하이 인근에서 제조업을 하다 중국 시장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해 10억원을 날린 한국인이 있다.
그는 현지 사정에 익숙하지 않아 공장설립 당시부터 도움을 주던 중국 교포(조선족)를 고용해 회계경리 보조와 통역을 하게 했다가 그 직원이 뒷돈을 챙기는 것을 알아내고 해고했다. 그러나 해고에 앙심을 품은 직원이 숙지하고 있던 공장 설립 당시의 비리를 중국세관에 신고하는 바람에 한국인 사장은 결국 공장 문을 닫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이 아닌 미용실, 동물미용실 등 서비스 업종이나 한국 식당을 상하이에 개업한지 불과 몇달 후 문을 닫아 투자금 1억~2억원을 날리고 돌아가는 한국인들도 부지기수이다.
최근엔 상하이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거액을 사기치고 도망간 사건도 발생했다. 한국 명문대학을 졸업한 캐나다 프로골프 출신 한국인이 지난 8월 30억원 가량의 대형 골프회원권 분양 사기사건을 일으키고 도주해 상하이 교민사회가 큰 충격에 빠진 것이다.
작년 8월 상하이에 들어온 임철씨는 '어바웃 골프'라는 골프 관련 회사를 차리고 프로골프 출신임을 적극 활용하면서 대학동문과 골프를 배우려는 골프 후배들에게 600만원에서 1200만원에 해당하는 상하이 소재 골프장 분양권을 팔면서 사기행각을 벌였다.
분양권을 팔면서 가짜영수증을 만들고 분양증서를 만들어주는 수법으로 30여명을 속였으나 부킹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를 수상하게 여긴 골프회원 매입자에 의해 들통 나자 그동안 빼돌린 돈을 들고서 어딘가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500만원 가지고 아이와 함께 무작정 온 주부
생활고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한 학부모는 1년 반 전에 아이 둘과 함께 달랑 500만원 들고 용감하게 중국을 왔으나, 아이들 교육문제와 본인 직장 상황이 순탄치 않아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니는 한국회사가 회생하기 어려울 듯싶어 미칠 것 같다"며 "아이들 학교를 알아보니 엄청난 교육비 때문에 일반 중국학교를 찾았지만 아이들이 중국말을 못해 지금은 입학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녀는 "그래서 할 수 없이 중국어 학원을 몇 개월만 보내고 중국 학교에 입학시킬 생각"이라며 "절반 나온 급여로 집세 내고, 학원비 2~3개월 밀린 것 갚는다"고 어려운 처지를 호소했다. 그녀는 또 월급이라도 제대로 나오는 회사를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상하이에 소재한 크고 작은 한국인 교회에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한국인의 발길이 잦다. 중국에서 사업하다 실패해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생활고를 겪거나 무작정 상하이에 왔다가 생활비가 떨어지자 돈을 빌리려는 사연들이 접수되고 있어 지켜보는 상하이 교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만만치 않은 중국진출 장벽
최근 중국은 과거 외국회사의 진입을 장려하던 때와 달리 외국계 합작회사들에 대한 장벽을 높이고,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제한조치를 취하는 등 외국기업 진출환경이 좋지 않다.
더구나 중국이 기업경영 환경을 세계기준에 맞추려 하고 있어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환경도 예전 같지 않다. 세무당국에서는 내-외자 기업의 소득세를 단일화하고, 외자기업과 주재원에까지 중점세무조사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낮은 임금이라는 전통적인 호조건도 중국에서 차츰 위협을 받고 있다. 노동조합 설립과 노동권을 강화하라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커지고 있고, 퇴직금 지급 규범화 등 노동 관련 세부적 규범을 관계기관에서 정비 중에 있다.
상하이에 진출하는 기업뿐만이 아니라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요식업 경영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한국 식당 30여개가 밀집해있는 롱바이 즈텅루 한국식당 거리에 가보면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식당들이 몇 달을 못 버티고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고, 새로 들어온 주인은 멀쩡한 인테리어를 들어내고 다시 하기를 반복한다.
상하이 거주 한국인이 늘어나면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국인이 경영하는 마트도 거액을 투자한 기업형 대형마트에 밀려 문을 닫아야 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미용실, 마사지실 등 서비스 직종도 식당처럼 주인이 연이어 바뀌기는 매한가지이다.
15년 전 중국에 진출해 상하이에서 의류사업을 했던 '뽀그레머천다이징' 상하이 지점 강영철 전 대표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으로 현재의 중국에서 사업하기에는 위험요소가 많이 따른다"고 말했다.
이어서 "중국의 정책기조와 법규정이 급격한 변화하고 있고, 세원추적·외국인소득세 징수 등 세무관리가 강화되고, 노동법이 강화(최저임금, 5대사회보험, 퇴직금 규정 신설)되고 있으며, 노동력 불균형, 물가상승, 환율정상, 외자기업 우대혜택 축소 등 각종 새로운 규제조치가 시행되고 있다"고 중국내 한국기업환경의 어려움을 말했다.
또한 지난 31일 열린 KOTRA 중국지역본부와 산업자원부가 주최한 중국마케팅전략 강연회 자리에서 황만하 중국지역 본부장은 "중국시장이 기존 생산시장에서 마케팅시장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면서 "시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지 않는 업체들이 점차 비준받기 어려워지고 이미 진출한 업체들도 이전을 강요받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 정부나 상하이 시는 외자기업의 자본유치는 계속 희망하지만 점차 중국기업의 자생력을 높이는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제한된 범위에서 기술력 있는 업체를 중심으로 가려받아 기술력을 전수받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진입장벽은 높아지고 현지기업 환경마저 순탄하지 않다.
그러나 중국 투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5년 한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금액은 26억3094만1천불이었으며, 올해는 6월까지 벌써 15억7674만4천불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투자금액이 작년보다 늘어날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상하이 지역경제를 포괄하는 장강삼각주 경제권인 상하이, 쟝수성, 저장성 3개 지역에 대한 한국기업 투자총액만을 따로 떼어봐도 2005년 8억4772만2천불이었는데, 올해 6월까지 이미 7억8049만7천불로 작년 수준을 육박하고 있다.
한국에서 실패하는 사람, 중국서도 성공하기 어렵다
17년 전 신발을 팔기 위해 중국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무역 에이전트로 활동하다 4년 전 한국 전통 떡공장을 차려, 상하이 교민사회로부터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우리떡카페' 안태호 사장이 있다.
안 사장은 "중국에 오는 자영업자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중국인이 따라오지 못하는 '소프트'에 집중해야 성공한다"며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해 넘어오는 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으며 한국에서 일정 정도 성공하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성공할 확률이 많다"고 말해 도피성 상하이행을 우려했다.
역시 12년 전에 상하이에 들어와 무역업을 하고 있는 고상태(39)씨는 "이전에는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들어왔지만 4~5년 전부터는 뚜렷한 목적 없이 단순한 '탈출구'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중국인들에게 한국인의 나쁜 인상만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며 이제 중국은 '기회의 땅'이 결코 아님을 강조했다.
상하이 현지에서 기자가 상하이 교민단체나 교회에 나가보면 사업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해 가진 돈을 까먹고 생계마저 걱정해야 하는 사람, 비록 어렵게 기반을 잡았지만 믿었던 회사 직원의 공금횡령, 명의문제(중소사업의 경우 법적 문제로 중국인 명의를 빌려 쓰다 대리명의자에게 당하는 경우)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사업을 접은 사람, 마케팅 부족과 현지적응 부족으로 사업이 망한 사람들의 사연을 듣는 경우가 많다.
중국 제1의 경제도시인 상하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만 가는 고층빌딩 그늘 속에는 한국인의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묻혀 있다. '피' 같은 돈을 잃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상하이 거리를 헤매는 이들도 많이 있다.
최근 들어 상하이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상업지역에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식 성인오락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못다 이룬 대박 꿈을 보상 받아라"고 손짓이라도 하듯 성인오락 프로그램을 선전하는 '세븐포커' '맞고' '바둑이'라는 이름의 선전문구가 중국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쓰라린 좌절감을 맛본 한국인들을 유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