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대학가요제가 논란의 도마에 오른 게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가요제 무용론'이 나올 만큼 내용과 영향력 모두에서 침체 일로를 걸었던 대학가요제 아니었던가. 헌데, 작년에 대상 수상팀인 익스(EX)가 깜짝 화제에 오르더니, 올해는 주말 내내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주로 수상결과에 대한 내용이다. JJMP가 대상감이 아니다, 뮤즈그레인이 왜 상을 하나도 못탔느냐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더니 급기야 한 포탈 사이트에는 채점 결과를 공개하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수상 결과를 놓고 뭐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살과 살을 부딪혀 점수를 내는 스포츠에서도 심판의 판정은 절대적이다. 하물며 창작 역량으로 승부하는 음악의 '판정'을 놓고 극단적으로 시비를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리라. 오히려 아마추어 뮤지션들의 수상 결과를 놓고 논쟁이 이는 자체가 그만큼 본선에 진출한 참가팀들 하나 하나를 시청자들이 눈여겨 봤다는 증거일 것이다. 스타도 아니고, 팬클럽도 없는 그들이 펼치는 음악의 진검승부가 대중의 시선을 끈 것이다. 그게 논란이 됐다. 음악이 이슈가 된 건, 역시 오랜만의 일이다.
생각해보자. 언젠가부터 가수에 관련된 뉴스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극히 미미해졌다. 새앨범의 뮤직 비디오 컨셉트는 어떻고, 의상 컨셉트는 어떻고, 안무는 어떻고 하는, 온통 비주얼에 관한 거였다. 그게 아니라면 토크쇼에 나와서 성형 사실을 고백했다던가, 오래전에 짝사랑한 연예인이 있었다던가 하는 가십 거리였다. 오죽하면 얼마전 한 여가수가 자신의 얼굴을 핸드폰으로 때려가며 자작 강도상해극을 벌였겠는가. 슬프지만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반면 이번 대학가요제에선 음악성이 논란의 초점이고 얘깃거리였다. 누가 누구보다 분명히 더 뛰어난 음악을 들려줬는데, 왜 그들이 대상을 차지하지 못했냐는 것이다. 누가 더 외모가 줄충했고, 누가 더 춤을 잘 췄고 이런 부수적인 건 아예 있지도 않았다. 오직 음악성에 집중했을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동떨어진 상황을, 경쟁과 응원이 가능하게 했다. 12팀을 응원하는 각각의 시청자들이 있었고 그런 응원이 있었기에 수상결과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경쟁은 곧 승부다. 우리가 프리미어 리그, 프로 야구에 열광하는 건 그것이 곧 승부의 드라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부는, 곧 순위를 결정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한 게임이라도 더 승리하고 높은 순위에 오르길 바라는 게 팬의 심리다. 단지 '두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라는 평범한 사실이 뉴스가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흥행이라는 승부의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헌데, 음악계에선 언젠가부터 이런 승부가 없어졌다. 음반 시장이 불황에 빠진 이후였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앨범을 내며 경쟁하던 인기 가수들은 이제 서로 발매 시기를 피하는 형국이 됐다. 시장이 작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도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 없이 담합만 남은 한국 음악계
또한 비슷한 성향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은 합동 공연 등을 통해 비슷한 취향의 팬들을 공유한다. 인터뷰와 음악을 통해 비슷한 부류의 뮤지션들을 은근히 비꼬면서 라이벌 관계를 만드는 해외와는 다르다. 그들이 경쟁한다면 우리는 담합하고 있는 셈이다. 건전한 경쟁은 시장을 키우지만 담합은 시장에서 활력을 뺐는다. 음악이 아니더라도, 어디나 마찬가지다.
경쟁이 사라지다 보니 누구를 꺾고, 음악계의 정상에 서겠다는 목표점도 없어졌다. 애시당초 제대로 된 음반 차트 하나 없고, 공중파의 순위 프로그램은 예전과 달리 철저하게 10대 위주의 음악으로만 짜여진다. 하다못해 방송가의 연말 시상식도 급격히 권위를 잃고 있다. 그렇다고 공연 위주로 승부하려 해도 서울을 제외하면 중소규모의 공연장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게 우리 음악계다. 이러니 입소문을 타고 한 단계 한 단계, 스타덤에 오르는 신인의 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음반과 방송, 온라인 음원 등을 고루 반영한 차트가 필요하다. 영화계의 박스 오피스같은 그런 경쟁의 차트 말이다. 지금의 대중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밑에서 조금씩 뜨고 있는 뮤지션은 누구인지가 정확한 데이터로 집계되는 차트는 뮤지션에게는 경쟁을, 대중에게는 풍부한 '선수 엔트리'를 제공한다,
또한 대학가요제 같은 형식의, 그러나 대학생으로 한정되지 않고 수많은 아마추어 뮤지션들의 창작곡 경연 대회가 더 벌어진다면 가십과 비주얼에 의존하지 않고도 더 많은 신인 뮤지션들이 대중의 시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트렌드에 영합하는 유행가가 아닌, 트렌드를 만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시도들 또한 보다 폭 넓게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이상일 뿐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경쟁, 그리고 승부는 종종 현실을 벗어난 드라마를 낳기 때문이다.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동물들이 더 강해지듯, 가요계에 보다 많은 경쟁의 장이 펼쳐진다면 다시 한번 우리를 흥분시킬 뮤지션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대학가요제에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 뮤즈그레인이 오직 음악 하나만으로 순식간에 스타로 떠올랐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