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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습니다. 살아서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아도 티끌 하나 가져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은 건졌으니 수지 맞는 장사겠죠?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습니다. 살아서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아도 티끌 하나 가져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은 건졌으니 수지 맞는 장사겠죠? ⓒ 배만호
음력 7월, 윤달이고 가을입니다. 그리고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윤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가을은 오는 줄도 모르게 살금살금 다가왔습니다. 어느 순간 떠나려고 하겠지요. 가을이 깊어갈수록 허무함에, 무상함에 괜스레 고독해 하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쯤은 삶과 죽음에 대하여도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고독한 계절, 낭만의 계절, 조락의 계절, 수확의 계절 등등 가을을 가리키는 말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말들 가운데, 나뭇잎이 떨어지는 '조락의 계절'은 죽음을 생각하게 하지요. 봄에 만들어진 잎은 여름의 뜨거운 햇살까지 견디었는데 가을의 쓸쓸함은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윤달은 우리 조상들에게 모든 속습으로부터 '해방의 달'이었습니다. 1년 12달을 모든 신들이 관장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윤달의 경우 13번째 달이므로 인간의 일을 간섭할 귀신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사나 집수리, 이장, 묘지단장, 수의 마련 등을 아무 거리낌없이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윤달에 수의를 장만해 두면 집안 어른이 무병장수하고 자손이 번창한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수의를 해 놓음으로 자손들은 집안어른을 더욱 공경하고, 효로 받드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현명한 부모님들은 자녀 교육의 한 방법으로 수의를 장만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옷이 내가 죽으면 입고 갈 옷이다"

이렇게 자녀들에게 말함으로 자녀들의 마음 속에 있는 효심을 끌어내려 하였습니다. 철모르는 자녀들은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합니다. 부모님의 수의를 벌써 준비해야 하냐고 오히려 투정을 부리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죽는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어른들의 수의를 미리 준비하는 것은 죽음을 삶의 끝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보는 내세관 때문이기도 합니다. 비록 태어날 때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로 왔지만, 죽을 때는 좋은 옷 한 벌은 챙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면 이 세상에 올 때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수의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는 말을 들으면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수의를 입을 당사자도 마음이 편합니다. '내가 죽으면 입고 갈 옷이 있구나'하는 생각으로 걱정이 하나 덜어지는 셈이지요.

수의는 보통 삼베로 만듭니다. 삼베로 수의를 만들면, 좀이 슬지 않아 거풍을 따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삼베로 만든 수의는 조상의 시신에서 잡균의 서식을 막아 시신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모실 수 있게 합니다. 좋은 자리에 묘를 쓰듯이 삼베로 된 수의는 고인의 유골이 변색되지 않고 잘 보존되게 도와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상의 기가 후손들에게 잘 전해져 후손들이 번영과 평안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벌초 차량으로 고속도로는 붐빕니다. 8월이 되면 벌초를 하지 않기에 얼마 남지 않은 7월에 조상의 묘를 잘 손질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옛날처럼 정성껏 낫질을 하는 후손들을 보기가 드물지만, 그나마 잊지 않고 조상의 묘를 찾는 것만도 대단한 일입니다. 벌초도, 제사도 남의 손으로 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돈만 주면 벌초를 대신 해 주고, 돈만 주면 제사상에 오를 음식도 시간 맞춰 가져다줍니다.

조상을, 부모님을 물질적으로 봉양하는 것보다는 마음으로 봉양하는 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입니다. 혹 부모님의 연세가 예순이 넘었다면 윤달이 지나기에 앞서 삼베로 만든 수의를 한 벌 준비해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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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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