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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조경국
도저히 적응이 안됐다. 차분히 이야기 하다가 어느 순간 목소리를 높이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인터뷰용 녹음기를 마이크처럼 들고 대사 읊듯이 대답하기도 했다. 소녀처럼 깔깔 웃더니, 또 서럽게 펑펑 울기도 했다. 지난 29일 뮤지컬배우 나자명씨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진행됐다.

"일본공연 때 아베 총리를 초대하려고 해요"

현재 그녀가 출연중인 작품은 <고래섬>. 부산시와 일본 문부성의 지원으로 이뤄진 한일합작 연극으로 한일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 부산과 서울에서의 공연을 끝내고 일본 순회공연을 앞두고 있다.

<고래섬>은 서족(西族ㆍ한국배우)과 동족(東族ㆍ일본배우)이 불로장생 '심해초'가 있다는 섬(실제론 고래등)을 찾아 서로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이야기구조 한 축으로는 고래 남획에 따른 두 종족의 업보가 얽혀있다.

"실제로 일본에서 고래 포획을 많이 했나봐요. 그럼 고래 피로 바다 전체가 빨갛게 물든대요. 바다 전체가 피빛 바다로 변하는데, 그걸 장미의 피라고 한대요. 아시아 전체의 환경 문제를 생각하는 연극이에요."

그녀는 극 전체의 중심에 서 있는 '해령'(바다의 정령)을 비롯해 1인 4역을 맡았다. '해령' 역은 드라마 <대장금>의 '오나라' 곡을 부른 가수 이안씨와 더블캐스팅.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뜻밖에 그녀는 "고맙다"고 했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깊이 친해지지 않아 뭐라 평가하긴 힘들지만 이안씨는 나이에 비해 생각도 깊고,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똑소리 나죠. 그리고 너무 고마운 게 <대장금>에서 우리 국악을 했잖아요. 한국적인 정서를 아는 이안씨가 해령 역을 하는 게 너무 다행이고, 너무 고맙죠."

한국과 일본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니, 의사소통 등 어려운 점이 있을 듯싶었다.

"통역이 있긴 하지만 감으로, 직감으로 통하는 거 있잖아요. 거기다 일본배우는 한국말 배우고, 한국배우는 일본말 배우고. 그래 지금은 서로 친해져서 통역자가 필요없어요. 갓난아이들 보면 말 몇 마디로 서로 친구해서 놀잖아요. 바로 그 분위기예요."

그렇더라도 최근 독도 문제,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한일 양국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데?

"미묘한 분위기가 있기는 한데, 그럴 때일수록 배우들끼리 서로 감싸더라구요. 한국배우는 일본배우를 감싸고, 일본배우는 한국배우를 감싸고. 같은 배를 탔기 때문에 서로 아껴주고 서로 부등켜안고 서로 달래주고…."

현실 정치는 왜 그렇지 못할까. 그녀는 일본 공연 때 "오든 안 오든" 아베 신임 총리를 초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베 총리가 초대에 응해, 뭔가 깨닫고 가기를 기대한다.

보통사람처럼 살기 위해 배우가 되다

그녀가 연극, 뮤지컬 배우가 된 사연은 이채롭다. 아니 차라리 슬프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는 잘했으나 성격은 무척 내성적이었다. "누가 내 얼굴 아는 것도 싫고, 내 이름 아는 것도 싫고, 그러니까 연극 같은 건 생각도 못했죠."

그같은 성격은 집안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았다.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사연이지만 아버지께서 사상운동을 하신 까닭에" 공안의 감시를 계속 받아왔다. 어려서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우리집이 쫓겨 다녔었요. 집안에서도 만날 조심해야 된다고 그러고. 어린 마음에 우리집이 국가에 엄청난 잘못을 했나보다, 내가 어떻게 보상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혼자서 했었어요."

좀 더 자세한 사연을 물었으나 그녀는 얘기를 돌렸다. 어쨌든,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보통사람들>이란 드라마를 보았다. 이해가 안 됐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웃고, 울고, 떠들고, 싸우고, 또 사랑하고 하는 것이. 사람들이 사는 게 저런 건가? 이상했다.

학교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다들 그렇게 산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제가 경험해온 삶과 우리 가족분위기와 전혀 틀린 거예요. 곧 있으면 스무살이 되는데, 내가 한 코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내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정신과병원을 찾았다. 심리학책도 읽었다. 그러다 우연히 연극 연습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교회에서 하는 성극이었는데, 연습하는 장면을 보구 기쁠 때는 저렇게 웃고, 화날 때는 저렇게 성내고… 저걸 배우게 되면 일반사람들이 사는 법을 배울 수 있겠구나, 그래서 연극을 시작했어요."

연극 <고래섬>에서 그녀는 '바다의 정령'(왼쪽)으로 출연했다.
연극 <고래섬>에서 그녀는 '바다의 정령'(왼쪽)으로 출연했다. ⓒ 김도웅
첫 작품은 연극 <욥>. 이후 <세일즈맨의 죽음> <어머니> 등을 거쳐 뮤지컬 <환타스틱스>에도 출연했다. 88년 "집안에서 한국에서 대학 다니는 걸 원치 않아" 일본 쇼와음대에 입학, 뮤지컬을 공부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무대에 올랐는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출연 당시 연출가 김상열 선생(98년 작고)으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김상열 선생님께서 '너는 재능은 있지만, 의식이 없다. 배우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몸단련까지 하면서 뮤지컬 배우로 성공할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김상열 선생님의 죽음... 그리고 <오적> 공연

생각이 없다니? 모든 스케줄을 중단하고 6개월 동안 방황했다. '나는 대체 뭔가, 나는 왜 연극을 하는건가.' 94년 영국으로 도피(?), 액터스스쿨을 다녔지만 역시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도중하차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76극단을 만나 <지피족> <쥐> <만두> 등의 작품에 참여했다. 여전히 힘들었다. 그때(98년) 한국배우로는 최초로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해외예술가 초청을 받았다. 그녀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떠나기 며칠 전 김상열 선생에게 전화를 드렸다.

"일본 갔다 나오면 이제 청개구리처럼 안 하고, 선생님 밑에서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다고 전화를 드렸어요. 선생님께서 얼마 동안 있다가 돌아올 거냐고 물으셔요. 6개월이라고 했더니, 그래 내가 6개월은 기다릴 수 있지, 그러시는 거예요…."

그녀의 눈망울이 젖어드는가 싶더니 흑흑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이런?! 일본에 들어간 2주 뒤 서울에서 온 한 선배가 김상열 선생이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통화할 때 말씀이 자꾸 끊기셨는데… 아프셨던 거야… 내가 너무 어리석어… 눈치를 못챈 거야…." 아예 양팔에 머리를 파묻고 울었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연수기간 내내 울고만 다녔다. 그 모습을 딱하게 여긴 한 선배가 김지하 시인의 <오적> 일본 공연에 출연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도쿄 이이노홀에서 열린 공연에는 1천여명이 몰려들었다. 입석까지 꽉꽉 들어찼다. 그녀가 한국말로 시 낭송을 했다.

"김지하 선생님께서 공연이 끝나고 하시는 말씀이… 아, 우리나라 모국어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그러시는 거예요. 쟁쟁한 일본사람들이 다 모였는데 말이죠."

그리고는 깔깔 대고 웃었다. <오적> 공연을 계기로 그녀는 정신을 추스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얼떨떨 했다.

"작품이 저한테는 스승이에요"

연수를 끝내고 한국에 들어와 <키스> 등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데, 2002년 일본으로부터 또다시 출연제의가 왔다. "대본을 읽어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이 작품이라면 김상열 선생님께서 하라고 그러실 것 같았어요."

<레즈시스터즈>(Rez Sistersㆍ인디언보호구역의 자매들)라는 작품으로 작가는 캐나다 인디언계 톰슨 하이웨이. 86년 실제 캐나다에서 벌어졌던 인디언소녀의 강간사건을 모티브로 인디언보호구역에 사는 여인들의 기구한 삶을 그린 작품이었다.

그녀는 바로 그 인디언소녀 역을 맡았다. 배역 얘기를 하며 그녀는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긴장했으나, 다행히 소리내 울지는 않았다. 그런데 휴우~ 하는 순간 갑자기 극중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함바 함바 왜요네 왜호야네…"(그렇게 들렸다). 인디언말로 괜찮아, 괜찮아, 이제는 괜찮아… 그런 뜻이란다.

연습장에서
연습장에서 ⓒ 김도웅
또 같은 해 도쿄국제예술제에도 초청돼 <슬픔의 일곱무대>란 연극에 출연했다. 이번엔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지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백인 침략에 따른 수난을 다룬 작품. 영국인들이 테츠마니아섬 원주민을 학살했던 '블랙워'(Black War) 역사도 담겨 있다.

"영국인들이 그 섬 원주민들을 깡그리 씨를 말려 죽여요. 마지막으로 학살당한 여성이 '나를 어떻게 죽이든 상관없으나 섬에다 수장시켜달라고' 했대요. 그런데 그 시신을 테츠마니아섬의 관광상품으로 전시했다는 거예요. 수장한 게 불과 몇년 전이래요."

그녀는 작가를 설득해 두 작품 모두 한국공연권을 얻었다. 그리고 다음해 먼저 <슬픔의 일곱무대>를 서울무대에 올렸다. 그녀 자신이 만든 극단 '레드볼'의 창단공연이었다.

레드볼, 빨간 공? 그녀가 극단 이름을 지은 건 한일월드컵 이전, 그러니까 붉은악마의 붉은 물결이 전국을 뒤덮기 이전이었다고 한다. 한 친한 선생님께서 극단 이름을 듣고는 "진짜 생각이 없구만, 정말 실정을 모르는구만"이라고 하셨단다.

"사회주의 공부도 안했고 레드콤플렉스가 뭔지도 몰랐죠. 그저 깝깝하고, 침침했어요. 레드는 정열이고, 태양이에요. 빨강과 파랑 둘 다 태극, 한국의 색깔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맨날 파란색만 선택했죠. 불만이었구, 그래 레드란 이름을 붙였죠."

그럼 볼은? "문화라는 건 정체되고 머물면 썩기 마련이에요. 볼처럼 가볍게 계속 움직여야죠. 또 돌은 던지면 그 자리에 주저앉지만, 볼은 선수만 좋으면 공격점을 때리고 돌아오잖아요. 굉장히 좋은 무기라구요."

레드볼의 두 번째 작품은 <레즈시스터즈>. 내년 4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이건 단순히 캐나다 인디언, 호주 원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예요. 바로 우리 문제일 수도 있어요. 일본 내에서 아직 설움받고 있는 교포 문제일 수도 있구요. 우리는 이런 문제를 알아야 해요. 그들의 아픔을 계속 기억하고, 교류하면서 동참해야죠."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

"저는 작품을 통해서 공부해요. 그 작품들이 저한테는 스승이에요. 아무 생각없는 애였는데, 작품을 접하면서 공부를 하는 거예요. 작품을 통해서 내가 깨져요."

그녀는 또 어디로 튈까

그녀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극을 한 까닭에 누구보다 일본연극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한국과 일본 연극계를 비교한다면? 질문을 던지자 "제가 이런 얘기하면 여기 선생님들 선배님들한테 혼날 거 같은데…"라면서도 한 번 말을 꺼내자 거침이 없다.

먼저 일본 연극계는 극단에 따라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단다. 특히, 좌익 성향 극단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파워도 엄청나요. 천황이 주는 상도 안받는다고요."

그러면서 "문호개방을 먼저 해서 그런지" 단지 민족적인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단다. 교류도 활발하다. 미국연극뿐만 아니라 인도연극, 쿠바연극 등도 골고루 흡수하고 있다. 우리의 뮤지컬이 브로드웨이풍 일색인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또 일본에는 노배우들이 많단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평생 연극을 한다. 이번 <고래섬>에도 일흔에 가까운 나이의 노배우가 출연했다. "그들은 70세 배역을 70세 배우들이 한다니까요."

마지막으로 일본배우들은 공연을 앞두고 자신의 공연으로 보러왔던 관객들에게 엽서를 쓴다고 한다. 이번에 어떤 작품을 올리니 보러와주십사 하고. 그러니 관객층도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는 관객이 없다고 기획 탓만 한다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일본만 가면 엄청 열 받고, 너무 속상하다".

내친 김에 일본에서의 한류붐에 대해서도 물었다.

"대중문화 쪽에선 대단하대요. 그런데 하나 착각하고 있어요. 일본은, 미식가로 치면 다양한 음식을 충분히 만끽하는 나라예요. 지금 그 풍이 한국음식풍, 한류풍일 뿐인 거예요. 언제든 다른 걸로 바뀔 수 있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너무 기대를 걸어서도 안 되고, 자만해서도 안 되고, 믿어서도 안 돼요. 욘사마를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다케시마는 일본 땅인 거고… 그들은 그렇다니까요."

그녀는 내년 삼일절에 맞춰 하나의 퍼포먼스를 계획하고 있다. 꽃과 촛불 퍼포먼스로 위안부 할머니들 얘기를 다룬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한일우정의 해'를 맞아 1월 1일 그같은 퍼포먼스를 준비했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한일 우정의 해에 초칠 일 있냐"고 만류했단다.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세계에서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 안 돼요. 말도 안되는 일이에요. 3월 1일마다 매년 해야 돼요. 일본에선 할머니들 돌아가시기만 기다리는데, 돌아가시면 돌아가실수록 더 촛불을 밝혀야 해요. 절대 잊어버려선 안 돼요. 그게 제 일생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에요."

레드볼. 그녀의 극단 이름처럼 인터뷰는 정말 어디로 튈지 몰랐다. 그녀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다만 앞으로의 활동 궤적을 좇는다면 무척 흥미로울 듯싶다. 그때쯤 다시 인터뷰하면 좀 적응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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