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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는 있는데, 전어를 드실 어머니는 다른 곳에 계셔서 드실 수가 없네요. 반중조홍감이 고와도 품어가 반길이 없어 서러운 것처럼, 맛있는 전어가 있는데, 드실 이 없음이 슬픕니다.
전어는 있는데, 전어를 드실 어머니는 다른 곳에 계셔서 드실 수가 없네요. 반중조홍감이 고와도 품어가 반길이 없어 서러운 것처럼, 맛있는 전어가 있는데, 드실 이 없음이 슬픕니다. ⓒ 배만호
저는 지리산 품에 안겨 태어났습니다. 앞마당에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이 흐르고, 뒷마당에는 커다란 삼신봉이 찬바람을 막아주지요. 강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 저는 산만을 알고 자랐습니다. 강은 15km 가량을 걸어야 갈 수 있었고, 산은 바로 뒤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산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만든 이유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산을 친구삼아 놀았기 때문입니다. 봄이면 나물 캐는 어머니를 따라 산에 오르고,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을 찾아 산에 오르고, 가을이면 다래, 으름, 밤 등의 온갖 과일을 따러 산에 오르고, 겨울이면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하러 산에 올랐습니다. 산에 올라 안개 낀 강을 바라보는 것으로 섬진강은 다가왔습니다. 어린 눈으로 바다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지요.

그래서인지 그 시절엔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사 온 바다 생선들이 신기하게만 보였습니다. 명절이나 제사가 아니면 늘 사오는 생선이라야 고등어와 갈치가 전부였지요. 그나마 겨울이 아니고는 그런 생선들도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너무 작아 먹을 것도 없어 보이는 생선을 사오셨습니다. 햇살에 비친 은빛을 바라보기가 눈부실 정도였지만, 처음 보는 생선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광주리에 가득 담아 오신 생선을 마당가에 있는 수돗가에 펼치시고는 싱싱한 놈으로 몇 마리를 가려냈습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비늘을 치고 지느러미를 떼어내고는 듬성듬성 썰어서는 부뚜막에 놓아 둔 초장과 함께 먹으라고 주셨습니다.

생선을 생으로 먹는다는 것을 몰랐던 저는 멈칫거렸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잘도 드셨습니다. 바쁜 가을에 잠시 여유를 즐기며 전어회와 소주를 한 잔 드셨지요. 그렇게 감질나게 드시는 모습을 이제 다시 볼 수는 없지만, 그런 모습 때문에 어머니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산골로 시집와 살면서 바닷고기가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읍내 장에서 집까지는 승용차로 15분이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날인데다, 시골의 완행버스를 타면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렇게 비좁은 버스에서 신선한 전어를 아들에게 맛보이려고 얼마나 애쓰셨을까요? 하지만 아들은 뼈째 썰어서 먹는 전어가 영 입맛에 들지 않습니다. 두어 번 맛보고는 이내 돌아서지요.

그런 전어를 지난해 이맘때 어머니께서 맛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게 세상에서 맛보는 마지막 전어가 되었습니다. 간병을 하던 제가 어머니 곁을 비울 수가 없어 멀리 사는 친구에게 전어를 사 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친구는 김해에서 진주까지 왔습니다. 아픈 친구의 어머니에게 전어회를 맛보여 주려고 먼 길을 온 것이지요. 깻잎에 연한 고기만을 골라 마늘과 된장을 넣어 어머니께 싸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힘겹게 한 입 드시고는 어린 아이마냥 투정을 부렸습니다.

"좀 맛있는 걸로 조라. 요거는 맛 없다."
"엄마, 그게 젤 맛있는 뱃살인데…."
"에이, 그래도 맛 없어, 딴 걸로 싸 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이 입맛이 없는 것은 당연했겠지요. 그러나 그때 어머니는 곧 나을 것이라고 믿고 계셨습니다. 아픈 몸이 잠시나마 좋아질 때면 기적이라도 바라는 마음에서 어머니께 곧 나아 집에 갈 거라고 했으니까요.

아들의 거짓말을 어머니는 믿어 주었습니다. 아니 믿어주는 척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당신이 죽는다는 것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아들에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아들을 속였습니다.

끝내 죽음이 다가온 것을 숨기시던 어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자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고 겨우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욕봤다…. 니가… 고생헌 것을 봐서라도… 죽으먼… 안데는디…. 미안허다."

짧은 몇 마디 말을 하는 것조차 너무 힘드신 어머니는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내 놓지 못하셨습니다. 겨우 눈동자만 힘겹게 움직였고, 가볍게 눈만 껌벅거렸습니다. 그리고 깊어가는 가을밤, 떠나가셨습니다. 검은 하늘에선 별이 빛났고, 바람은 싸늘하게 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전어회를 처음으로 맛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전어회를 마지막으로 드셨습니다. 아들에게 처음으로 맛보인 생선을 어머니는 이 세상 삶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드셨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밤공기는 싸늘했습니다. 하늘은 점점 진한 옥빛으로 변해 갔고, 또 높아갔습니다.

어김없이 가을은 왔습니다. 전어도 돌아왔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옥빛으로 변해가고, 밤바람은 싸늘합니다. 물론 어머니의 아들도 있습니다. 다 그대로인데, 어머니만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을이 오면 더 자주 눈물이 흐릅니다.

덧붙이는 글 | 어머니를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먼저 흐릅니다. 짧은 글을 이틀 동안 쓰면서 글자수만큼 눈물을 흘렸습니다. 약한자의 힘, 경남도민일보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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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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