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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생가 위로 파란 가을하늘이 펼쳐져 있다.
다산생가 위로 파란 가을하늘이 펼쳐져 있다. ⓒ 김선호
갑작스럽게 '실학산책'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팔당 생협 조합원으로 있는 지인으로부터 출발을 하루 앞둔 토요일 저녁에서야 연락을 받게 되었다. 실학에 대한 얄팍한 지식이나마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 것이 전부인데, '실학알림단' 자격으로 참석을 해도 되는지 망설여졌다.

실학축전2006 행사를 앞두고 사전행사의 하나인 '실학산책'은 실학의 유적지 답사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다산생가와, 수원화성 및 행궁 그리고 예산의 추사고택을 돌아보는 코스였다. 실학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이고, 평소에 존경하는 위인으로 삼았던 다산정약용 선생의 생가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실학축전을 원만히 진행하기 위해 한 달여 동안 실학을 공부한 '실학길잡이' 몇 분과 실학축전준비위원들, 그리고 외국인학생을 포함한 아주대학생들과 함께 한 대규모 답사단 이었다.

실학을 집대성한 대표적 실학자인 정약용 선생의 다산생가를 돌아보는 첫 번째 일정은 오전 아홉시에 진행되었다.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 선생의 생가는 1925년 한강대홍수때 유실된 것을 고증을 거쳐 75년부터 복원한 건물이라고 한다.

다산선생은 말년에 고향에 내려와  저술활동에 전념하셨다 한다
다산선생은 말년에 고향에 내려와 저술활동에 전념하셨다 한다 ⓒ 김선호
건물 가운데 생가터가 자리잡았고 왼편엔 다산문화관이, 생가 뒤쪽으로 선생을 모신 묘가 있다. 18년이라는 긴 유배생활을 마치고 선생은 이곳 생가에서 학문을 정리하고 저술활동을 하셨다고 한다. 선생의 여러 가지 호 가운데 생가의 현판에 걸린 '여유당'은 다산선생이 평소에 생활신조처럼 여기던 문구라고 한다.

'얼음 언 겨울 강을 건너듯 매사에 조심하라'는 뜻의 '여유당'의 의미가 어쩐지, 18년이라는 유배생활이 남긴 씁쓸한 교훈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생의 묘소에 참배하는 것으로 다산생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수원으로 이동했다.

9월 둘째 주 일요일,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인 쾌청한 날이었다. 수원행궁앞 무대에는 전통무예인 '무예24기'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날렵하고 절도 있는 동작이 우아한 선을 그리며 상대방을 공략하는 '무예24기'는 정조의 명을 받은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에 의해 정리된 '무예지보통지'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 무예라고 한다.

명칭과 품새가 모두 생소했지만 동작 하나 하나가 더 이상 통쾌할 수 없는 멋진 무예기술이었다. 복장을 갖추고 무예를 펼치는 무사들이 무예를 한가지씩 펼쳐 보일 때마다 외국인을 포함한 관람객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수원화성의 중심건물인 방화수류정과 용연
수원화성의 중심건물인 방화수류정과 용연 ⓒ 김선호
전통 무예인 '무예24기'  공연모습
전통 무예인 '무예24기' 공연모습 ⓒ 김선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추도하기 위한 행차시 머물렀다던 수원행궁은 제2의 궁궐인 만큼 그 규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정조의 행차와 행궁이 지어진 당시의 건물설계를 그려놓은 '원행을묘행궁의궤'에 비해 복원된 행궁은 그러나 담장과 건물의 높이가 매우 낮게 지어졌단다. 건물의 높이가 낮으니 웅장한 맛이 없어 보인다. 행궁엔 궁의 주방인 '별주'와 우물터 그리고 '마방'등을 복원하는 사업이 여전히 진행중이라 한다.

행궁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다산선생이 제작했다는 '거중기'모형이 보인다. 수원화성을 축조하는데 요긴하게 쓰인 거중기는 실사구시의 학문인 실학을 현실로 접목시킨 가장 위대한 발명품중 하나였을 것이다. 수원화성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반나절이 걸린다는데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화성연구회에서 나오신 해설사 선생님이 화성에 대한 이모저모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쉽게 설명을 하는데도 사실은 옛 건물들이란 게 다 한자어로 되어 있는 탓에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아예 방화수류정이 올려다 보이는 용연 근처에서 노닥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화성을 가장 아름답게 관망할 수 있는 건물인 방화수류정은 한 달 반만에 초고속으로 지어진 정자라고 했다. 졸속인 듯 싶은 건축속도는 사실, 건축에 필요한 모든 자재와 그 숫자까지 꼼꼼히 정리해 놓은 '화성성의궤'라는 책 덕분이란다. 어렴풋한 실학이 손톱만큼 보이기 시작한다.

수원에 들어서 팔달문(남문)을 거쳐 장안문(북문)까지 성곽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유신때 시멘트를 많이 써서 날림으로 지은 성곽을 새롭게 복원하는 중이었다. 화성 최고의 정자 방화수류정의 벽면 벽돌의 자연스럽고 오묘한 색감을 기계문명이 최고조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복원해 내지 못한다고 한다. 거무튀튀한 복원한 벽돌의 색감은 홍자색을 띤 자연스런 색깔의 당시의 벽돌의 색감을 흉내내지 못했다.

수원화성의 긴 성곽을 둘러보기 위해선 최소한 3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수원화성의 긴 성곽을 둘러보기 위해선 최소한 3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 김선호
사방팔방이 다 훤히 내다보이는 방화수류정에 앉아 해설사 선생님이 들려주는 화성이야기는 성곽의 길이만큼이나 길었고, 흥미로웠다.( 화성연구소 홈페이지에 미리 연락하면 해설사 선생님의 해설 가능)

추사고택으로 가는 도로변엔 사과가 빨갛게 익어 가는 풍경이 이채로웠다. 사과나무의 초록잎새와 빨간 사과알이 빚어내는 색감의 조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추사고택에선 멋쟁이 할아버지 해설사가 실학산책 팀을 맞아 주셨다. 충청도 사투리에 묻어 나오는 추사고택에 관련된 이야기가 맛깔스럽기 그지없었다.

사랑채에 걸린 세한도에 대한 해석이 귀에 쏙 들어오게 설명해 주시는데, 관람객들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추사고택에서 매우 특이한 정경은 건물의 각 기둥마다 쓰인 글씨들(주련)이었는데, 추사선생이 2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의미 있게 다가온 문구를 칠십대까지 써둔 것이라 했다. '늙으막에 특이한 서적을 보니 오히려 눈이 밝아 온다' 이런 글귀는 아마도 선생이 지긋이 나이 들어 써 둔 글이리라. 늙어서도 책을 통해서 지식을 탐구한 선생의 면모를 보는 것 같아 일순 숙연해지는 문구였다.

추사고택에 대한 해설을 재밌게 들려주신 해설사 할아버지와 관람객들
추사고택에 대한 해설을 재밌게 들려주신 해설사 할아버지와 관람객들 ⓒ 김선호
기둥마다 주련이 인상적이던 추사고택
기둥마다 주련이 인상적이던 추사고택 ⓒ 김선호
사랑채 지나, 증조모이자 영조의 딸인 화순옹주가 기거했다는 안채를 둘러 본 후, 초의선사가 그려준 영정을 모신 영실(사당)에 들러 묵념을 끝으로 추사고택에서의 일정을 마쳤다.

다산 정약용, 개혁군주였던 정조, '무예지보통지'를 통해 조선무예를 확립시킨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그리고 예산에서 만난 추사 김정희선생까지, 그리고 수원화성과, 행궁에서... 어렴풋이나마 실학의 자취를 만났던 하루가 숨가쁘게 흘러갔다.

실학축전2006은 다산 생가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9월 27일을 시작으로 10월 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실학에 대한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이번 행사는 실학정신과 문화를 알리고자 실학체험학교 및 체험마당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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