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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앙시장에서 한 시민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한 시민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상품권? 여기서는 못써. 길 건너 '중앙시장'에서는 쓰더라구,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난 보두 못했어!"

재래시장 상품권 유통실태를 취재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대전역에서 내려 처음 들른 '역전시장', 상인들의 "보지도 못 했다"는 대답에 시작부터 맥이 풀렸다.

대전역에서 택시승강장을 지나 원동 쪽으로 가다 보면 '역전시장'이 나온다. 길을 따라 파라솔이 나란히 붙어있는 노점에는 과일과 채소 따위가 즐비하게 펼쳐져 있다. 추석을 열흘 앞둔 지난 25일 오후 대전 역전시장은 손님들로 북적대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물건값을 흥정하는 활기찬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불편하게 왜 상품권으로 바꿔 쓴대유?"

유성지역 재래시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중앙시장보다 작은 규모지만 중·소형 할인마트와 슈퍼마켓, 농협 하나로마트와 함께 주민들 생활 가까이에 있다.

닭집에서 닭 한 마리를 사고 장사하시는 아주머니에게 '재래시장상품권'에 대해 물었다. 닭집 옆에는 채소와 야채를 주로 팔고 있었다. 몇 군데에서 물건을 사고 주인한테 상품권에 대해 물어보았다.

대전 역전시장 노점상들. 이곳에서 아직 상품권이 통용되지 않고 있었다.
대전 역전시장 노점상들. 이곳에서 아직 상품권이 통용되지 않고 있었다. ⓒ 한미숙
"얘기만 들어봤어요. 근데, 그거 뭐하러 만들었대요? 상품권이야 뭐 내가 쓰려구 사나? 보통 누구한테 선물하려고 사잖아요. 재래시장상품권 사서 선물하면 받는 사람도 일부러 재래시장 찾아가서 물건 사야하니까 번거롭잖아요. 백화점상품권도 있고 구두상품권도 있는데, 같은 값이면 그런 걸로 하지 누가 '재래시장상품권'을 사서 선물로 주겠어요?"

"상품권? 그것두 경기가 있어야 오구가구 허는 거지. 매기두 없는데 그냥 있는 돈 쓰지, 불편시럽게 왜 상품권으로 바꿔 쓴대유?"

상품권에 대한 소규모 재래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재래시장 상품권'을 직접 샀거나 써보지 않았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번거롭다는 생각 때문에 달가워하지 않았다.

'재래시장상품권'이 처음 나왔을 때, 텔레비전에서는 지역 뉴스로 다뤄지기도 했다. '푸근한 인정과 사랑이 가득 담긴' 구호, 재래시장 활성화의 명분과 현실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대전 중앙시장 입구에 '재래시장 상품권' 사용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대전 중앙시장 입구에 '재래시장 상품권' 사용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상품권 유통'도 큰 시장-작은 시장 양극화

반면 대전에서 가장 큰 규모를 뽐내는 중앙시장의 얘기는 좀 달랐다. 중앙시장 곳곳에는 '재래시장 상품권을 쓰면 VIP로 모신다'는 현수막 글씨와 함께 추석 대목을 앞두고 손님을 끌기 위한 이벤트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세미(38)씨. 김씨는 '재래시장 상품권' 발행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세미(38)씨. 김씨는 '재래시장 상품권' 발행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장재완
"상당히 큰 도움이 됐죠. 상품권 발행되고 맞은 설 대목에는 아마 50% 정도의 매출이 늘어났던 것 같아요." 중앙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김세미(38)씨의 말이다.

김씨에 따르면 지난 설명절에는 절반 가량의 손님이 상품권을 손에 들고 찾아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금세 재래시장 경기도 살아날까 하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 상품권으로 다시 떡 재료를 사고, 장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을 구입하고 있다. 또한 나머지는 가까운 새마을금고나 신용협동조합에 입금을 하고 있다.

침구점을 운영하는 박영우(62)씨는 "발행 초기에는 20% 가까이 매출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엄명숙(47)씨는 "많이 만 풀으라고 해요"라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시장에서는 이번 추석명절에 최소한 2-3억원 이상의 상품권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는 대전시가 올 하반기에 추가발행한 상품권의 20-30%에 달하는 액수다.

재래시장 상품권도 규모가 큰 곳은 효과를 보고 있는 반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대다수 동네 재래시장은 빛을 보지 못하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 구청에서 구입"

'재래시장상품권'을 살 수 있는 새마을금고
'재래시장상품권'을 살 수 있는 새마을금고 ⓒ 한미숙
현재 대전에서 발행된 상품권은 지난 1월 1차분 6억원어치(10만매)와 지난 11일 2차분 10억원 어치(10만매) 등이다. 2차 발행분에는 5천원권과 1만원권 외에 5만원권이 추가됐다. 대전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상품권 발행을 위해 3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상품권은 대전지역 26개 재래시장에서 공통 사용되고 있으나 규모가 작은 시장이나 상품권사용에 가입하지 않은 시장, 노점상 등은 이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26일 송행선 중앙시장상가연합회 회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 봤다. 송 회장은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팔고 있는 물건의 종류에 따라 상인들의 반응은 다르다"고 말했다.

몇 만 원씩 지불해야 하는 옷, 가구, 혼수 물품 등을 취급하는 점포는 손님이 크게 늘지 않았다는 것. 다만 소액으로 살 수 있는 생선, 야채, 과일, 떡, 고기 등을 취급하는 점포는 상품권을 이용하는 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상품권 발행이 지엽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릇을 팔고 있는 지종현(50)씨는 "재래시장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어서 '상품권'이고 뭐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형매장으로 손님 다 빠져나가도록 정책을 해 놓고 이제 와서 상품권 몇 장 뿌리다고 재래시장이 살겠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유통량이 너무 적어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다는 불만도 많았다.

'구입' 번거롭고 '사용'은 무난

이번에는 직접 상품권을 구입해 사용해 보기로 했다. 상품권 구매와 환전은 재래시장 주변에 있는 새마을금고 등에서 담당하고 있다. 중앙시장 안에 새마을금고를 들어서자 마침 전기세를 내는 마감일(25일)이라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에게 상품권을 사러 왔다고 하니 상품권 신청서를 쓰라 한다. 일반 개인 소비자들이 상품권을 구입하기엔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직원은 "주로 근처 구청직원들이 상품권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속옷가게 점원이 가게에 들어온 상품권을 펼쳐 보이고 있다.
속옷가게 점원이 가게에 들어온 상품권을 펼쳐 보이고 있다. ⓒ 한미숙
속옷 파는 가게에서 옷을 고르고 5천원권 상품권을 냈다. 점원인 듯한 청년은 "상품권 사용량은 많지 않고 가끔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가 내보이는 현금박스에도 상품권은 몇 장만 끼여 있었다. 할인된 가격으로 어른속옷 한 장을 6500원에 사고, 5천원 상품권과 현금 1500원을 냈다.

대전시청 담당자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는 "할인제도가 없어서 상품권을 일반인들이 구매하여 사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때문에 시에서는 시상품이나 위문품을 상품권으로 대신 주고 있고 지자체 또는 단체 등에서 이를 구입, 선물용으로 활용토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시 "할인제도 등 개선책 추진하겠다"

이어 "재래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발행했지만 액수가 크지 않아 상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재래시장을 잘 찾지 않는 젊은층들을 유인해 재래시장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 잠재적 고객을 늘려 가려는 목적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그는 상품권 유통의 장애요인으로 이득이 없어 환전을 담당하는 마을금고의 가맹 기피(환전수수료 없음), 일반시민들의 재래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 재래시장상품권 발행과 유통의 어려움도 함께 털어놨다.

그는 또 "아직 상품권 시행 기간이 길지 않아 많은 미비한 점이 있다"며 "앞으로 할인제도나 고액권 발행 등을 통해 재래시장활성화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개선책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재래시장을 이용하면 타 지역으로 자금이 유출되지 않아 지역경제가 살찌게 된다. 그렇게 사용된 돈은 다시 지역에 투자되어 우리 가정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재래시장을 반드시 살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올 추석에는 재수용품을 장만하러 재래시장에 나가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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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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