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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창간을 맞아 방한한 이냐시오 라모네 발행인의 인터뷰가 15일 오후 서울 장충동 엠버서더 호텔에서 진행됐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창간을 맞아 방한한 이냐시오 라모네 발행인의 인터뷰가 15일 오후 서울 장충동 엠버서더 호텔에서 진행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FTA(자유무역협정)라는 것이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죠. 하지만 경제적 이익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인 이익을 전제합니다. 강자와 약자가 서로 가까워질 때 언제나 희생당하는 것은 바로 약자입니다."

그의 생각은 분명했다. 그리고 단호했다. 이냐시오 라모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 겸 사장. 세계화와 미국식 문화 패권주의에 맞서 날카로운 논평으로 프랑스 당대의 최고의 논객으로 꼽히는 그가 한국을 방문했다.

작년 문화다양성 행사와 관련해 한국을 방문한 이후 두 번째다. 이번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창간 때문이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장충동 엠버서더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검정색 수트에 연한 핑크빛 셔츠로 취재진을 맞이한 라모네 사장은 때론 강한 어투로, 때론 부드럽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였다.

최근 한국사회의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FTA에 대해선, "미국의 전략은 (다자간 협상은 놔두고) 개별국가와 양자간 FTA를 좀 더 많이 맺으려는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미국은) 국제 규약이나 규범들을 무시할 때가 많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미FTA도 미국의 그와 같은 전략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으며, (한국) 농업 등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서도, "매우 슬픈 일"이라면서 "한국 영화의 위상은 크게 위축될 것이며, 향후 한국 문화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 전문가이기도 한 라모네 사장은 프랑스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언론이 보수화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유로 언론이 대기업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언론이 과거의 비판이나 반항정신이 퇴색한 지 오래"라면서 "미디어 스스로 권력에 봉사하고, 권력을 갖으려고 하다보니 보수화 되는 경향이 더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오마이뉴스>와 같은 참여저널리즘에 큰 관심을 내보이면서, "<오마이뉴스>는 하나의 실험이며, 세계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오히려 <오마이뉴스>의 영향력과 지분구조, 수익성 등에 대해 묻기도 했다.

다음은 라모네 사장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이냐시오 라모네 발행인
이냐시오 라모네 발행인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해 이어 올해 한국 두 번째 방문인데, 어떤가.
"특별히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작년보다 정치적 상황이 좀 긴장돼 있는 것 같다. 북한의 6자회담 등으로 정치적으로 무거운 것 같고, 경제적 상황도 과거보단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전세계적으로 단기간내 급격한 발전을 이룬 나라로서의 모델이다. 그런 활발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느낄수 있어 좋다."

- 현재 한국은 미국과 FTA를 두고 찬반이 뜨겁다. FTA에 대한 발행인의 견해를 듣고 싶다.
"일단 한미FTA의 내용은 잘 모른다. 하지만 FTA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했을 때 작은나라에 좋은 게 없다. 미국은 전반적으로 개별국가와 FTA를 좀 더 많이 맺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FTA를 맺으면서, 국제규약이나 규범들을 무시할 때가 많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FTA를 체결하면서 했던 과정을 보면 그렇다."

"미국과 FTA체결하는 작은 국가는 희생당 할 것"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달라.
"나프타(NAFTA)의 경우를 봐도 나프타가 실질적으로 예상했던 것처럼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 남미쪽 국가들은 나프타로의 편입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칠레와 살바도르, 콜롬비아 등과 개별적으로 FTA를 맺었다. 우회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 미국 전략은 많은 수의 개별국가들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다. 한국을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FTA 전략의 일환이다."

- 유독 미국이 양자간 FTA체결에 적극적인 진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물론 양자간 FTA는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인 이익을 전제한다고 생각한다. 강자와 약자가 서로 가까워질 때 언제나 희생당하는 것은 바로 약자다. FTA 경우에서는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 작은 국가들은 희생될 것이다. 한미간 FTA자세한 부분은 모르겠지만, 미국식 FTA 조약으로 한국 농업은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물론 한국정부 쪽에선 농업을 보호하기위해 싸울 것으로 생각한다."

- 한국은 이번 FTA를 추진하면서 미국에 스크린쿼터 축소를 약속했고, 지난 7월부터 축소된 스크린 쿼터가 시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국내에서 반대도 심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스크린쿼터를 축소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소식이다. 한국영화가 지금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그 같은 자리는 약화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던 이탈리아 영화가 그 예다. 베르니스쿠니 총리가 취임한 후 첫 임기때 영화보호장치가 모두 사라졌다. 그 후 실질적으로 이탈리아 영화는 자취를 감춰 버렸다."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는 매우 슬픈 소식"

이냐시오 라모네 발행인.
이냐시오 라모네 발행인.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일부에선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쿼터를 줄이더라도 별 영향이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쿼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스크린쿼터는 하나의 상징적인 조치일 뿐이다. 스크린쿼터를 줄이더라도 영화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다른 지원 방안이 있다면 생존할 수도 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영화처럼 문화 부문에 보호장치나 지원이 없다면 곧 사라질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영화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스크린쿼터 시스템과 보조금 제도때문이다. 프랑스에선 영화 표의 금액 일정 부분을 프랑스 국내 영화 제작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결국 미국영화가 프랑스 영화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문화는 보호받지 않으면 결국 위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 9·11 테러가 일어난 지 5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이라크전쟁 등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을 비롯해 지구촌 전체는 9·11 이전 보다 훨씬 더 위험해졌다고 생각한다. 부시와 미국 정부는 대테러 전쟁을 통해 아프가니스탄과 팔레스타인 등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또 테러와의 전쟁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 자체도 부시의 수사법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같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은 모두가 기자가 될 수 있는 세상"

- 지금 한국사회는 인터넷이나 매체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 종이신문들의 위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런 미디어 위기가 어디에서 오는 것이라고 진단하는가?
"종이신문의 위기라고 하는 것은 좀 더 정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일간 신문 중에서도 무료신문의 경우는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 흔히 종이신문의 위기라면 유료 일간지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유료일간지의 위기는 먼저 무료신문의 등장과 인터넷의 등장으로 위기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신문뿐만 아니라 저널리즘 자체도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폭발적인 인터넷의 발전에 기인하는 것이다. 요즘 기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기자라고 말할 수 있다. 기자를 구분짓던 특징들이 사라진 것이다. 인터넷이 급격하게 발달함에 따라서 개인 블로그를 만들고, 아니면 사진을 널리 퍼뜨리면서 누구나 다 기자처럼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고유한 기자의 의미가 많이 희석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오마이뉴스>도 시민기자제를 도입하면서, 참여저널리즘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를 하면 어떤가.
"지금은 모두가 기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분명히 저널리즘이라는 것은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저는 그것이 정보의 질을 보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진실을 보장하는 것이다. 인터넷 매체를 보면 실시간으로 바로 정보를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무척 흥미롭고 상당히 매력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 열광적인 인터넷의 시대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다시 언론 매체들이 진실을 담보해줄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본다.

지금 현재 신문의 위기라고 하는 것은 일간지(유료)의 위기이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같은 월간지는 일간지보다는 위기의 정도가 약간 적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한 즉각적인 정보도 필요로 하지만, 깊이 있는 분석과 오랜 기간의 치열한 고민으로 나온 기사들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냐시오 라모네 발행인.
이냐시오 라모네 발행인.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디어 자체가 권력화되면서 보수화"

- 미디어의 위기, 신뢰성의 위기라고 하셨는데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고 했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많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돈이나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정당이나 정치단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어떤 정보가 사실이라고 확인된 그 순간에 정보를 기사화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공정하게 정보를 다뤄야 한다. 그리고, 정보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 혹시 나중에 오보로 밝혀졌을 때엔 과감히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일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차근차근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요즘 같은 때 언론인이 갖춰야할 자세라고 한다면.
"과거보다 언론인의 자질은 높아졌다. 언론이이라면 신뢰성과 정직이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과 합의된 사실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느냐다. 모두가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에 의심을 하고 저항을 해야 한다. 이런 것들에 그동안 우리는 이견을 제시하거나 이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것이다."

- 한국 미디어업계는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같은 진보매체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보수적 매체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기존 매체의 보수적 경향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미디어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들이 대기업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성향이 커지고, 과거의 비판이나 반항정신이 퇴색한 지 오래다. 언론은 과거에 제4의 권력이라고 했다. 여론을 보호하고, 정치-경제권력과 맞섰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미디어 자체가 권력이 됐다. 시민들로부터 (미디어가) 불신을 받는 것도 (미디어가) 이미 권력화됐기 때문이다. 미디어 스스로 권력에 봉사하고, 권력을 갖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보수화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DJ, 부시와 네오콘이 한반도 긴장 조성"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창간호가 나왔는데, 신문은 봤는지. 불어판과 비교해서 어떤가.
"보기는 했는데, 한국어 능력이 부족해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한국쪽 편집진에서 자세히 설명해줘 도움이 됐다. 관심있게 본 부분은 불어판을 번역해서 실은 기사들이었다. 제 생각엔 아주 세심하게 잘 나온 것 같고, 오히려 불어판보다 편집이 더 좋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았다."

이냐시오 라모네 발행인.
이냐시오 라모네 발행인.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창간호의 김대중 전 대통령 인터뷰 기사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았다. 지난 13일에 김 전 대통령을 따로 만나셨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김 전 대통령을 만났을때의 느낌은 아주 지혜롭고, 명철한 지식인이었다. 그의 시각에 따르면 현 부시 행정부와 신보수주의자인 네오콘들이 북한 핵을 핑계로 한반도에 긴장상황을 조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 때의 평화적 해결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 전세계에서 22번째로 발행됐다. 한국어판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었다. 당시 문화다양성을 위해 일하는 한국의 여러 사람들을 만났었다.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여러 곳과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세 군데 정도의 언론사에서 한국어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관심을 나타냈다. 그 얘기를 듣고 우선 언론사들에게 심사숙고 할 것을 이야기했다. 이후 처음에 관심을 표명했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 중에 박승흡 대표가 파리까지 와서 나를 찾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

- 좀 전에 말씀하신 언론사 3곳은 어디였는지.
"솔직히 어떤곳들이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러 곳에서 제안이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의 경영진이 내놓은 것이 가장 충실했고, 진실성이 있었다."

-디플로마티크가 한국에서도 이제 창간이 되었는데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하나.
"현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61개국에서 발행되고 있다. 40여개국에서 종이신문이 나오고, 나머지 20여 개 국가에서는 인터넷으로 만날수 있다. 아시아 지역에선 한국이 처음으로 신문으로 나오게 된다. 한국판의 경우 70%의 프랑스 번역기사와 30%의 국내 기사를 혼합해서 싣는 독특한 편집을 가질 예정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적 시각이 팽배한 한국사회에 또 다른 시각을 선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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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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