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진에서 1027번의 지방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면 봉대산(191m)을 가로질러 넘어가는 고개가 주전고개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주전마을이 나타난다. 주전(朱田)이란 땅 색깔이 붉다는 뜻인데 실제로 이 마을 대부분의 흙은 붉다고 한다. 상마을, 중마을 등 7개의 부락으로 3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어촌이다. 돌미역의 주산지로 2~3월에 채취하여 매년 1만2000kg씩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주전마을로 들어오는 고개의 좌우 길가의 가로수는 벚나무로, 봄철에는 벚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고개 마루에 닿으면, ‘주전봉수대’로 올라가는 길목에 봉수대 ‘표지석’을 만난다. 여기서 주전봉수대까지는 1.8km 라는 거리표시가 새겨져 있다. 조선왕조 선조시대에 조성되었다는 주전봉수대(기념물3호)가 걸어서는 20여분, 자동차로는 5분만에 우리 앞에 높이 6m의 자태로 모습을 나타낸다.
봉수대 안을 들려다 보기위해 돌계단을 올라보니, 그 당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위기상황을 알렸던 봉수대의 존재가 우리들에게 아련한 낭만으로 몸에 와 닫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분초를 다투는 각박한 현대사회와 대비되어 ‘느림의 삶’에 대한 향수를 불려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울산광역시 동구청에서 몇 년 전부터 봉수대를 중심으로 한 봉대산 일대를 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1.5km의 ‘맨발등산로’를 비롯하여 야생화단지, 전망대, 휴식정자, 운동기구설치장 등을 갖추었다. 특이한 것은 봉수대 입구에서 전망대나 야생화단지로 가는 등산로를 돌을 치우고 마사 흙을 깔아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봉수대 입구에는 등산객이 맨발로 등산을 한 후 돌아와서 발을 씻을 수 있도록 큰 물통 여러 개에 물을 담아두고 있었다.
이런 작은 배려에서 주민복지를 위한 행정력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동구청 소속 50대의 임시직원의 친절한 안내도 여행객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준다. 그리고 등산로 곳곳에 시(詩) 구절을 적어놓은 입간판도 등산객을 위한 마음쓰임새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비바람에 씻긴 흐릿한 글자가 많아진 것이 안타깝다.
봉수대에서 동해바다 쪽으로 나아간 곳에 돌로 쌓은 전망대가 세워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전망대는 주전봉수대를 모방해서 최근에 축조한 것 같은데, 그 모양이 마치 무슨 사이비 종교집단의 신을 모신 제단 같은 느낌을 준다. 돌탑의 형태와 돌계단, 나무대문, 그리고 나무난간의 붉은 황토색깔 등은 전망대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전망대를 사이비 종교집단의 기이한 신단처럼 느낀 필자가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떤 방문자들은 이것을 주전봉수대라고 인터넷에다 잘못 소개하고 있다.
주전마을의 바닷가의 몽돌해변을 울산 북구 강동의 정자해변과 합해서 울산 12경에 포함시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모래에 가까운 자갈해변이다. 경남 남해의 몽돌해수욕장에서 볼 수 있는 주먹크기의 몽돌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정자해변도 마찬가지로 잘디잔 검푸른 자갈로 메워져 있는 해변이다.
주전 바닷가에서 뜻밖에 아름다운 건물을 발견한다. 그것은 솔밭화장실이었다. 외양도 그럴싸했지만 내부 시설도 깔끔하고 깨끗하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도 있다. 시골 해안가에 이렇게 깨끗한 화장실을 볼 수 있다니.
최근 들어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이 몰라보게 청결하고 아름답게 변모된 것을 모두들 알고 있지만, 시골 조용한 바닷가의 화장실도 이제는 예외 없이 아름답게 변신 중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예쁘게 서 있다. “선진문화의 척도는 ‘화장실 문화’”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문화도 이제 선진문화로 접어든 것이 아닐까.
주전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구암, 우가, 재전, 복성, 판지마을을 지나면 울산 북구 강동동에 속하는 정자마을에 도달한다. 이 지역은 울산광역시에서 이 일대 24여 평을 관광특구로 지정하여 대대적인 온천개발과 휴양시설을 짓기로 계획되어 있는 곳이다. 현재 온천개발지역에는 강동 온천(26.7 ~ 30.0℃)이 유일하게 영업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온천욕을 하면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부산 해운대온천과 이곳 강동온천이다. 온천탕 앞면의 유리창을 통해서 욕탕에 몸을 담근 체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온천욕은 생각만 해도 온 몸을 즐겁게 하는 체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곳 온천도 수온이 낮아, 데워야 온천욕을 할 수 있으니, 제대로 된 온천욕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참고로 우리나라 온천 중 지하에서 뽑아 올린 온천수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온천은 전체 250여 곳 가운데 20여 곳도 채 되지 않는다. 그것은 온천법상 수온이 25℃이상이 되고 인체에 유해하지 않는 지하수면 모두 온천수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은 일본과 같고, 미국(21.1℃이상), 영국, 프랑스, 독일(20℃이상)보다 높다. 다음 발길은 31번 국도를 타고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감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