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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이 지난달 중순부터 한국신용정보가 매긴 개인 신용등급에 따라 보험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 신용등급이 최하위인 10등급에 해당하는 경우, 사망보험금 기준으로 보험 가입액을 최고 3천만원 이하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이 언론에 이번 조치와 관련해 이유로 든 것은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중도해지율이 높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보험사기의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의 보험가입이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 낸다는 논리이다.

중도해지는 일반적으로 2가지 경우이다. 소비자가 보험금을 납부할 여력이 없어 보험해지를 요구하는 경우와 장기체납자에게 보험회사가 효력상실을 통보하는 경우이다.

보험회사는 2개월이상 보험금 체납자에게 체납2개월째 말일을 기준으로 효력상실을 통보한다.

아래는 삼성생명의 한 보험 상품의 해약환급금 예시표이다.

▲ 삼성생명 보험 해약 환급표
ⓒ 삼성생명
3개월 경과후 1년까지는 중도해지의 경우 납입보험료의 1.03%, 2년 33%, 51.6% 4년 61.3%로 납입기간이 20년인 보험의 경우 20년을 납부해야 납입보험료의 90% 정도를 되 돌려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실상 중도해약으로 인한 피해는 보험회사보다는 소비자가 더 커보인다.

또 다른 하나인 보험사기의 개연성이 높다는 이유는 삼성생명이 자체적으로 조사 분석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한 일반 보험소비자가 이를 납득하기는 어렵다. 

보험사기와 같은 사고에 대해서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기에 이를 이유로 보험가입을 제한하는 것은 이들을 잠재적 보험 범죄자나 악의적인 예비 보험가입자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어느 산업에나 리스크는 있기 마련이다. 보험사기는 보험회사가 가진 가장 심각한 리스크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풀고자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선의의 피해자, 혹시 삼성생명?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가입하는 보험제도는 신용등급과는 상관없이 보험 소비자의 유사시 위험에 대한 대비책으로 필요에 따라 가입할 수 있는 사적 안전망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오히려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저축을 못하더라도 보험을 필수로 생각한다.

오랜 기간의 보험영업은 이런 사람들의 잠재의식을 파헤쳐 미래의 불확실성을 인지시키는 방식이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보험회사의 장밋빛 미래설계에 기대를 걸고 지금도 많은 보험소비자들이 매달 꼬박꼬박 자신의 밥그릇을 덜어내고 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관리 운영하면서 보험회사는 수익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잘못된 신용관리로 어느 순간에 신용불량자나 최하위 신용등급자로 전락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이들을 보호하거나 포용하려하기 보다는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개인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사후적 보호장치인 보험제도에 개인의 신용등급까지 적용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이들을 더욱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다. 보험회사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기는 하나, 지나치게 수익성에만 급급한 나머지 사회적인 공적 역할마저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삼성생명의 여성가장 창업지원과 조손가정돕기 성금기탁등 사회공헌 활동을 소개한 기사를 보았다. 수익의 사회환원이라는 아름다운 모습 위로 겹쳐오는 삼성생명의 이번 조치는 씁쓸함을 넘어선다. 사회공헌과 사회적 책임. 삼성생명은 쉬운 길보다는 실제로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심사숙고하고 이번 조치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신용등급이라는 새로운 성적표

▲ 하나은행 대출신청양식
ⓒ 하나은행 홈페이지
▲ 국민은행 대출신청양식
ⓒ 국민은행홈페이지
▲ 신한은행 대출신청양식(구 조흥은행)
ⓒ 신한은행 홈페이지
금융권이 대출시 고용형태에 관한 정보를 받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려 신용점수를 매긴다.  물론 고용형태가 신용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변수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어떻게 바라보는냐 하는 것을 놓고 보면 이 변수가 합리적으로 작용하고 있느냐하는 문제제기 역시 타당하다.

이런 고용형태가 신용평가에 반영된다고 하는 것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개인의 의지나 해명의 절차없이 제 3자에 의해 평가가 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평가가 우리 생활에서 돈과 연관된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동통신가입, 초고속 인터넷 가입, 각종 쇼핑몰 카드발급, 심지어는 결혼정보시장에 이르기까지 신용등급은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앙일보> 6월 9일자 기사에 따르면 대출을 거절당한 대출 거절사유는 대부업체 이용, 소득 불분명(계약직.자영업자), 신용등급 미달, 연체 경력순이라고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무심코 사금융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한 번의 연체 기록이 있다는 이유로 '금융 약자'가 된 것이다.  또한 대출신청이 거절되는 비율도 74%나 된다고 한다.

위의 이유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보이지만 사실은 순환고리를 가지고 있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대출을 거절당하고 대부업체를 찾아들고 높은 금리를 감당하기 못해 연체경력을 가지게 되고.반면 마이크로 크레딧사업을 하고 있는 한 단체 관계자에 의하면 오히려 이 기관을 통해 대출을 받은 저소득층 혹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의 대출 상환률은 시중 은행의 가계대출 상환률을 웃돈다고 한다. 물론 이 기관은 대출자들에 대한 관리와 상담업무를 큰 비중으로 놓고 있다.

경제적 능력과 고용형태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해서 신용이 반드시 불량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늘 비정규직에 대해 획일적인 사고만을 주입시켜왔고 그 안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잘 구분하려 하지 않아 왔다. 그리고 이 획일적인 사고가 성급하게 금융권의 정책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 정책은 나도 모르게 나의 신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개인의 신용정도는 일정정도의 신용정보조회비용을 내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신용정보조회는 신용등급을 떨어뜨린다. 이미 신용은 내 관리의 범주를 벗어나 있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신용은 이리저리 날라다니고 있다.

내 신용정보가 통신사, 보험사, 제2,3의 금융권으로 제공되고 있는 사이 나도 모르게 내 신용은 1~10까지의 등급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물론  조회이전에 나는 절대 이 사실을 인지할 수 없다. 그래서 은행창구에서 대출을 거절당하고 나서야 내 신용의 현주소를 알게된다.

신용등급이 정말로 중요한 판단의 지표라면 적어도 개인이 자신의 신용등급을 자주 열람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또한 이 신용등급이 어디에 왜 어떻게 제공되었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활용하는 금융권으로서는 최대한 개인에 대한 신용등급이 합리적이고 공개적으로 매겨 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과 같은 획일적인 신용등급은 많은 일반 금융소비자의 발목을 잡는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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