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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쿠데타 다음날인 20일 젊은 태국군인 한 명이 탱크 위에서 조간신문을 유심히 읽고 있다.
태국 쿠데타 다음날인 20일 젊은 태국군인 한 명이 탱크 위에서 조간신문을 유심히 읽고 있다. ⓒ 연합뉴스 / AP

당혹스럽다. 80%가 넘는 태국 국민이 군사 쿠데타를 지지했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고, 한국의 일부 네티즌이 "우리 군인들은 뭐하느냐"고 다그쳤다는 소식도 당혹스럽다.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이 정부를 향해 타산지석으로 삼으라고 훈수를 둔 사실도 당혹스럽다.

하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건 따로 있다. 어떻게 보도할 건지, 또 이미 보도된 내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참으로 당혹스럽다. 솔직히 말해 정답을 찾기가 어렵다.

태국의 군사 쿠데타를 평가하는 언론의 어조는 단호하다. <한국일보>는 "수치스러운 시대착오적 사태"라고 비난했고, <한겨레>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너무도 당연한 비판을 앞에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그 다음에 쏟아낸 분석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자초'했다고 했다. <한겨레>는 '빌미'를 줬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결국 터졌다"고 했으며 <오마이뉴스>는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이런 분석이 태국민의 환호, 태국 국왕의 쿠데타 승인 사실과 접합되면 어떤 결론을 잉태할까?

진실을 말하는 건 분명하다. 탁신 총리의 부패와 독선, 그리고 경제난이 태국 군부에게 '빌미'를 주고, 군사 쿠데타를 '자초'한 건 사실이다.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는 인과성이 있다.

쿠데타 정당성 부여는 망발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하지만 덮으려 해도 덮을 수 없는 모순도 있다. '수치스러운 시대착오적 사태'에 이유를 대는 행위가 그 예다. 이렇게 되면 이유의 절박성과 정당성 정도에 따라 '좋은 쿠데타'와 '나쁜 쿠데타', 또는 '최악의 쿠데타'와 '차악의 쿠데타'로 층위가 나뉜다. 이건 아니다.

군사 쿠데타는 '악'이다. 이 '악'에 일말의 정당성이라도 부여하는 언사는 망발이다. 군사 쿠데타에 대해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비난하고 저항해야 한다. <한겨레>가 그랬다. "쿠데타 주도세력은 탁신 총리 정부의 부패와 실정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이는 작은 악을 더 큰 악으로 덮어버리려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우리 언론은 왜 '궤변'을 쏟아냈을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객관적 평가와 일방적인 자기주장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우리 언론은 '경계'하기 위해 분석했다. 그래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서울신문)는 주장도 나왔다.

그래도 꼬리를 자를 수 없다. 그럼 유기준 대변인의 논평은 쌍심지 켜고 핏발 세울 만한 것인가?

상식적인 결론은 내놓을 수 있다. '거 봐라' 화법을 늘어놓지 말고, '문단속' 자세로 군사 쿠데타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유기준 대변인의 논평은 잠재적 원인 제공자, 의무적 경계 주체에서 자신들을 쏙 뺐다는 지적에서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럼 언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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