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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숙 作, 가람 이병기 詩 <발>, 69×45
신명숙 作, 가람 이병기 詩 <발>, 69×45 ⓒ 신명숙

오랜 기간에 걸친 꾸준한 변화

오는 21일 전시회를 앞두고 있는 작가 아성 신명숙씨와 특별한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지만 작품집 편집 과정에 직간접 적으로 관여하면서 작가와 의견을 나눌 기회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입 모아 말하는 것처럼 작가는 차분하였다. 분명한 견해와 명확한 방향이 세워져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은 넘치거나 모나지 않았고, 타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기도 하였다.

작가의 작품 세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 중평이다. 의욕이 넘쳐 외형 변화에 민감해지거나 쉽게 시류를 뒤따르지 않는다는 것. 작가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은 어떠한 변화나 유행보다 큰 울림을 전해준다. 그렇다고 제자리에 머물러 고인 물이 되지도 않는다. 작가의 학서 과정과 작품에 대한 의욕은 가히 놀랍다.

그는 일찍이 일중 김충현 선생을 사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심산 노수현 선생을 모시고 산수화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한글은 목락 김명실 선생과 인연이 되어 갈물한글서회와 주부클럽에 가입하였다. 산돌 조용선 선생으로부터 편지글을 비롯하여 한글의 여러 고전들을 공부하였으며 소헌 정도준 선생을 만나 한글 고체와 한문 서예도 공부하였다. 홍석창 선생을 모시고 문인화 공부를 하고 있으며 김진세 교수를 모시고 이론 공부도 하였다.

작가는 오랜 기간에 걸친 자형의 꾸준한 변화를 꾀한다. 한글서예의 중심에 대한 모색, 궁체의 특성 포착, 고전에 대한 관심 등은 오랜 기간에 걸쳐 시도되는데 변화가 적은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변화와 깊이를 획득해낸다.

대화 중에 “한글이 소리글이기 때문에 궁체의미를 음악과 문학에 비유”하였다는 꽃뜰 이미경 선생의 말을 언뜻 비쳤는데, 작가의 작품관에 대한 단초를 엿볼 수 있었다. 즉 강약의 조화와 자연스러운 율동미, 그러면서도 원숙함과 강한 절제의 미를 확보하는 것이 작품 세계의 근간이 되고 있음이었다.

신명숙 作, 꽃뜰 이미경 詩 <바둑>, 35×35
신명숙 作, 꽃뜰 이미경 詩 <바둑>, 35×35 ⓒ 신명숙
불변이응만변(不變以應萬變)

김정환씨는 작가와의 인터뷰 글에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진광불휘(眞光不輝)’라고 하였고, 김병기 교수(전북대 중문과)는 작품집 평론에서 ‘불변이응만변(不變以應萬變)’이라는 말로 작가의 작품세계를 설명하였다.

‘불휘(不輝)’와 ‘불변(不變)’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가히 극찬에 가깝다. 두 단어가 생성해내는 것은 ‘진광(眞光)’이 되고, ‘만변(萬變)’에 응(應)하는 것의 범주를 더 넘어선다는 뉘앙스를 풍길 정도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 어느 부분이 이러한 느낌을 전하여 주었을까? 김병기 교수의 평론 한 대목을 인용해본다.

“불변이응만변(不變以應萬變)의 자세로 자신의 글씨를 쓰고 있는 아성 여사는 단순히 글씨만 서사(書寫)하고 있는 게 아니라 본래의 서예정신과 한글 서예의 그 숭고한 예술정신을 이 시대에 구현하기 위해서 스스로 서예를 통하여 몸과 마음을 닦고 있다. 그래서 아성 여사의 글씨는 청정하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 작품 가운데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에 대한 얘기를 김병기 교수의 평론에서 더 들어보기로 한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그렇게 좋아서 써 보았다는 <향수> 작품도 청정하고, 꽃뜰 이미경 선생님의 시조 <바둑>이 좋아서 ‘고무줄 서로 댕기듯 겨루는 맘 팽팽하다. 원시안 백의 공세 근시안 흑의 수세. 아뿔사 빗놓인 한 점 흔들린다. 내 기국’이라고 써놓은 글씨는 청정할 뿐 아니라 청순하기까지 하다. 다시 착하디 착한 소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게 신명숙 궁체의 매력이다. ‘고무줄 서로 댕기듯…’과 거의 같은 분위기로 쓴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빛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 빛도 닦으리’라는 작품도 소녀의 청정함과 청순함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그리고 ‘바람에도 색깔이 있었다’고 한 김영희의 시를 쓴 작품도 잔잔하면서도 매우 맑다.”

신명숙 作, 김영랑 詩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35×137×2
신명숙 作, 김영랑 詩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35×137×2 ⓒ 신명숙
관동별곡 10폭 병풍 포함 60여 점 전시

첫 개인전이 되는 이번 전시회에 송강 정철 <관동별곡> 10폭 병풍을 포함하여 6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궁체 작품을 비롯하여, 한글 고체, 서간체, 민체, 국한문 혼서 작품, 문인화 작품도 몇 점 선보인다.

그 동안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로 수많은 초대전과 단체전에 통해 작가의 작품들을 많이 보아오기도 했을 테지만 개인전을 통하여 한자리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은 관람객 입장에서 분명 행운이자 관심을 끄는 전시임이 틀림없다.

작품 내용을 음미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 작가의 선문(選文) 안목은 높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글들이지만 그 글이 담은 의미를 포착해내는 능력은 높은 안목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물론 작가의 마음이 먼저 가 닿은 지점일 것이다.

산돌 조용선 선생의 작품집 서문 가운데 다음 대목이 인상 깊어 인용한다.

“아성은 한글 궁체뿐만 아니라 서화(書畵)도 병행 공부함으로써 한문 서예의 그 많은 비법과 그림에서 오는 부드러운 미적 감각을 한글 획에 접목시켜 자기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서체미(書體美)를 창출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자신의 예술 속으로 함몰(陷沒)하는 무념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부단한 노력에 높이 찬사를 보낸다. 그의 서체를 관조할 때 고(古)하지도 않고 졸(拙)하지 않으면서 편안함과 돈후함과 너그러움을 감지할 수 있다. 마치 당대(唐代) 창신(創新)의 선구자로 명가를 이룬 안진경체(顔眞卿體)를 보는 느낌이다.”

신명숙 作, 이영도 詩 <무지개>, 45×30
신명숙 作, 이영도 詩 <무지개>, 45×30 ⓒ 신명숙

덧붙이는 글 | ※ 아성 신명숙 씨는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1969)하였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로 대한민국미술축전, 서화아트페어 등을 포함하여 다수의 초대전, 단체전 등에 출품하였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등 다수의 공모전 심사위원과 원광대학교 서예과 강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동아문화센타, 현대백화점 문화센타 강사이다. 논문으로 '한글 서체가 궁체로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종성의 변화'가 있으며, <조선시대 문인들과 한글 서예>(공저)를 출간하였다. 

※ 이용진 기자는 <월간 서예문인화>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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