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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붉은 옷으로 갈아입다가 들킨 단풍나무들이 흐르는 물에 그 부끄러운 얼굴을 드리우고 우리들을 맞고 있었다.
서서히 붉은 옷으로 갈아입다가 들킨 단풍나무들이 흐르는 물에 그 부끄러운 얼굴을 드리우고 우리들을 맞고 있었다. ⓒ 서종규
경상남도 밀양 재약산 수미봉에서 표충사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계곡에도 가을이 물들고 있다. 계곡엔 가을이 흘러 층층폭포로 떨어지고, 그 떨어진 가을은 다시 홍룡폭포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가을은 산 전체를 천천히 물들이고 있다.

가을을 날리는 억새의 물결은 이미 지난 8월말부터 영축산-신불산-간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배냇고개를 넘고, 능동산을 지나 재약산 사자봉을 넘어 사자평원에서 절정을 맞고 있다.

이제 산은 출렁이는 억새는 물론 붉은 나뭇잎들로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가을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지만, 금세 우리의 세월도 물들인다. 계곡에 드리워진 가을의 빛깔이 흐르는 물에 떠내려 가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계곡에 드리워진 가을의 빛깔이 흐르는 물에 떠내려 가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계곡에 드리워진 가을의 빛깔이 흐르는 물에 떠내려 가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 서종규
9월 23일(토) 새벽 6시,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39명이 제3차 '영남의 알프스' 등반을 위하여 광주에서 경남 밀양의 재약산으로 출발하였다.

유럽의 알프스 산에 버금간다는 '영남의 알프스'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 경북 청도군 운문면 등 3개 시도에 모여 있는 가지산(1240m), 운문산(1188m), 재약산(1189m) 신불산(1208m) 영취산(1059m), 고헌산(1032m), 간월산(1083m) 등 해발 1천m 이상의 7개 산들을 지칭한다.

재약산은 재약산, 천황산, 수미봉, 사자봉 등으로 혼동되어 부르고 있다. 지형도나 대부분의 등산지도에는 재약산(1018m)과 천황산(1189m)이 따로 표기되어 있다. 재약산은 주봉이 수미봉(1018m)이고 천황산은 주봉이 사자봉이다.

천황산이 일제 때 붙여진 이름이라 하여 우리 이름 되찾기 일환으로 천황산 사자봉을 재약산 주봉으로 부르면서 혼동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산하'에서는 천황산을 재약산으로 표시한다. 그리고 산꾼들은 대부분 재약산은 재약산 수미봉, 천황산은 재약산 사자봉으로 부르고 있다.

제약산 등반은 밀양 얼음골 계곡에서 약 2시간 정도 오르는 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석남사로 넘어가는 도로에 뚫린 석남터널(800m 정도)이나 배냇고개(900m정도)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오르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이다.

바람이라도 한 줄기 불어오면 일제히 능선쪽으로 드러눕는 억새의 물결
바람이라도 한 줄기 불어오면 일제히 능선쪽으로 드러눕는 억새의 물결 ⓒ 서종규
오전 10시 15분에 석남터널에서 제1팀이 출발하였고, 제2팀은 오전 10시 30분에 배냇고개에서 출발하였다. 배냇고개는 간월산을 지나 신불산-영축산으로 가는 코스와 재약산으로 오르는 출발점이다.

배냇고개에서 재약산으로 오르는 길은 임도가 나 있었다. 간혹 승용차들이 임도를 따라 지나가는 것도 보이는데, 도로를 따라 등산을 하는 것은 여간 따분한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도로는 재약산 사자봉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사자봉 오르는 능선의 억새의 물결이 황홀하였다.
사자봉 오르는 능선의 억새의 물결이 황홀하였다. ⓒ 서종규
낮 12시 30분, 점심을 먹은 기상측정탑 아래까지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이 계속되었다. 간혹 산길이 조금씩 있기는 하였으나 길은 계속 도로를 따라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배냇고개나 석남터널에서 조금만 오르면 곧바로 이어지는 능선은 능동산(983m)에서 제약산 사자봉까지 계속 이어져 있었다.

지난 두 번에 걸친 '영남 알프스' 등반 때에는 가득한 구름으로 멀리까지 바라볼 수 없는 안타까운 점이 많았지만 이번 산행은 날씨가 너무 맑았다. 북쪽으로 '영남 알프스'라고 불리는 운문산과 가지산이 보였고, 남쪽으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이 보였다. 그리고 동쪽으로 고헌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재약산에서 북쪽으로 ‘영남 알프스’라고 불리는 운문산과 가지산이 보였고, 남쪽으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이 보였다.
재약산에서 북쪽으로 ‘영남 알프스’라고 불리는 운문산과 가지산이 보였고, 남쪽으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이 보였다. ⓒ 서종규
기상측정탑 아래에서 점심을 먹은 우리들은 임도에서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어 재약산 사자봉으로 향하였다. 주위에는 나뭇잎들이 물들고 있었고, 억새의 물결은 청명한 하늘과 대조를 이루며 더욱 출렁거렸다.

'샘물상회'라고 붙여진 건물에서는 음료를 팔고 있었고, 주위에는 몇 대의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이 곳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사자봉으로 오르는 길에 세워진 산행지도를 보면서 사자평원의 갈대를 기대하였다.

사자봉으로 오르는 길에 핀 억새의 물결이 황홀하였다. 바람이라도 한 줄기 불어오면 일제히 능선쪽으로 드러눕는 억새의 물결. 더구나 넘어가는 햇살을 받은 억새의 잎은 억새꽃과 함께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구절초는 이제 하얀 꽃을 능선에 점점이 찍고 있었다.
구절초는 이제 하얀 꽃을 능선에 점점이 찍고 있었다. ⓒ 서종규
5월 단오에 다섯 마디가 자라고, 9월 9일에 아홉 마디가 자란다는 구절초는 이제 하얀 꽃을 능선에 점점이 찍고 있었다. 너무나 순결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하얀 구절초는 가을 산을 대표하는 꽃으로 우리들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오후 2시 사자봉에 도착했다. 엉성하게 쌓인 돌탑이 하나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천황산'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우뚝 서 있었다. 천황산이라는 말이 조금 어색하게 보였다. 그냥 사자봉이 훨씬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사자봉에 올라보니 사방의 중심이 되었다. 영남의 알프스라는 이곳 주위엔 1000m가 넘는 산봉우리들이 여덟 개나 된다. 그런데 그 여덟 개의 산들이 모두 이 사자봉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황산'이라 이름 지었는지 모르겠다.

넘어가는 햇살을 받은 억새의 잎은 억새꽃과 함께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넘어가는 햇살을 받은 억새의 잎은 억새꽃과 함께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 서종규
사자봉에서 수미봉에 사이를 사자평원이라고 부른다. 이곳 125만평에 이르는 재약산 동쪽의 사자평원은 두 봉우리 사이의 해발 800m 지점부터 완만한 타원형의 언덕들로 이어진 분지이다. 이 광활한 분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억새벌판이다. 억새풀이 밀집해 자라는 곳만도 5만평에 이른다.

하지만 잔뜩 기대를 가지고 달려갔던 사자평원의 억새는 실망만 가져다주었다. 주위에 잡목이 많고,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었다. 온통 그 넓은 평원에 하얗게 핀 억새들이 출렁거리지 않았다. 군데군데 무리 져 핀 억새의 물결은 아직도 출렁거렸으나 명성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샘물상회에서 사자봉 오르는 능선의 억새의 물결이 더 황홀하였다.

수미봉은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져 억새의 평원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수미봉은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져 억새의 평원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 서종규
수미봉에 오르는 길엔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져 억새의 평원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수미봉 바위 위에 '재약산'이라는 표지석이 우뚝 서 있었다. '재약산(載藥山)'이라는 이름도 '재악산(載嶽山)'이라고 고쳐야 된다는 논란이 있는가 보다.

수미봉에서 고사리분교터를 지나 표충사로 내려가는 계곡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능선과 평원을 걸었던 우리들의 발걸음에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이 있을까하는 반가움으로 가벼워진 것이다.

서서히 붉은 옷으로 갈아입다가 들킨 단풍나무들이 흐르는 물에 그 부끄러운 얼굴을 드리우고 우리들을 맞고 있었다. 흐르는 물에 떠가는 낙엽 몇 잎도 단풍 그림자를 간질이며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재약산 수미봉에서 표충사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계곡에도 가을이 물들고 있다.
재약산 수미봉에서 표충사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계곡에도 가을이 물들고 있다. ⓒ 서종규
고사리분교터에서 내려오다 만난 층층폭포는 큰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이정표에 나와 있는 층층폭포를 보며 그냥 폭포려니 했던 마음이 미안했다. 거대한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대단하였다. 우리들은 폭포 앞에 놓인 흔들거리는 나무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지나갔다.

그런데 층층폭포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었던 것이다. 한 참 내려와서 뒤돌아보니 거대한 폭포 하나가 또 그 아래에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래 폭포로 내려가는 조그마한 길이 있었지만 우리들은 시간에 쫓겨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층층폭포를 지나 조금 가파른 길을 내려가다가 저 아래 계곡을 보내 거대한 폭포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홍룡폭포이다. 홍룡폭포 주위의 나무들은 떨어지는 햇살을 받아 붉은 기운을 더 힘껏 발하고 있었다.

계곡 아래로 내려올수록 바위며 흐르는 물이 맑고 깨끗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녁 6시30분, 신라 진덕여왕 때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표충사에서 치는 종소리가 온 계곡에 울려 퍼졌다.

산은 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산은 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 서종규

덧붙이는 글 | '영남의 알프스' 등반을 3차에 걸쳐 올랐습니다. 지난 8월 28일(토)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9월 9일(토) 운문산, 가지산을 다녀왔습니다. 1,2차 등반에 관한 기사를 보시려면 제가 쓴 다른 기사보기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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