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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바람개비가 돌아갑니다. 이제 과거는 잊으십시오. 예전엔 바람개비 도는 곳에 항상 바람이 있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우리들의 시대엔 바람개비는 돌아가지만 바람은 없습니다.

ⓒ 김동원
눈의 착각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컨테이너 하나의 작은 공간을 끝없이 증식시켜 드넓은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눈의 착각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의 시선만 이곳으로 들여놓고 몸은 절대로 들여놓아선 안 된다.

ⓒ 김동원
면벽 수행이란 얘기를 들어보셨나요. 벽을 마주하고 깨달음의 대화를 시도한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그 대화는 십중팔구 벽에 막히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입니다. 당신은 이제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희열처럼 노래가 흘러나오고 춤이 있는 놀라운 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 김동원
머릿속이 복잡하시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헝클어진 생각의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생각의 감옥은 자물쇠 옆에 바로 열쇠가 매달려 있는데도 그 열쇠가 눈에 잘 보이질 않습니다.

ⓒ 김동원
빛이 몰려들거나 혹은 퍼진다고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사실은 빛이 가는 줄을 타고 곡예를 벌이는 중입니다.

ⓒ 김동원
당신은 당신을 딛고 서본 적이 있나요. 이곳에선 그게 가능합니다. 단 치마를 입었을 때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 김동원
슬라이드 필름은 작다. 하지만 그건 언제 커다란 그림이나 사진으로 불쑥 제 몸을 키울지 모른다. 알라딘의 마술 램프 속에 그 큰 덩치를 숨기고 지냈다는 지니의 얘기는 사실 그냥 환상으로 지어낸 동화가 아니다. 슬라이드 필름 속엔 크나큰 덩치의 그림이나 사진들이 지니처럼 몸을 오그리고 있다가 우리가 현상기의 주문을 외는 순간 불쑥 제 몸을 키워 우리 앞에 나타난다.

슬라이드 필름이 다닥다닥 붙은 그 지니의 방에 계신 당신, 조심하시라. 혹시 당신이 실수로 현상기의 주문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모든 슬라이드 필름에서 그림이나 사진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 김동원
당신은 혼자 그 화려한 색의 기둥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겠죠. 그러나 당신 옆엔 또 다른 그녀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손을 뻗어 당신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당신은 그걸 감쪽같이 몰랐죠.

ⓒ 김동원
자전거를 탈 때는 사랑하지 맙시다. 자전거를 타며 사랑하면 바퀴가 찌그러집니다. 사랑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으로 물들이는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 김동원
글자들을 항상 옆으로 늘어놓는 건, 이제 지겹지 않으세요. 이제 글자들도 번지 점프를 하듯 수직으로 꼿꼿이 하강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럼 글자들이 비가 되어 세상을 촉촉하게 적시게 될 거예요.

나에게 이 전시회에서 가장 헷갈렸던 부분은 차와 간단한 식사를 팔고 있는 전시장 한쪽 부분의 카페였다. 잠시 사람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그 카페의 뒤쪽 주방으로 몸을 들여놓았던 나는 그 주방을 전시물로 착각을 했다.

나중에 보니 그건 전시물이 아니었다. 사실 사태는 좀 더 심각하여 찻집에서 주문하여 받아든 커피도 이게 상품인지 작품인지 헷갈렸다. 예술과 일상은 사실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스며들면서 예술 속엔 일상이, 일상 속엔 예술이 녹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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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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