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이 대충 드러났다. 파국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사과했다. 이병완 비서실장 명의의 발표문을 통해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 절차상 하자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고, 야3당의 중재안을 존중한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은 법사위에서의 청문 논의를 수용했다.
한나라당은 거부했다. 법사위에서의 청문 논의는 편법이고, 청와대의 유감 표명은 형식상 부적절하고 내용상 진정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한나라당은 왜 이렇게 완강한 건가? 황우여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한 말이 있다. 지난 11일 인터넷 신문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민주당은 절차 문제를 주로 얘기하지만, 한나라당은 전효숙의 소장 자격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효숙이 소장이 되면 불안하다. 이런 참에 절차 문제가 나왔으니 야당으로서는 잘된 거다."
한나라당이 지금 벌이는 투쟁은 제도개선투쟁이기 이전에 인물교체투쟁이다.
관건은 야3당의 태도다. 그런데 한나라당에 호의적이지가 않다.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19일 국회 본회의 전까지라고 의견을 정리했다.
이런 추세라면 19일이 기점이 된다. 열린우리당과 야3당이 공조해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표결처리하면 절차는 일단 종료된다. 하지만 정치는 다시 요동친다.
주의 깊게 살필 지점이 드러난다. 한나라당은 왜 고립을 자초하는가? 헌법재판소를 절름발이로 만들 수 있다.
한나라당은 왜 고립을 자초하는가?
헌법재판소의 고질병은 권한과 권위가 조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지명과 청문 절차를 거치고도 이런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지명권자와의 코드 문제가 늘 시비 거리였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코드의 소산으로 해석되기 일쑤였다.
헌법재판소장이 '비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자리에 앉을 경우 어떤 현상이 빚어질지는 자명하다. 원천적으로 정통성 시비에 휘말릴 것이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권위를 얻기 힘들어진다.
헌재 판결을 기다리는 위헌 사건 중에는 사학법이 있고 종합부동산세법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국회 비준 대상이 아니라는 정부의 입장도 위헌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하나 같이 내년 대선국면에서 여론 지형을 바꿔놓을 수 있는 사안들이다.
한나라당 입장에선 양수겸장이다. 헌법재판소가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주면 '거봐라' 하면 된다. 정부여당의 막무가내식 입법이 오죽했으면 청와대와 코드를 맞춘 헌법재판소조차 위헌 판결을 내렸겠느냐고 몰아붙이면 된다.
헌법재판소가 정부여당의 손을 들어줘도 역시 '거봐라' 하면 된다.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는 것 봤냐며 절름발이 헌법재판소의 코드판결을 문제 삼으면 된다.
나쁠 게 없다. 정치적으로 일시 고립되더라도 내년 대선을 겨냥해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다. 헌법재판소를 참여정부 실정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증폭기제로 활용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기조는 수렴과 해결이 아니라 증폭과 확전이다. 그 지향점은 물론 대선이다. 고립은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고립되는 대신 선명해진다. 선명해지면 대립구도를 능동적으로 짤 수 있다. 그 구도에 승산을 거는 건 참여정부 실정에 대한 민심 이반을 믿기 때문이다.
이게 고립의 역설이다. 혼자 남으면 왕따가 될 수 있지만 거꾸로 이득을 혼자 챙길 수도 있다. 절차상 하자라는 명분을 이미 손에 쥐었으니 한 번 해볼 만한 게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