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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한국일보 강당에서 '대립과 갈등의 시대,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란 주제의 강연을 하고 있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 이명옥
"대립과 갈등을 푸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언론이 소통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언론은 사람들의 신뢰를 잃었죠. 누가 뭐라고 해서 (단번에) 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우리만의 고집이기 때문이죠.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보통 고집 센 사회가 아닙니다"

대립과 갈등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에 '진정한 소통'이란 화두가 던져졌다. 이것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 22일 한국일보 강당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5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제기한 주제였다.

신영복 교수는 사람보다는 물질이, 인문학보다는 돈 되는 학문에 맹목적인 가치를 두고 있는 지금 인간다운 관계를 어떻게 맺을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자본 중심의 사회, 소통의 장 만들기 힘들어

"쌀과 구두는 같지 않아요. 그런데, 시장에서 쌀과 구두는 동등한 가치로 교환되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쌀과 구두의 정체성은 사라지게 되죠. 사람 = 연봉 1억. 이 경우 역시 인간의 가치에 대해 묻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에선 돈만 많이 벌면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 교수는 갈등과 대립의 원인을 자본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이해관계가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이해관계의 대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신 교수는 대립과 갈등 속에는 ‘목표’, ‘속도’, ‘효율’, ‘승패’를 중시하는 자본의 논리 역시 숨어있다고 말했다.

“자본은 회전속도가 빠를수록 더 많은 이익이 납니다. 계속 빠르게 증식하지 않는 돈은 자본이 아닌거죠. 자본주의 사회는 바로 이런 자본의 운동법칙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사회에서는 목표만 달성되면 다른 모든 수단이 합리화되고 승패중심의 사회가 되어버린다고 말한다.

“목표의 달성으로 모든 수단이 합리화되는 사회에서는 게임의 룰이 없어집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말엔 기득권의 논리가 숨어 있는거죠."

결국, 과정 그 자체가 존중되지 않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지난 15일 고려대에서 열린 ‘인문학 선언’을 언급하며 인문학의 위기 역시 이런 자본의 논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했다.

"조선시대에는 완성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문사철시서화(文史哲詩書畵)를 하며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을 다 배웠죠. 그런데 요즘 대학은 돈 되고 잘 팔리는 것이 중심이 되어버렸습니다."

관계성이 아닌 배타성이 갈등의 원인

또한 신영복 교수는 우리 사회가 자신의 존재성을 배타적으로 강화하는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근대사회의 핵심은 강자가 자신을 계속 키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춘추시대에는 수십 개의 국가들이 12개로 그리고 그것이 전국시대에는 7개로 합쳐졌고 결국엔 진나라로 흡수 통합됩니다. 그런데, 하나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살상과 파괴가 있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은 과거의 대립과 갈등은 현재의 금융 자본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의 금융 자본은 가치 창출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큰 자본이 작은 자본을 삼키는 것이지요."

그러나 신 교수는 대립으로 탄생한 현재의 금융 자본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강자의 말로를 봅시다. 수많은 대립과 갈등 속에 생겨난 진나라 역시 약소국의 연합에 의해 얼마 안 돼서 망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의 희생에 의한 공적은 냉정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를 완성하는 과정, 먼 여행

▲ "지(知)란 사람을 잘 아는 것 즉,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라고 말하며 설명을 하고 있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 이명옥
자본의 논리, 그리고 근대의 존재론적 사고가 문제가 있다면, 신영복 교수가 말하는 진정한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문학적 가치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문화가 소통의 전제가 됩니다. 또한 근대의 존재론으로부터 관계론으로의 전환이 진정한 소통의 전제조건입니다.”

즉, 그것은 자본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가치를 중심으로, 존재론적 사고가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가는 문화가 바탕이 되어야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탕이 된 상태에서 신 교수는 사회의 발전을 고려하기 전에 자신만의 먼 여행을 완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두 부류가 있습니다. 세상에 자기를 맞추는 지혜로운 사람만 있었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았겠죠. ‘좀 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 수 없을까’, ‘나의 의식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를 우직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바뀝니다.

우직한 사람은 쿨 헤드와 뜨거운 인간적인 애정의 결합 즉,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 그리고 사람들이 고뇌하는 현장에 서는 것 즉, 가슴에서 발로의 여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발전은 기존의 사회의식에 대해서 우직한 독법을 키우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신체적으로 보면 가까운 거리이지만 실천하기에는 쉽지 않은 점에서 먼 여행인 것이다 .

신 교수는 20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을 때 위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20년 징역 살고 사회에 나오니, 대학교 때 앞에 나서서 운동했던 똑똑한 사람들 중에 현재 운동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시절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만이 지금까지 운동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는 그들에 대해 우리 사회를 우직한 독법으로 읽고, 보다 민주적으로 알아가고 있는 사람들로 평했다.

우직한 언론을 바란다

신영복 교수는 대립과 갈등 속에서 진정한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뢰집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사회 집단이 없다면 이항대립이 될 것입니다. 소수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경계해야 합니다. 신뢰 집단이 없는 사회는 매우 불행합니다."

이에 대해 신뢰집단으로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개인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비판성을 강화하면서, 그 사회의 뿌리를 만들어 주는 일. 이런 일을 누가 해야하지 않을까요. (이점에서) 언론이 사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우직하게 인식할 수 있는 독법을 주면 좋겠습니다.”

따라서 그는 언론은 진실과 비판을 본령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여럿이 함께’라는 붓글씨를 썼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제 글씨를 보고 ‘방법만 있고 목표가 없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에는 밑에 ‘여럿이 함께 가면 그 뒤에 길은 생긴다’라는 말을 써놓았습니다.”

언론이 신뢰를 받으려면 앞에서 끌고 가려는 생각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다 받아들이는 자세가 신뢰를 얻는 자세라고 말했다.

▲ 200여석의 좌석이 모자를 정도로 강당에는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 이명옥
200여석의 좌석이 모자랄 정도로 강당에는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강의가 길어져 잠시 동안만 문답이 이뤄졌다.

‘힘든 감옥 생활을 이겨낸 비결’을 묻는 질문에 신 교수는 “자기의 결단, 사명감, 소영웅주의도 있었겠지만, 그 밑바탕에는 양심문제가 있었습니다”라고 밝혀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말했다.

또한 “젊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한꺼번에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래가기 위해서는 목표로부터 동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길에서 동력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쉽게 가려고 하지 말고 꾸준히 길을 걸어가며 살아갈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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