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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하게 널어놓은 붉은 고추가 고샅길을 덮고 있는 시골풍경을 보면서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바로 10월은 고향의 가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애호박을 하얗게 썰어 널어놓은 지붕이나 담장에서 느낄 수 있는 10월이 나는 참 좋습니다. 가을은 날씨가 좋거나 궂거나 좋은 계절입니다.
빗물에 젖은 감잎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마치 아직 마르지 않은 수채화처럼 보입니다. 만지면 손에 묻어날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입니다. 파란 하늘을 여유롭게 비행하는 고추잠자리나 된장 잠자리를 보면 가을은 천국의 계절처럼 보입니다. 걱정이 하나도 없잖아요. 슬픔도, 아픔도. 단지 넉넉한 마음만 있습니다. 부모님처럼.
어제(29일) 있었던 일입니다. 아래층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서로 인사하고 세상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동네 반장님 부군입니다. 아주머니도 반장님으로 봉사하면서 열심히 사시는 분입니다. 간혹 세금고지서나 적십자회비 고지서를 아저씨가 돌리기도 하십니다. 처남이 익산역에 근무하기 때문에 KTX 기관사로 근무하시는 아저씨와 더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어머님이 담아 주신 고구마순 김치를 가지고 오던 길에 아래층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아저씨는 10kg짜리 쌀 한 포대를 들고 계셨습니다.
“두 분 밖에 계시지 않으니까 쌀을 작은 포대로 사시는가 봐요? 저희 집은 한 달에 20kg을 넘게 먹는데.” 제가 물었습니다. 아드님과 따님이 직장 때문에 익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물었습니다.
“둘밖에 없어서 이정도면 충분해요.”
“그래도 쌀값만큼 싼 것은 없는 것 같아요.”
“20kg 한 포대에 4만5천원밖에 가지 않으니까요.”
“그래 맞아요. 삼겹살 외식 한 번해도 5만원을 훌쩍 넘는데.”
“사실은 주말에 자식들이 내려와요. 그래서 햅쌀로 밥을 해주려고 지금 햅쌀을 사오는 거예요.”
“아, 그러세요. 따님은 교직생활 잘 하고 계시죠?”
“예! 중학생 담당이라 그렇게 힘들지는 않는가 봐요.”
“잘 할 거예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똑 부러지게 자기 일을 하잖아요.”
아파트 앞에서 만나서 나눈 대화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이 바로 아저씨의 마음이 아닐까요? 오랜만에 내려오는 자식을 위해 햅쌀을 준비하는 마음 말입니다. 좋은 것만 챙겨주려는 마음이 바로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풍요로운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사실 저희 아버님도 어제 제게 40kg짜리 햅쌀 한 포대를 주셨습니다. 햅쌀로 오늘 아침에 밥을 지어 먹으면서 부모님을 생각했습니다. 참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참으로 살가운 분들입니다. 서영이와 현진이에게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밥상머리 교육을 시켜보지만, 받아들이는 표정이 영 제 성에 차지 않습니다. 그래서 식사 전 기도를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바치도록 해보았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을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때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우리는 주린 배를 움켜쥐거나 고구마나 감자를 삶아서 주린 배를 채우면 그만이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훨씬 더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굶주려서 황달기가 든 자식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우린 행복한 놈들이었습니다. 모두 아버님과 어머님의 고생 덕분이지요.
아래층 아저씨의 햅쌀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제가 다시 고향을 그리워하나 봅니다. 부모님이 그리운가 봅니다. 이번 목요일에 시골집에 다녀왔는데도요. 그래서 부모님과 고향은 영원의 우리들의 안식처인가 봅니다. 이번 주말에도 시골이나 다녀와야겠어요. 어머님이 단풍깻잎 김치를 담고 계셨거든요.
덧붙이는 글 | 노태영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