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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밭 그 사나이> 드라마 포스터
ⓒ KBS

“농촌총각에게 시집가고 싶다는 도시처녀들이 생기고 있다”

농촌총각이 색시감을 구하지 못해 해외원정을 떠나야 하는 현실 속에서 웬 헛소리냐 되묻겠지만 자칫 헛소리같아 보이는 도시처녀의 한숨(?)섞인 갈망이 인터넷상을 조용히 달구게 된 기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에는 한 드라마의 공(?)이 컸다. 바로 지난 12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KBS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가 그 주인공이다.

장택기같은 시골총각이라면 OK?

사실 드라마 속의 장택기는 현실 속의 농촌총각이라고 보기엔 어폐가 있다. 비록 웃을 때 하얀이가 드러나오는 시꺼먼 얼굴에 단벌 체크무늬 남방과 밀짚모자를 쓰고 “뒤짔다”, “가시나”등등의 경상도 사투리를 남발하는 시골스러운 외모의 소유자이지만 한 때는 연구원에서 근무했고 평상시에도 원서를 읽는 등 배울만큼 배운 석사 출신의 학벌(?)과 경력(?)에 뭐든지 손으로 뚝딱 뚝딱 만들어내는 손재주는 물론이고 맘 내키면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통기타를 치며 낭만적인 발라드를 멋있게 부를 수 있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행색은 농촌총각이지만 “나 자신이 안 무식하고 무시 당할 인간이 아니라”는 극중 대사처럼 당당한 자신감과 실력을 가진, 한마디로 도시처녀들이 꿈꾸는 상상속 로망을 모두 구현한 이상적인 농촌총각이다.

그뿐인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결혼하고나서도 남자에게 묶여 살지말고 자신의 꿈을 이루라고 독려하면서 자신은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도와주는 땅과 같은 남자가 되겠다”다짐하는가 하면,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쓰라며 통장을 수북하게 내놓는 매우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남성이니 아무리 명품을 좋아하고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는 속칭 된장녀라 할지라도 이런 남성에게 반하지 않는 여인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지금 농촌의 현실은 “나 자신이 안 무식하고 무시 당할 인간이 아니라”는 택기의 대사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왜 우리한테는 시집을 안오냐”면서 열심히 땀 흘려서 가족도 먹여 살리고 전 국민을 먹여살리는데 왜 여자들이 안 좋아하냐“고 넋두리하는 40이 넘은 노총각 영배의 대사가 더 현실적으로 들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처럼 무늬만 농촌총각인 장택기는 농촌총각이라기보다는 자칫 동화 속 왕자님의 농촌버전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물과 기름처럼 드라마 속에서 겉돌기 쉬운 까다로운 캐릭터임에 틀림없다.

또한 철없는 서울 처녀가 포도밭을 상속받으려는 욕심 하나로 시골에 내려왔다가 그곳의 포도밭 일꾼과 티격티격하다가 철이 들고 눈이 맞는다는 설정 자체는 자칫 드라마를 남녀 주인공과 무대만 농촌으로 옮긴 채 주인공과 배경이 겉도는 무늬만 시골인 <풀하우스>나 <궁>의 아류작을 만들 위험성이 매우 농후했다.

사실 이 드라마의 방영 초기에는 드라마 <궁>의 엽기, 발랄, 명랑, 천방지축 세자빈의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한 윤은혜가 연기한 이지현 역할이 때마침 불거진 된장녀 논란과 함께 연기력 논란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위태위태하기도 했다. .

그러나 드라마에 쏫아진 초반의 비난을 잠재우고 자칫 가벼워 유치스러울 법한 남녀 주인공 캐릭터를, 시골스럽지만 결코 촌스럽지않은 매력적인 커플로 재탄생 시킨 이면에는 세명의 숨은 공신이 있다.

배우 오만석의 재발견

첫 번째 공로자는 뭐니 뭐니해도 진한 경상도 사투리에 365일 내내 헐렁한 체크 남방과 예비군 바지를 입은 시꺼먼 얼굴의 무뚝뚝한 시골총각 장택기를 능청스럽게 소화해낸 배우 오만석일 것이다.

“TV 탤런트로서의 오만석의 재발견”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호평을 받은 장택기 역할을 처음 오만석이라는 배우가 맡았다고 할 때에는 괜히 그가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이미 그는 공연계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티켓파워를 지닌 스타성과 연기력을 갖춘 배우이지만 과연 무대가 아닌 브라운관에서 그의 매력이 십분 발휘될지는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코믹 멜로드라마라니. 혹시 드라마 <신돈>에서처럼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가 다소 튀어보였던 원현스님을 또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우도 잠시, 어느새 자연스럽게 힘이 빠진 오만석의 눈은 한없이 무뚝뚝하다가도 금세 눈가에 가득 장난기가 배어져 나오기도 하고 어느 때는 모성본능을 한없이 자극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선보이며 대본상에서의 장택기를 드라마 속 매력적인 시골총각 장택기로 살려내는데 성공했다.

거기에다가 어색해보이지 않는 경상도 사투리와 오랜 무대경험에서 익힌 현장감,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배우로서의 노래실력은 드라마 속에서 자연스런 애드립으로 녹아들어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에 집중하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그의 호연은 자연스럽게 상대역인 윤은혜에게도 안정감을 주어 극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택기, 지현 커플을 탄생시키는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시청자 의견을 적극 반영한 쌍방향형 드라마

그러나 농촌총각 장택기와 서울처녀 이지현 커플을 매력적으로 만들어낸데는 쌍방향형 연출을 시도한 감독의 연출과 작가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새로운 감각의 사랑이야기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화 <접속>의 조명주 작가의 섬세한 감정이 배어나온 가볍지 않은 농사이야기는 유치한 코믹 멜로로 빠지기 쉬웠던 이 드라마에 중심을 잡아주었다.

특히 박만영 감독은 인터넷상의 여러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한편 시청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하고 또 많은 의견들을 드라마 속에 반영하는 쌍방향형 드라마를 구현하여 시청률보다 더 뜨거운 열혈 시청자들을 만들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드라마 마지막회. 마지막 회였던 16회에는 그동안 게시판에서 오고갔던 시청자들의 바람을 드라마 속에서 구현해낸 팬 서비스적인 측면이 돋보여 시청자들을 미소짓게 했다.

단적인 예가 디자이너로, 포도박사로 유명인사가 된 듯한 두 주인공에 대한 암시가 풍기는 잡지와 난곡리 이장이 된 택기, 대본 상에도 없던 윤은혜와 오만석의 원두막 노래장면 등이 그것.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미소를 띄우게 하는 소품드라마

그러나 이처럼 감독과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쌍방향형 드라마가 비록 호응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 결과와는 달리 한국 드라마의 현실은 암담하다.

사전제작제라고는 꿈도 꿔보지 못하고 쪽 대본과 밤샘촬영으로 일관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장 물건 찍어내듯 다작을 생산해온 한국 드라마, 시청률에 따라 드라마횟수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기도 하고 원 시놉시스대로라면 원래 죽었어야 할 캐릭터가 반응이 좋으면 계속 살아있기도 하고 시청률에 의해 주인공을 조기에 죽였다가 살렸다가 하는 한국 드라마의 융통성(?)에서 그나마 기적적으로 자생한 것이 바로 쌍방향형 드라마이고, 한류열풍을 일으키며 나름대로 선전하는 이유라고 하는 우스개가 씁쓸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처럼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는 자의이든 타의이든 여러 가지 미덕과 함께 또다른 환상을 심어놓고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포도밭 그 사나이>의 농촌총각 장택기는 오만석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하게 될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었지만 현실과 다른 도시처녀의 로망만 심어놓은 채 영배같은 농촌총각들에게 택기같으면 언제라도 시집 오겠노라며 택기같은 이상형이 될 것을 윽박지를 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택기가 될 수 없는 농촌 총각들은 한숨을 쉬며 신부감을 찾아 해외 원정을 계속 떠날 것이고.

또한 시청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쌍방향성 드라마의 미소 뒤에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 속에서 시청자들의 입맛에만 의지하는 가벼운 졸속 드라마 양산의 함정이 숨어져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여러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골칫거리를 잊고 잠시잠깐 미소짓게 만드는 활력소와 같은 소품 드라마임에는 틀림없다.

현실은 아무리 칙칙하고 고달프더라도 노력하기 나름에 따라서 때로는 번쩍이는 외제차 대신에 해바라기를 잔뜩 실은 경운기가, 럭셔리하고 화려한 카페보다 햇살비치는 원두막과 둥그런 보름달과 반딧불이 어우러진 호숫가가, 화려한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옷보다 체크남방과 몽빼바지가 핸드폰 커버로 재탄생한 고무신이 때에 따라서는 멋있어 보일 수 있다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제시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 그 느낌은 맷돌에 간 원두커피처럼 구수한 향내가 나는 맛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에 대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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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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