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뒤지는 재미, 아는 사람은 안다. 퀴퀴한 냄새와 때로 풀풀 날리는 먼지가 좀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책이 다 있었나?'하는 발견의 재미가 솔찮다.
때론 그 발견이 좀 생뚱맞을 때가 있는데 오늘 찾아낸 <스타워즈-경기도의 역습>같은 책이 그렇다.
외계인 침공에 미국도 무릎꿇었는데
이름만 들어도 환경오염이 느껴지는 '오물리우스'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한다. 공해가 많은 나라일수록 쉽게 무너지기 때문에 여러 외계인들의 침공에서 지구를 구해주었던 미국도 무릎 꿇고 남은 것은 경기도다. 미국은 경기도의 비밀을 알기 위해 MIB 요원인 '매닌'과 '블랙'을 파견한다.
경기도가 외계인 침공에 끄떡없는 이유는 환경이 보존되었고, 농업부터 공업까지 자체 산업 기반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랑스러운 경기도 출신 조상님들까지 계시니 누가 감히 경기도를 넘보겠는가.
책을 펴낸 곳이 '경기도청 공보관실'이니 이런 만화를 빌려 아이들에게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도 경기도에 살고 있는데 이 만화를 보고 새로 알게 된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만화에 불순하달까 노골적인 의도를 심어 놓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책 곳곳에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원래 또 뭐 붙여 놓으면 궁금해서 못 참는다. 살살 떼어보니 '경기도 도지사'를 '경기도 사령관'으로 바꿔 놓았다. 아 그러고 보니 노태우 전 대통령을 닮았다고 생각했던 사령관님이 사실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였구나!
주인공으로 등장한 어린이들도 활약을 하지만 사령관이 출연 비중도 크고 중후하게 나왔다 싶었는데 세종대왕이 잠드신 영릉이 있는 경기도답게 알아서 만화로 '용비어천가'를 지은 셈인가?
국감서 논란, 선관위선 지적... 펴낸지 2년만에 헌책방 신세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2003년에 출판된 <스타워즈 경기도의 역습>은 2004년 국정감사에서 '전량 회수해라', '초등학생 학습용일 뿐이다' 등의 논란이 있었다. 선거관리위원회 지적을 받아 '경기도 도지사'를 '경기도 사령관'으로 수정해서 배포했는데 공식 발행 부수가 2만부니 그걸 다 붙이는 것도 일이었겠다.
재치 만점인 책방 주인아저씨는 <스타워즈 경기도의 역습>을 SF로 분류해 놓으셨다. 제목에 '스타워즈'가 있어서 그러셨는지 아니면 고도의 해학인지는 여쭙지 못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열혈팬인 나로서는 도지사 띄우기에 스타워즈를 팔아먹는 것이 마뜩찮다.
지방 자치단체에서 홍보용 책자를 만드는 게 문제는 아니다. 흥행에 영향받지 않고 주어진 예산만 집행하면 되는 홍보용 책자를 통해 꼭 필요한 정보를 담은 좋은 책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어렸을 때 보던 간첩 신고 요령 만화에서 몇 걸음 나아가지 못한 미학에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홍보 책자들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지, 이젠 좀 달라 질 때도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