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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웅전 아래에 차려진 인곡당 법장 대종사 1주기 다례상.
수덕사 대웅전 아래에 차려진 인곡당 법장 대종사 1주기 다례상. ⓒ 안서순
조계종 전 총무원장 법장 대종사 열반 1주기 다례제가 29일 오전 법장 대종사가 주석하던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열렸다.

이날 다례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포함한 원로스님들과 한국종교인협의회 대표인 백도웅 목사 등 종교계 인사와 일반신도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다례가 열리는 대웅전 경내를 가득 메웠다. 또 고건 전 총리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심대평 전 충남지사 등 정치인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법장 대종사 1주기 다례에 참석한 지관 총무원장 스님 등 불교계 원로스님들과 신도.
법장 대종사 1주기 다례에 참석한 지관 총무원장 스님 등 불교계 원로스님들과 신도. ⓒ 안서순
조계종 종정 도림 스님은 이날 법어를 통해 다음과 같이 추모했다.

"성인의 해탈마저 사모하지 않는 것이 선가의 눈(眼)이요, 범부들의 시비조차 보지 않는 것이 선가의 발이로다. (중략) 경허와 만공이 덕숭산에서 할과 방을 휘두르니 벽초와 원담이 귀를 막은 채 맨손으로 움켜쥐는데 등 뒤의 법장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도다. (중략) 서릿발 어린 밤하늘에 달이 기울었거늘 누구와 어울려서 못에 그림자를 비출 것인가."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은 추도사에서 "법장 대종사는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타인을 위해 육신을 주고 가는 이타적 나눔 정신을 보여준 큰 스님"이라며 "스님이 생전에 추진하던 일들을 차곡차곡 실천해 모두 결실을 맺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백도웅 목사는 추모사를 통해 법장 스님을 "형님"이라 부르면서 "법장 스님이 '이 친구야, 내가 떠나서 슬픈가, 내가 떠났다고 세상이 변했나, 슬퍼하지 말게 그보다는 경계선(종교간)을 넘어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나와의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면서 울먹여 한층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어 고 전 총리와 이 전 서울시장이 추모사를 했다.

고건 전 총리는 "스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마애삼존불의 미소로써 대중을 화합하시고 원융무애한 삶으로써 아낌없이 베푸시던 넉넉한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면서 "저희가 힘을 잃지 않고 평화와 자비가 넘쳐나는 불국토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등불을 밝혀주시기를 간절히 염원 드린다"고 추모했다.

이 전 서울시장은 "생전에 그리하셨듯이 이 땅 중생의 가여운 삶을 굽어 살피시사, 남은 벗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오가는 길 조계사에 들릴 적엔 차 한잔 놓고 마주앉아 없던 길도 보여주며 허한 속을 채워 주셨다"며 "이제 길 건너 안국동에 작은 사무실을 내었으니 부디 그 다함이 없는 바랑을 열어달라"고 말했다.

법장 대종사 다례제에서 이뤄진 차기 대권주자의 만남

법장 대종사 1주기 다례식장에 나란히 앉아 있는 고건 전 총리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
법장 대종사 1주기 다례식장에 나란히 앉아 있는 고건 전 총리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 ⓒ 안서순
이날 수덕사 경내는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고건 전 총리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참석해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들은 다례가 시작되기 20여분 전인 오전 9시 40분께 대웅전 앞의 요사채에서 마주앉았고, 수덕사에서의 어색한 만남이 시작됐다.

방에 먼저 들어와 앉아있던 고 전 총리가 들어서는 이 전 서울시장을 보고 "오래간만입니다"라며 인사를 건너자, 이 전 서울시장이 "텔레비전에서 자주 뵈었습니다"고 답했다.

이뿐이었다. 이 말이 수덕사에서 고 전 총리와 이 전 서울시장이 주고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이들은 다례식장에서 나란히 옆에 앉아있으면서도 다례가 시작되고 끝나기까지 1시간 40여분 동안 대화는커녕 서로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다례가 끝이 난 후에도 이들은 서로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해서 다례식장을 벗어났다. 이들은 자신들을 보고 몰려드는 신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지관 스님 등과 다례식장으로 내려가는 고건 전 총리.
지관 스님 등과 다례식장으로 내려가는 고건 전 총리. ⓒ 안서순
때아닌 사인공세에 휘말린 이명박 전 서울시장.
때아닌 사인공세에 휘말린 이명박 전 서울시장. ⓒ 안서순
고 전 총리가 오전 11시 40분께 먼저 경내 주차장으로 내려간 다음 이 전 서울시장은 뜻밖의 사인공세를 받았다. 다례에 참석한 신도 중 한 명이 수덕사에서 다례에 참가한 신도들에게 배포한 법장의 추모글이 담긴 책을 갖고 와 이 전 서울시장에게 사인을 부탁하자 이를 보고 수십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신도들이 사방에서 책을 내밀며 서로 먼저 사인을 받으려 했다. 이에 이 전 서울시장은 "줄을 서요 줄을…"이란 말을 하기도 했다. 이 전 시장은 사인을 요구하는 신도들에게 모두 사인해 준 다음 고 전 총리보다 10여분 늦은 오전 11시 55분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멀찍이 서서 이들을 지켜보던 한 신도는 "오늘은 법장스님 제삿날인데"하며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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