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은리, 진봉지역 칠면초군락
어은리, 진봉지역 칠면초군락 ⓒ 조두성
만경강 하구역 갯벌에 펼쳐진 붉은색 물결을 보면 문득 어느 일화가 생각이 난다.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하는 어느 외국인이 인천공항 상공에서 창밖을 보니 바다에 펼쳐진 붉은색 광경을 보고 원더풀! 원더풀! 하며 한국에는 바다에서 피는 꽃이 있냐고 하더란다. 이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외국 방문객을 환영하기 위해 일부러 우리나라 관문인 인천공항 주변에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것은 분명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붉은색 페인트를 바닷물에 풀어놓은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갯벌에 분포하는 '칠면초'라는 염생식물이다.

바다에서 피는 꽃 '칠면초'..."원더풀!!"

만경강 하구역에는 넓은 갯벌이 있는데 이곳에 붉은색 물결이 일렁이는 칠면초군락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곳의 칠면초군락의 아름다운 장관을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가 않다.

왜냐하면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한 물막이 공사가 끝이 났고 멀지 않은 시점에 분명 내륙으로 변하여 바닷물 대신에 만경강과 동진강에서 흘러들어오는 담수와 강수에 의해 육수화 되기 때문이다.

만경강 하구역 식물생태계 조사를 하고 있는 조두성 선생님
만경강 하구역 식물생태계 조사를 하고 있는 조두성 선생님 ⓒ 조두성
'칠면초'라는 식물은 염분이 있는 토양에서 자라는 절대 염생식물이다. 밀물과 썰물의 조수의 차가 크고 침수횟수가 잦은 저위 염습지(조위구배에 따라 매일 침수를 받는 지역)에서 가장 잘 적응된 식물종으로 서해안 갯벌, 간척지, 낙동강 하구 염습지 등에 널리 분포하며 특히 간척지에서 선구종으로 나타난다.

칠면초는 염분이 있는 토양에서 살아가는 식물이기 때문에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고 하천에서 유입된 담수와 강수로 토양이 탈염된 지역에서는 살아가기가 어려운 식물종이다. 왜냐하면 염분이 없는 토양에서는 육상식물과 경쟁에서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막이 공사 이후 이곳 만경강 하구 갯벌의 칠면초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

칠면초가 기존에 분포하였던 곳에는 늘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씩 들고 나갔는데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없기 때문에 칠면초의 생육 분포역이 점차 연안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매월 이곳을 찾아 눈으로 확인하였다.

새만금 갯벌 주위로 건설된 제방으로 바닷물의 흐름은 이제 끝이 났고 배수갑문을 통하여 제한적인 바닷물 유통이 이루어져 갯벌 토양에 남아있던 염분은 강수와 내륙에서 유입되는 담수에 의해 점점 탈염됨에 따라 칠면초 입지는 더욱 좁아지는 형국이 되었다.

그동안 갯벌 가운데 토사가 퇴적된 지역에서 터전을 잡고 싶어도 많은 바닷물 때문에 살 수 없었던 지역이었는데 이제는 고맙게도(?)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마음 놓고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나마도 계속이 아닌 어느 시점까지라는 시한부로서 말이다.

증석 지역에 새로 분포된 칠면초 군락
증석 지역에 새로 분포된 칠면초 군락 ⓒ 조두성
칠면초가 기존에 자라는 곳에서 점점 연안 쪽으로 내몰릴 즈음 이웃하며 살아가는 갯개미취, 갯잔디, 나문재, 갈대 등은 자신의 분포지를 넓히는데 더 없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이들 염생식물과 내염성식물은 칠면초와 달리 침수지역에서는 살기 어려운 식물종으로 이들은 탈염이 된 갯벌 토양에서 생육하기 때문에 그동안 밀물에 의해 침수가 되는 지역에는 칠면초를 제외한 그 어떤 식물종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바닷물도 들어오지 않고 자신이 자랄 토양도 적당히 탈염 되는 상황이 되어 칠면초 지역에 들어가 생육하게 되었고 이들 분포 지역에는 또 다른 생육환경을 가진 중성식물이 들어오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만경강 하구역 갯벌에서 진행되는 '천이'

칠면초군락에 갯개미취, 나문재, 갯잔디, 갈대 침입
칠면초군락에 갯개미취, 나문재, 갯잔디, 갈대 침입 ⓒ 조두성
이것이 바로 생태학에서 말하는 '천이'라는 것이다. 천이(遷移, succession)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생물군집이 변천해 가는 현상으로서 식물군락내의 생육환경이 크게 변화하면 천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식물군락이 환경을 바꾸어 가는 환경형성 작용을 하게 되어 식물군락 천이가 진행된다.

생육환경이 점점 변화해 가는 만경강 하구역 갯벌에도 천이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막이 공사를 하지 않았던 때에 칠면초가 순군락을 이뤘던 지역에는 어느새 나문재가 들어오고, 갈대가 들어오고, 갯잔디가 들어오고, 갯개미취가 들어오는 것을 보니 천이의 변화 조짐이 서서히 나타난 것이리라. 식물 생태계의 변화는 빠르게 나타난다.

새로 들어온 이들 역시 염분 토양에 강하지만 토양 생육환경이 빠르게 변화되면 육지에서 살아가는 중성식물들이 대거 몰려오게 되며 이들과의 경쟁은 피할 수는 없는 숙명이 된다. 갯벌 생육환경에 적응된 염생식물들이 토양 생육환경이 변한 터전에서 육상식물과의 경쟁은 하나마나여서 삶의 터전을 내 주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 지역은 점점 내륙화 되어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바로 경창, 증석, 어은리, 망해사, 진봉 그리고 화포 지역에 나타나고 있다. 증석지역의 경우 물막이 공사이전에는 바닷물이 갯골을 타고 들고 날고 하였는데 이젠 그렇지 않으니까 그 갯골을 타고 제방 배후에 있는 농경지와 농수로에서 유입된 담수가 흐르게 되었다. 바로 이곳에 짠 갯벌토양에서는 절대 살 수 없었던 털물참새피, 한련초, 애기부들, 큰바랭이, 자귀풀, 미국가막사리, 미국개기장 등의 중성식물이 생육하게 되었다.

그리고 망해사 지역 역시 만곡된 해안선 가장자리 갯벌에도 바닷물이 많이 들어와 식물이 생육하지 않았던 이곳에 칠면초, 나문재, 갈대가 들어왔고 주변 산지에서 흘러들어온 담수를 안고 미국가막사리, 한련초, 물피, 큰방가지똥 등의 중성식물들이 분포하게 되었다.

증석지역 갯골의 털물참새피와 애기부들
증석지역 갯골의 털물참새피와 애기부들 ⓒ 조두성

망해사 지역의 한련초와 나문재
망해사 지역의 한련초와 나문재 ⓒ 조두성
이러한 변화의 조짐들이 만경강 하구 갯벌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이지만 새만금 간척사업 물막이 공사로 인한 만경강 하구역 갯벌의 정체성(正體性)은 갯내음 나는 넓은 생명의 갯벌에서 드넓은 내륙의 들판으로 탈바꿈되는 하나의 징표일 것이다.

만경강 하구의 붉은색 물결은 이제 추억 속으로...

화포지역 갯벌에서 바라보는 일몰
화포지역 갯벌에서 바라보는 일몰 ⓒ 조두성
이제 우리는 붉은색으로 물결치는 만경강 하구역 갯벌의 아름다운 장관을 먼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기는 안타까운 심정을 가슴에 묻고 다시는 소중한 우리의 갯벌과 그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라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을 되새기며….

만경강 하구역 갯벌 멀리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면서 어두운 밤을 보내고 다시 떠오를 생명의 태양을 그려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을 쓰신 조두성님은 전주환경운동연합 회원이자 선유중학교 생물교사입니다. 만경강생태하천가꾸기 민관학협의회 회원입니다. 만경강, 금강 하구쪽 식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댓글

"자연과 공존하는 초록의 길에서, 지구 그리고 당신과 함께합니다" 8만회원, 54개 지역환경연합, 5개 전문기관, 8개 협력기관으로 구성된 환경운동연합은 전국 환경 이슈의 현장 속에, 그리고 당신의 생활 속에 언제나 함께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