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9일 4차 6자 회담에서 북핵 문제 타결이 이뤄졌다. 애초 비관적 전망이 많았던 것에 비교하면 극적이었다.
핵심은 이것이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빠른 시일 내에 NPT(핵무기비확산조약)와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보장 감독에 복귀할 것을 약속한다. 각국은 적당한 시점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9·19 공동성명에는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도 담겨있었다.
"조미는 상호 주권을 존중키로 승낙하고, 상호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그들의 양자간 정책에 따라서 그들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북일은 평양선언에 따라 그들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승낙했다. 또 이것은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남은 현안들을 해결한다는 기초 위에서 또, 평양선언의 정신에 따라서 양국관계를 정상화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정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외교목표를 100%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6자 회담 참가국들은 그 해 베이징에서 제5차 6자회담을 열어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제대로 진행됐다면 아마 지금 한국 안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협정의 내용을 둘러싸고 보혁 대결이 한창이었을 것이다.
북 위폐문제 이렇게 커질 줄 누구도 몰라
9·19 공동성명 직후인 9월 20일 나온 미 연방관보에는 북한의 위조 지폐를 돈 세탁해 준 혐의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을 지목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이것이 6자 회담과 9·19 공동 성명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물론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그 해 10월 7일 한 강연에서 "9·19 합의문은 종이조각 몇 마디에 불과하다"며 "미국은 국제적 조약을 지킨 적이 없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지고 앞으로 사태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해 10월 말 방한했던 브루스 커밍스 교수도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핵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6자 회담 자체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같은 목소리는 워낙 긍정적인 전망 속에 묻혔다.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가 새로운 것도 아닌데 미국이 새삼스럽게 문제삼는 것은 북한이 9·19 공동성명 직후 선 경수로 제공 약속을 주장하자 이에 대해 맞불을 놓기 위한 '협상 전략 차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금융제재로 북한을 옥죄었고 김정일 정권은 지난 7월 5일 미사일을 발사 실험을 했다. 이후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됐고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이 나오는 상황이 됐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대체 우리 정부는 뭘 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엇갈린다.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을 지낸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지난 7월19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전부터 위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는데 우리 정부는 9·19 합의로 모든 것이 다 된 것 같은 자화자찬 분위기였다"며 "고삐를 늦추지 않고 동력을 살려가야 했는데 대연정 등 내정에 몰두하면서 북핵문제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아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은 8월 27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9·19 공동 선언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북미 관계개선을 하도록 되어 있다"며 "북한은 위폐나 인권 문제 등을 이 과정에서 다룰 수 있다고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역시 (위폐와 인권 문제 등은) 이행 과정에서 다뤄야 할 문제로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포괄적 접근 노력 이미 트랙에 올라 있다"
현재 미국은 북한에게 6자회담에 먼저 복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선 금융제재 해제를 주장하면서 "제재 모자를 쓰고는 6자 회담에 나갈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4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포괄적 접근 노력'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우리 정부는 포괄적 접근 노력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관련국들 사이에 협상이 진행 중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단 지난 17일 정부 고위당국자는 비공식 브리핑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 재개 및 이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에 대해 관련국들과 직간접적인 교신 그리고 반응을 수시로 반영해서 구체 방안을 조합 중인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9·19 성명 이행 방안도 실제로 손에 잡히는 방안으로 방식으로 진전시킬 수 있도록 지금 작업 중에 있다"며 "포괄적 접근노력은 경주의 스타팅 포인트(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트랙 위에 올라가 있다"고 말했다. 상당히 진행됐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포괄적 접근 노력의 내용을 추측해본다면, 당근(인센티브)과 채찍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 같다"며 "만약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하면 북미 양자회담을 하고, 여기에서 북한이 관심을 갖는 주제를 다루고 경제적 지원도 논의하겠다는 정도의 내용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만약 북한이 6자 회담에 나오지 않으면 5자 회담의 추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바탕을 두고 국제사회를 동원해 압박을 가하겠다는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부시가 '포괄적 접근 노력'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일각에서는 '포괄적 접근 노력'의 실체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일단 정상회담 뒤 가진 양국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포괄적 접근 노력'이라는 단어를 노 대통령만 사용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나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에서도 이 단어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전작권과 관련해서 부시 대통령은 한국 안의 논란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핵심을 찔렀다. 그는 미국의 대한 방위 태세에는 변화가 없고, 전작권 환수 시기는 양국 국방장관이 조절하며, 이 문제가 정치화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포괄적 접근 노력에 미국 정부가 동의했다면 아마 미 언론들이 부시 행정부 대북 정책의 방향 전환으로 대서특필 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미 언론조차 이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으며, 되레 한미 양국 의견차를 미봉했다고 보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최근 한국과 중국을 방문해 유엔 결의안 이행을 강하게 압박했다"며 "여러 정황을 보면 포괄적 접근 노력의 실체가 과연 있는지 의문이며, 정부의 언론플레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아무튼 '포괄적 접근 노력'이 공개된 뒤 북한의 반응은 상당히 싸늘하다.
북한 내 권력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17일 쿠바에서 열리고 있는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 참석, "북한은 미국이 제재를 유지하는 한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와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물론 이는 기존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일 수 있지만 일단 북한의 반응이 신통치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포괄적 접근 노력'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 지 여부는 앞으로 두고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