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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
일본 음식만화의 대명사라면 2006년 9월 현재 한국어판만 95권이 나와 있는 <맛의 달인>일 것이다. 일본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다루고 있는 <맛의 달인>은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음식과 문화를 폭넓게 살피고 세밀하게 파고든다.

<맛의 달인>은 우리 식으로 따지면 '신토불이'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때로 국수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곤 해서 한국 독자들에게 거북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만화에 등장하는 식당이 아예 '미식클럽'인 것처럼 비싸고 귀한 재료들이 등장하는 탓에 막말로 '돈X랄 아니냐'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맛의 달인>에 대한 비판은 일리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음식을 대하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 차이에서 오는 것들도 있다. 일본에선 최고의 음식이나 완벽한 음식을 추구하기 위해 고급 재료를 찾아 헤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용납되지만 한국에서 음식을 가지고 지나치게 호사를 부리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일이 되기도 한다.

▲ 미식을 바란다면 대한민국에 태어나길 잘했다. <식객>에 그려진 것처럼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 맛 난 음식들이 이 땅 곳곳에 숨어 있다.
ⓒ 김영사
음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붙여주는 이름만 봐도 '미식가'나 '식도락가'인데 둘 다 글자 뜻 그대로 보다는 대략 좋지 않은 어감으로 통하고 있다. 미식가하면 호사스런 음식을 먹느라 낭비하는 사람처럼 들리고, 식도락가 하면 몸에 좋다고 하면 닥치는 대로 먹는 게걸스런 사람처럼 들린다.

<맛의 달인>의 주인공 지로는 자신의 아버지 우미하라가 운영하는 '미식클럽'을 돈 있는 자들이 거들먹거리며 비싼 음식을 먹는 곳으로 치부하지만 사실 한국 사람들 눈에는 <맛의 달인> 전체가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오해를 풀고 <맛의 달인>이 추구하는 미식이 어떤 것인지 진심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맛의 달인> 47권을 꼽겠다. 두 주인공 지로와 유우코가 결혼을 하는 자리에서 우미하라는 최고의 요리라며 너무도 소박한 일본 가정식을 내 놓는다.

▲ 초라해도 미식을 즐길 수 있다. <맛의 달인>의 진심이 담긴 '최고의 요리'. 아래 사진은 만화를 실제 요리로 만든 것.
ⓒ 대원
젊어 호사를 좋아했던 우미하라는 가난한 예술가라 전전긍긍하는 처지였다. 돈이 없어 명절 음식도 마련하지 못하던 그 앞에 아내가 차려 놓은 소박한 밥상은 놀라운 정성의 힘으로 미식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가난해도 미식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우미하라는 배포가 생기고 그런 여유 덕에 좋은 작품들이 나와 오늘의 자신을 이루게 된다.

혹 교과서에서 읽었던 수필 한 자락이 떠오르지 않는가?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을 기억하시는지. 가난해도 마음이 있으면 행복한 밥상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가난해도 음식에 대해 애정이 있고 지식이 있고, 무엇보다 정성이 있으면 평범한 재료들로도 미식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 <맛의 달인> 47권이 드러내는 미식에 대한 진심이다.

얼마 전 우리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에 '훈제연어'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평소 훈제연어를 좋아하는 어느 시민기자분이 맛나게 먹는 법을 올리셨는데 거기에 '비싼 요리는 소개하지 말자'는 댓글이 붙었다. 오마이뉴스는 진보적인 공간이니 훈제연어 먹는 것은 배격해야 할 사치일까? 2006년 대한민국을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음식에 대한 호사는 어느 정도까지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범위일까?

▲ "우유 한 잔과 크로와상을 살 수 있는 날은 아주 행복했다"는 프랑스의 중국인 공산주의자 덩샤오핑.
ⓒ 미상
여기서 뜬금없이 프랑스에서 절치부심하던 덩샤오핑에게로 가 보자. 프랑스에 와 있던 다른 중국 공산주의자들처럼 덩샤오핑도 곤궁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문제는 이 양반이 주머니 사정엔 벅찬 크로와상을 좋아했다는 점이다. 해답은? 다른 동료들이 값싼 바케트로 끼니를 해결할 때, 덩샤오핑은 차라리 몇 끼 굶고 한 끼를 크로와상으로 차려 먹었다고 하니 미식을 위한 '선택과 집중'인 셈이다.

음식문화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미식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 여유가 생기고 있다는 얘기다. 비싼 로열티를 주는 레스토랑에서 첨가물이 가득 발라진 스테이크를 먹는 것으로 미식이 해결되는 것은 낭비겠지만. 그런 것을 비판하며 금욕을 주장하기 보다는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진심이 담긴 미식을 추구해 보는 것도 '오마이스러운' 일이리라.

▲ 일본 음식만화는 '미식추구' <맛의 달인>과 '생활요리' <아빠는 요리사> 좌우 날개로 난다.
ⓒ 학산문화사
우미하라와 덩샤오핑의 충고를 받아들여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정성으로 생활 속의 미식을 추구하기로 했다면 <맛의 달인>을 보완해 주는 만화 <아빠는 요리사>를 추천한다. 가족을 위해, 직장 동료를 위해 음식을 내오는 멋진 아빠는 일상에서 흔히 만드는 음식에 정성과 아이디어를 더해 마음의 허기까지 달래준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라고 친절한 요리법도 함께 들어 있어 더 좋다.

허영만 화백은 <식객>에서 "최초의 맛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에서 시작한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같다"고 적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맛 나는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약간의 노력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숫자에 하나를 더하면서 바로 우리 집이 '미식클럽'이 아닐까.

맛의 달인 1

카리야 테츠 지음, 대원씨아이(만화)(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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