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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싸라기땅 여의도 곳곳엔 그곳의 가치를 더욱 배가시켜주는 대규모 면적의 방송사들이 있고, 그 큰 면적의 방송사 내부 비상계단 음습한 한구석엔 한 평도 되지 않는, 담배꽁초와 담배연기 가득한 공간, 공간이라고 칭하기에도 민망하고 비참한, 은밀한 곳들이 있다. 방송국을 드나드는 작가를 비롯한 여성 흡연자들이 발붙일 수 있는 유일한 처소다.

2003년 여름,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법(제9조 금연을 위한 조치)이 시행되면서 한동안 흡연권과 혐연권을 둘러싼 논쟁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다. 방송사 토론프로그램마다 흡연권을 둘러싼 각종 토론들이 줄을 이었지만, 흡연자 대표 중에 여성은 없었다. 그 후 공공건물들은 대부분 금연빌딩으로 지정됐고, 흡연자들이 발 딛고 설 곳은 눈에 띄게 줄었다.

건물마다 어렵사리 궁색하게 만들어진 그나마 흡연 공간이 남성들의 전유물인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견고한 현실이었고, 보이는 것과 실제 내용은 언제나 다르게 마련이어서, 언뜻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이고, 재기 발랄한 공기만 넘쳐날 것처럼 보이는, 방송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담배 없이 살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담배를 끊어야 할 특별한 동인도 없고, 주위의 압력에 쉽게 욕구를 희생시켜버릴 만큼 착한 성격의 소유자도 아닌 필자, 그렇게 10년을 넘게 하루같이 담배와 더불어 살아오면서 갖게 된 생존 본능이, 바로 일터를 옮길 때마다 흡연실 위치부터 파악해두는 거다.

지금 일하는 방송사에서 처음 만난 한 여성 작가에게 물었다. "담배는 어디에서들 피우시는지?" 상냥한 그 작가, 복도 끝을 빠져나와 돌고 돌더니, 불빛 한줄기 없는 모 비상계단 꼭대기쯤 막다른 지점,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매캐한 담배연기가 가득한, 환기는 둘째 치고 마주 서 있는 사람 얼굴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대낮에도 어둡고 음습한, 이 넓고 화려한 방송국 귀퉁이에 이런 곳이 있었을까 싶은 곳으로 나를 이끈다.

자존감에 상처가 엄습한다. '벼를 찧으면서도 학문을 할 수 있다'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장에 전율하고, '당신들은 천상의 별을 찬미하지만 나는 거리의 땀 냄새를 사랑하겠다'는 카를 마르크스의 전언에서 삶의 단서를 얻었다며 술만 마시면 주접을 떨어대던 필자, 역전 한복판에 담배 피우다 낯선 남자에게 따귀를 맞을지언정, 담배 한 개비 피우기 위해 이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사실이 몹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남자 PD에게 재차 흡연실 위치를 확인한다. 사무실 옆 지척에 문 달린 방을 하나 소개한다. 근사하고 폼 나는 공간은 아니지만, 소박한 테이블과 소파가 마련돼 있는, 그럭저럭 삼삼오오 모여앉아 뒷담화 늘어놓기에는 별 손색없어 보이는 그곳은, 남성들의 흡연실이다.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들어가 담배를 피워 문다. 그 후 1년 가까이, 그곳을 찾는 남성흡연자들과 안면을 익히고, 낯선 농담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게 되기까지 그곳에서 필자, 원숭이이자, 이물질이었다.

백번 양보해 방송국에 드나드는 생물학적 성비를 둘로 쪼개고, 그 성비 안에서 다시 흡연자와 비흡연자를 나누더라도, 이건 너무 치사한 공간분할 아닌가. 자유로운 영혼들이 모여드는 방송국 사정이 이럴진대, 다른 회사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대학 1학년 교양선택 과목으로 신청해 들어갔던 문화인류학 첫 수업에서, 분필 한 자루 손에 들고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일 만큼 여리고 약해 보이는 남자 교수 입에서, 돌연 터져 나왔던 흡연 여성에 대한 폭언을 기억한다.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하는 여성들이 함부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여성이길, 나아가 인간이길 포기하는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이라는, 그러니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을 결심한 여자들이나 담배를 피울 테면 피워보라는.

여성의 흡연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대체 이런 식의 논리로 박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으로는 더없이 유약함에도,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인되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 사실 자체가 필자로서는 도무지 용납되지 않는다.

더는 단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무얼 먹고, 얼마나 잘 살 것이냐가 유일한 고민인 이때에, 하여 너도나도 웰빙을 위해 금연이 추세인 이때에, 그 무슨 흡연권 운운하는 야만적이고 뒤떨어진 소리냐 비웃는 분들 분명 있을 터다.

오해 마시라. 필자는 우리 모두 행복을 위해 담배를 피워야 한다고 떠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뜩이나 법으로 제도로 흡연을 막아대고 있는 이 판국에, 남자든 여자든 흡연자는 갈수록 소수자로 전락하고 있는 이 시절에, 동병상련 오순도순 피워 올리는 담배연기, 그 또한 아름다울 수 있지 않겠느냐, 주절거려 보는 것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김지연 작가는 모방송국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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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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