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철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이 겸연쩍게 됐다. 그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2일 전·현직 당의장을 비롯한 당 원로들의 모임이 사실상 그 취지를 살리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 식사를 겸한 자리에서는 '범여권 통합론' 및 향후 정계개편에 관한 얘기가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 고문이 최근 '노 대통령 배제한 통합신당론'을 제기하면서 이날 모임에서 격론이 일 것으로 예상됐었다. 문희상 전 의장을 비롯해 '노 대통령 배제 불가론' 입장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전에 모임이 공개되고, 노 대통령 동승론·하차론 등 예민한 성격의 이슈가 불거지면서 모임 자체가 성사되기 어렵게 됐다.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 양측 모두 이날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근태 의장 측에선 "처음에 제안이 왔을 때, 안 나갈 이유가 없을 것 같아 참석하려 했지만 모임이 언론에 공개된 데다, 당초 취지와 달리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상황"이라며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정동영 전 의장 측 역시 "모임 취지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며 "귀국하자마자 그런 정치적 성격이 짙은 모임에 나가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참석을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당의 대주주인 둘의 참석이 불투명해지면서 힘이 빠져버렸다. 또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이럴 거면 차라리 모임을 하지 말자"며 정 고문 측에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정대철, 문희상, 신기남 등 전 의장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 내 통합론, 백가쟁명' 뭐 이런 식으로 언론에 비춰지지 않겠냐"며 "통합하자는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해석을 전했다.
정대철, 유시민 만남 타진도 "불발"
정대철 고문은 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내가 미국 나가기 전에 가까운 사람들과 식사나 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가 언론에 잘못 알려졌다"며 곤혹스러워했다. 그러면서 '통합론' '정계개편' 논의가 있을 거라는 언론보도에 대해 "100% 그림이고 소설"이라고 항변했다.
당초 전·현직 의장들이 참석 대상으로 알려졌지만 정 고문은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문희상 전 의장, 조홍규 전 민주당 의원 등 8, 9명 가량의 의원들이 참석할 예정이었다"고 말할 뿐,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진 않았다.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며, 문희상 전 의장에게 "그런 말 할 거면 (2일 모임에) 오지 말라"며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문 전 의장은 정 고문의 노 대통령 배제론에 대해 "대통합을 한다면서 누구는 뺀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반박한 바 있다.
정 고문은 "내 뜻은 신당을 통해 통합하자는 것이었다"며 '노 대통령 배제론'에 대해서 역시 언론의 과잉 해석이라는 입장이었다.
정 고문은 최근 KBS 라디오에 출현해 열린우리당, 민주당, 고건 전 총리 등을 망라한 범여권 대통합론에 대해 "노 대통령이 임기 이후 벌어질 정치상황을 전제로 한 정계개편"이라며 "노 대통령은 적극적인 장면에서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발언한 바 있다.
정 고문의 이 같은 발언이 있은 후 문희상 전 의장의 반박은 물론, 당내 친노 측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통합론에 대해 "선거용 정당"이라 규정한 뒤 "무조건 정치적 이해관계, 승리·패배에만 매몰돼 당을 깨는 것은 안했으면 좋겠다"며 사실상 반대의사를 드러냈다.
한편 정 고문은 지난 7월 초 김원기, 문희상, 신상우 상임고문들과 함께 노 대통령을 만나 '통합신당' 얘기를 꺼냈을 즈음,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만남도 타진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하지만 유 장관 측에서 일정을 이유로 적극성을 띠지 않아 성사되진 않았다.
작년 11월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초청으로 객원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는 정 고문은 자주 국내를 오가며 범여권 통합론에 불을 지펴왔다. 정 고문은 지난 13일, 일시 귀국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소속 전·현직 의원들을 두루 접촉해 왔다. 이번 전·현직 의장단 회동은 정 고문이 3일 출국을 앞두고 마련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