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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별 가짓수가 많은 농기구들
종류별 가짓수가 많은 농기구들 ⓒ 전희식
제대로 된 농사꾼인지 아닌지는 씨앗과 농기구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농부가 씨앗을 어떻게 모시는지를 잘 나타내는 속담이 바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것이다. 당치도 않는 말은 하지도 말라는 것인데, 농사꾼은 배가 고파 굶어 죽을지언정 씨나락에는 손을 대지 않을 만큼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씨앗과 더불어 농부들이 실제 사용하는 농기구들을 두루 살펴보면 참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무슨 농사를 짓는지는 물론이고 농법까지 엿볼 수 있으며 그 사회에서 농업이 어느 정도 대접을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농업을 지원하는 기계공업이나 유통 등도 짐작이 가능하다.

도심에 있는 도시농장과 도시 근교에 있는 체재형 농장, 방문형 농장에서 쓰는 농기구 전문점을 찾아간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농업을 지원하는 농기구들은 도시농업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농기구 전문점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란 것은 매장의 크기였다. 단층이긴 했지만 넓이가 전주 서신동에 있는 이마트 만 했다. 단순히 농기구점 이라기보다 농업전문 백화점이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농기구의 종류와 가짓수가 엄청났다. 기껏해야 수 십 평 규모의 철물점만 들락거리던 완주군 촌놈의 기를 팍 꺾어 놓았다

여기에는 농사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었다. 농사용 전기기구와 농사용 작업복, 작업화, 종자, 스프링클러는 물론이고 물 호스를 연결하는 장치, 비옷, 비 가림 지지대, 방충망, 전동기 부속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화원에나 가야 살 수 있는 갖가지 꽃과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것으로 보이는 작물들이 크고 작은 화분에 자라고 있었다.

공구상가에 온 기분이었다
공구상가에 온 기분이었다 ⓒ 전희식
플라스틱 제품 코너도 따로 있었고 특히 디아이와이(DIY)라고 불리기도 하는 스스로 꾸미기 제품 코너에는 농자재 보관함에서 농장 막사까지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릇가게, 전열기구 상점, 철물점, 꽃가게, 농약사, 종묘사, 의류가게, 신발가게 등을 돌아야 살 수 있는 것을 한 곳에 다 모아 놓은 것이다. 물론 모두 농사용 제품이었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이렇게 크게 벌여 놓고도 장사가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대형 대형할인마트처럼 여러 곳에 계산대가 있고 직원이 손님들을 맞아 계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에는 전업농가에서 쓰는 농기구도 많았지만 도시인들이 도시농장이나 집안 텃밭에서 남새를 가꾸고 화단을 꾸미는 아기자기한 연장과 자재들이 훨씬 많았다

베란다 바닥에 깔 수 있는 고운 자갈과 모래도 있었고 마당 텃밭 가장자리를 구획 지을 때 쓰이는 조형물은 모양이나 색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농기구 전문매장에는 세제혜택 등의 지원이 있다고 한다.

각종 씨앗들
각종 씨앗들 ⓒ 전희식
일본 도시농업이 내 걸고 있는 ‘도시를 경작하라’는 구호가 새삼 떠올랐다. 대지의 숨구멍을 다 틀어막는 시멘트 구조물로 뒤덮인 불임의 땅. 재활용 자원으로 순환되지 못하고 한번 쓰고 나면 모든 것이 쓰레기가 되는 대형 쓰레기 생산 공장.

이 숨 막히는 도시의 잿빛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파란 새싹들을 돋게 하는 도시농업 연장들은 포템킨 전함의 함포보다 더 혁명스러운 것이었다.

베란다나 옥사에서 키우는 화분들
베란다나 옥사에서 키우는 화분들 ⓒ 전희식
농사를 짓는 도시.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득하는 도시민들. 노동과정에서 얻는 아이디어를 바로 농기구화 하는 기계공업. 농사생활에 밀착된 공무원들과 유통망.

특별시인 도쿄 도에 농업진흥과가 있었다. 우리가 도청에 간 날은 8월 29일 이었는데 9월 6일에 열리는 인기절정의 여배우이자 도시농부인 ‘타렌또’씨의 농사체험 강연회가 열린다는 벽보와 전단이 도배하다시피 깔려 있었다. 아름다운 그 여배우가 내 눈에는 도시를 갈아엎는 거사에 나선 현대의 여성농민군처럼 보였다.

호미도 천차만별
밭에 가고 싶겠네

▲ '기시타'씨가 '나기나타가야'라는 풀을 보여주고 있다.
농기구를 얼마나 정성 들여 만드는지는 호미나 괭이를 보며 확인 할 수 있었다. 크기도 다양했지만 모양새도 여러 가지였고 재질도 갖가지였다. 넓적한 판으로 된 것은 북주는 것이고 판의 가운데에 하회탈 입 모양 같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은 풀을 매는 것이었다.

흙이 술술 빠져나가 힘이 덜 들게 만든 것이다. 텃밭에서 뽑은 잡초나 낙엽들을 모아 바로 거름을 만드는 거름통도 팔았다.

농기구 뿐 아니라 농자재들도 설비와 생물 분야에 걸쳐 두루 발달 해 있었다. 소형 비 가림 하우스와 방충장치는 앞 번 연재물에서 소개 했었는데 오이나 수세미 등 넝쿨 식물이 타고 올라가는 코가 넓은 그물망사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이야마 시 사과 농장에 갔더니 888888 라는 해충 유인제를 나무에 걸어 놓았는데 수놈들만 유인되어 달라붙는 것이었다. 도쿄 도에 있는 ‘기시타농장’에는 ‘나기나타가야’라는 잡초억제용 풀을 키우고 있었다.

블루베리농장인 이곳은 농약 대신 ‘나기나타가야’라는 풀씨를 가을에 뿌리면 겨울 전에 한 뼘 정도 자라서 월동을 하고 이른 봄부터 무성하게 자라 다른 잡초들의 생장을 막는다. 한 여름이면 씨를 떨어뜨리고 말라 죽어 거름이 된다.

이정도의 무동력 친환경 농기구와 농자재가 보급되어 있다면 도시민들이 농사짓겠다고 덤벼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농주(農住 또는 濃酒)

덧붙이는 글 | <전북일보> '특별기획' 난에 전면에 걸쳐 연재되고 있는 일본도시농업연수기 입니다. 이 글은 9월 18일에 두번째로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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