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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솟이 짐승들에게 소리로서 반응을 보인다.
솟은 자신이 내는 소리가 그 짐승들에게 위협적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솟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솟이 내는 소리는 저들에게 위협적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솟은 이런 가슴 졸이는 상황을 오래 유지시키고 싶지 않았다. 솟은 세 번째 반응을 선택하고서는 입을 모아 짐승들이 든 상자에서 나오는 선율을 최대한 따라해 보려고 애를 써 보았다.
그것은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바람소리와도 같아서 솟은 성대의 울림을 자제하고 입술을 모아 바람을 내보내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입술이 살짝 떨리며 ‘삐’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짐승들은 살짝 놀라는 눈치였지만 그리 경계심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솟은 입술사이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나름대로 조절해보려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아서 ‘삐’하는 소리와 바람이 새어나오는 소리가 번갈아 나왔다.
어느덧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안개가 순식간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얇은 나뭇잎사귀 하나를 솟의 머리위에 떨어트렸다. 솟은 그 잎사귀를 손으로 잡아 내치려다가 문득 이 잎사귀를 입에 물고 입 바람을 내어 보내면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로 짐승들이 자신에게 들려준 소리를 흉내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솟은 나뭇잎을 입술에 자근이 물고 바람을 내어 보내었다.
솟이 입술에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나뭇잎에는 떨림이 오지를 않았다. 솟은 눈을 감고 입술의 힘을 빼고 들었던 선율을 되새기며 부드럽게 잎사귀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 떨림은 잎사귀에 고스란히 전달되며 솟이 마음먹은 대로 소리를 내었다.
-삐 삐빠삐삐삐 빠 삐삐삐삐 삐삐
솟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잎사귀를 불었기 때문에 눈앞의 반응을 금방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일단 마음먹은 대로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솟은 앞에 무엇이 있다는 생각 따위는 뒤로 젖혀두게 되었다. 솟이 자신도 모르게 그 선율에 깊이 매료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솟에게는 짐승들이 내보내는 소리에서 단지 은은함만 느꼈지만 자신이 통제하고 있는 소리에서는 모든 생명의 울림과 숨소리를 되새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솟이 부는 잎사귀의 선율은 짐승들이 들려준 선율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변조를 일으키며 전혀 새로운 선율로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소리가 계속되면서 솟은 그 소리에 좀 더 자신의 감정을 실어 보내었다. 수이와의 만남, 밤하늘의 별을 이으며 그림을 그렸던 둘만의 즐거운 하룻밤, 그리고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이 수이를 수수께끼의 짐승들의 손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통곡의 날을 되 세기며 솟은 감정에 복바쳤다.
어느덧 솟의 눈가에는 두 줄기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솟은 입에 문 잎사귀를 길게 분 뒤 느릿하게 그것을 입에서 뗀 후 고개를 떨어뜨린 채 주먹을 쥔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눈앞에서 짐승들이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닫고서는 고개를 퍼뜩 치켜들었다.
짐승들은 멍한 표정으로 이미 한참 전에 소리를 거두어들인 상자를 든 채 멍하니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솟은 그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서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안개가 걷힌 가운데 낮은 언덕에 잠들어 있던 모든 이들이 일어나 솟을 바라보고 있었다. 짐승 중 하나가 솟을 가리키며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더니 바닥에 떨어진 잎사귀를 주워들고서는 부는 시늉을 해보였다.
솟은 그것이 다시 한번 잎사귀를 불어달라는 표시임을 알고서는 다시 잎사귀를 지긋이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짐승과 모든 사람들은 솟이 부는 잎사귀의 첫소리를 기대하며 일제히 숨을 죽였다. 솟은 눈을 감고서는 한참동안 감정을 끌어올리더니 길게 잎사귀를 불어대었다.
-삐 삐......
잎사귀 소리는 종전과는 달리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고 점점 높아져만 가더니 종국에는 모두의 귀를 찢어버릴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만!”
남현수는 땀에 흠뻑 젖은 채 과거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그의 앞에는 마르둑이 다소 지친 것 같은 모습으로 팔을 늘어트리고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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