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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회물품을 판매중인 서초노인봉사대 허을희할머니(80세)
바자회물품을 판매중인 서초노인봉사대 허을희할머니(80세) ⓒ 김혜원
“자, 싸요 싸. 예뻐지는 미용비누가 천원. 멋쟁이 아가씨 옷도 천원이에요. 천원.”

길거리를 지나는 젊은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물건을 팔고 있는 분은 80세 허을희 할머니. 서초노인봉사대 ‘와우’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활동하고 계신 허 할머니는 벌써 몇 년째 노인의 날 행사에 참가해 물건도 파시고 이웃돕기 행사 등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단다.

“나 팔학년이야. 얼마나 좋아. 이렇게 나와서 봉사도 하고 여기서 나온 수익금으로 독거노인도 도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어. 힘들지 않아. 즐겁고 행복해.”

경노당과 중풍.치매 어르신이 만든 작품도 독거노인돕기를 위해 판매된다.
경노당과 중풍.치매 어르신이 만든 작품도 독거노인돕기를 위해 판매된다. ⓒ 김혜원
커피와 떡을 팔고 있는 아름다운 두 어머니 역시 노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곱고 활력 있다.

“커피랑 떡 드시고 기부금도 내세요. 좋은 일 하시는 거예요. 네,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커피요, 떡 드세요.”

서초 노인봉사대 경력 5년이라는 지계옥(75) 할머니는 이미 봉사에는 이골이 난 베테랑. 베테랑답게 후배 이정자(65) 할머니와 함께 커피와 떡 판매에 신이 난 지계옥 할머니는 이런 행복과 즐거움을 모르는 다른 노인 분들에게 함께 즐거움을 나누자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즐겁고 행복하지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건 나이를 떠나 행복한 일이에요. 나이 들었다고 집안에 들어앉아 대접만 받으려고 하면 인생이 더 우울합니다. 이렇게 복지관에 나와서 친구도 사귀고 공부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면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집에 계신 노인분들 어렵게 생각 말고 많이들 나와서 함께 행복해 보시자구요.”

건강 맷돌춤을 선보이는 어르신들. 관객과 무대가 하나 된 공연.
건강 맷돌춤을 선보이는 어르신들. 관객과 무대가 하나 된 공연. ⓒ 김혜원
행사가 열리는 강당에 들어서니 서초구청장과 함께 앙크롱(인도네시아 대나무 악기)연주를 끝내고 무대를 내려오시는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축하와 꽃다발을 받고 있다.

할머니에게 혹시 무대 경험이 없어 떨리진 않으셨냐고 물으니 나이가 들어 귀가 잘 들리지는 않아 불편하긴 했지만 평소에 연습한 대로 열심히 했기 때문에 좋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서 자랑 스러워하신다. 그런 어머니를 곁에서 보고 있는 자녀들의 표정도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코너는 어르신들의 정보통신 문화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핸드폰 문자보내기 대회인 ‘문자 과거대회’다. 노인잔치에 참석하신 노인분들 중 평소에 자식들이나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 본 분들이 적지 않으신 듯 참석자를 찾는 진행자의 안내에 십여명의 참가자가 ‘문자 과거대회’를 위해 앞자리로 이동을 한다.

'문자과거대회' 참가자들의 바쁜 손놀림. "오늘 따라 손은 왜 이리 떨리냐"
'문자과거대회' 참가자들의 바쁜 손놀림. "오늘 따라 손은 왜 이리 떨리냐" ⓒ 김혜원
“어머니, 아버님~ 여기 화면에 보이는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내시면 됩니다. 화면에 써 있는 문장을 문자로 보내주시는데 가장 먼저 도착한 네 분이 본선에 진출합니다. 그럼 시작! 얼른 보내주세요!”

드디어 첫 번째 보내야 할 문제가 화면에 드러나는 순간, 핸드폰 문자판을 누르는 노인 분들의 손이 바빠진다.

“아이고 왜 이리 떨리냐? 하던 짓도 멍석 깔면 못한다고 대회라 해서 그런지 손이 떨려서 도무지 않되네.”
“돋보기를 안 가져와서 안보여. 여기 이게 ‘기역’자가 맞지?”

작은 핸드폰 문자판을 들여다 보며 땀을 뻘뻘 흘리는 참가자들. 한 자라도 먼저 보내려는 욕심에 안간힘을 쓰지만 마음만큼 손이 빨리 움직여지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구, 이게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여~”
“됬다. 보냈다 보냈어. 근데 가긴 간 거야? 어째 받았다는 소식이 없네...”

문자과거대회 1등을 하신 최보배 할머니. "신식할머니라 불러주오"
문자과거대회 1등을 하신 최보배 할머니. "신식할머니라 불러주오" ⓒ 김혜원
예선과 본선을 거쳐 당당 우승을 차지한 참가자는 69세의 최보배 할머니. 우승 기념품을 품에 안으신 최 할머니에게 카메라 후레쉬와 함께 주변의 부러운 시선이 쏟아진다.

“얼마 전부터 문자를 배워서 애들한테도 보내고 친구들 한테도 보내고 그랬는데 여기서 이렇게 상까지 받게 되니 정말 기분 좋아요. 나이 들었다고 못할게 뭐 있어요. 배우면 다 해요.”

몇 년 전만 해도 노인잔치는 젊은이들이 어르신들을 손님으로 모시고 위안공연이나 식사대접 등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손님으로 초대된 노인 분들은 가만히 앉아 보여주는 것을 보고 차려진 음식을 먹기만 하는 위안받아 마땅한 ‘노인 관객’일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노년인구가 증가와 노인들의 의식구조 변화 그리고 각 지자체 별로 노인복지에 대한 전문프로그램의 강화로 노인들의 활동반경 역시 그만큼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노인분들은 ‘관객’이 아니다. 자신들이 만든 자신들의 축제의 주인공이며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을 보듬는 따뜻한 봉사의 손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만드는 우리들의 잔치라 더욱 기쁘고 행복해요. 나이 들어서 할 일이 없다구요? 아직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답니다. 지금도 얼마나 바쁜지 몰라요. 공부도 하고, 춤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독거노인들 찾아다니면서 봉사도 해야 하고... 그렇게 즐겁게 사니 늘 행복해요.”

행복한 노년은 스스로 만든다고 했던가. 서초 락(樂)페스티벌에서 나는 유쾌한 노년을 만났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우울한 노년, 심심한 노년은 거기에 없었다. 빛나는 은발과 지혜로운 주름을 가진 활기찬 청년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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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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