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추가 대북 제재를 구상중이며, 이번 회담은 사실상 이를 공식적으로 통보하는 절차에 불과하다는 관측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최근 중국과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 6자회담 수석대표가 유엔 대북 결의안 이행을 강조한 것은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양국 정상의 발언들은 일단 이 같은 우려를 무색케 만들었다.
"6자회담에 대한 책임" 확인한 부시
정상회담 뒤 가진 언론회동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6자회담에 대한 책임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는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서 양국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정상은 6자 회담 재개 및 진전을 위해 양국 실무진이 검토해온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구체화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이번 달 중순 유엔 총회를 계기로 지난 7월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에서의 '10개국 회동'과 유사한 다자회동을 제의한 상태다. 6개국이 모여서도 잘 해결안되는 문제를 10개국이 모여서 논의하자는 것은 미국이 사실상 6자 회담을 포기한 것으로 비춰졌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정상이 6자 회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은 의미가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추가적인 대북 제재조치가 논의되지 않은 점이다. 노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는 방안을 주로 논의하고 있다, 6자회담이 실패했을 경우에 있을 수 있는 제재 문제를 먼저 얘기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며 제재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설사 6자회담이 빠른 시일 안에 재개되지 않는다 해도 추가 제재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북한의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나 핵 실험이 없다는 조건하에서다.
주목되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양 정상은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앞으로 6자회담 참가국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기로 합의하고, 세부 내용은 추후 외교라인의 실무협의를 통해 구체화해나가기로 했다. 단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실무차원에서 준비중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은 회담 브리핑에서 "6자회담의 재개와 9·19 공동성명의 진전을 위해 회담에 참석하는 각측이 취해야 하고, 또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에 대한 협의와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우선 상정해볼 수 있는 것은 '선 금융제재 해제, 후 6자회담 복귀'라는 북한의 입장과 '선 6자회담 복귀, 후 금융제재 등 현안 논의'라는 미국 입장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선에서의 절충안이다. 북한의 6자 회담 복귀 등 일부 조건을 전제로 한 사전 북·미 양자 회담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긍정적이지만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대목이 있다.
노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북한에 대한 쌀과 비료 제공을 중단한 것은 사실상 제재와 크게 다를 바 없다"며 "UN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서 각국은 조치를 취하게되는 것이며, 북핵 문제와는 별개로 미국의 국내법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또 그것대로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그렇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또 다른 어떤 제재를 지금 얘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이었다. 추가 제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은 한·미간의 '공동' 추가 대북 제재는 반대하지만, 미국이 자체 판단에 따라 진행하는 추가 대북 제재는 인정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렇다면 6자 회담 재개 노력 운운은 아무 의미가 없다.
송민순 실장은 "오늘 양 정상 간에 제재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도 된 적이 없다"며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니까 대통령께서 답변한 것일 뿐 회담의 경과를 설명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는 '포괄적 접근 방안'의 실체가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송민순 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7월 초 미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후 한·미간 협의를 거쳐 8월 하순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과 협의를 했다. 이후 관련국들간 직·간접적인 교신들이 있었고 이번 정상회담 전까지 세부적인 협의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7월 초 이래 미국은 그 어떤 유연성을 보인 적이 없다. 되레 힐 차관보는 지난 12일 한국을 떠나면서 "유엔의 모든 회원국들이 안보리 결의(1695호)를 이행해야 하며 이렇게 되도록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회원국인 한국도 유엔 결의에 따라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해야 한다고 촉구한 셈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유엔 결의안에 따르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도 중단해야 한다. 따라서 과연 청와대가 말하는 '포괄적 접근 방안'의 실체가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부시의 전작권 발언, 보수진영에 타격?
이날 한국 언론의 관심은 북핵 문제와 미국의 추가 제재 여부에 쏠렸다. 그러나 양국 정상이 더 많이 얘기한 것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였다.
부시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가 한국 안보에 대한 미국의 기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문제가 (한국안에서) 정치화되어서는 안된다 ▲전작권의 이양시기는 양국 국방부 장관의 협의를 통해서 정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부시 대통령의 언급은 국내 보수 진영에 상당히 타격을 주는 발언들이다.
일단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부시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가 정치화돼서는 안된다고 말한 점이다. 지난달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만났을 때도 "이 문제가 정치화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버시바우 대사에 이어 부시 대통령까지 '정치화 불가' 방침을 천명한 것은, 전작권 반환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데 한국 보수진영이 계속 정치 쟁점으로 만들면서 되레 발목을 잡힐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 안보에 대한 미국의 기여를 다시 확인한 것 역시 전작권 환수 뒤 미군 철수 가능성, 또는 유사시 전시 증원군 전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제기해온 보수 진영의 주장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전작권 이양시기로 미국은 2009년, 한국은 2012년을 말한 것을 들어 "노 정권이 하도 달라고 보채서 미국이 화를 낸 것"이라고 보수 진영은 주장했다. 그러나 전작권의 구체적 이양 시기에 대해 양국 국방 장관이 협의해서 정하기로 함으로써 시기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