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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나라' 정원. 꽃색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아 이름지어진 천일홍이 보인다.
'허브나라' 정원. 꽃색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아 이름지어진 천일홍이 보인다. ⓒ 박태신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타샤의 정원>과 함께 서점에 나와 있는 책입니다. <탸샤의 정원>은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습니다. 30만평의 대지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며 살고 있는 91세의 행복한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는 타샤 튜더 본인이 4계절에 걸친 정원의 풍경을 적어놓은 책입니다. 두 권 다 아름다운 사진이 가득 들어 있어 ‘읽는 책’인 동시에 ‘보는 책’입니다.

그 할머니가 그러십니다. "인생은 보람을 느낄 일을 다 할 수 없을 만큼 짧다. 그러니 홀로 지내는 것마저도 얼마나 큰 특권인가. 오염에 물들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터지긴 하지만,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그러십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정신없이 살아요. 카모마일 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텐데."

또 하나의 행복한 정원 ‘허브나라’는 봉평의 외진 흥정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 봉평면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계곡을 따라 한참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계곡의 모습이 심상치 않습니다. 계곡을 따라 수많은 펜션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에 어울리지 않게 계곡 물가는 온통 상처 투성이었습니다. 지난 수해 때에 입은 생채기였습니다.

가설 다리를 건너니 ‘허브나라’였습니다. 매표소에서 친절한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계곡의 상처와는 딴판인 잘 가꾸어진 녹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널따란 정원이 꼼꼼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동화 속 나라 같다고나 할까요.

불행히도 ‘허브나라’도 계곡 물가에 인접하고 있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정원의 80%를 잃었습니다. 정원 곳곳에 수해 당시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갔을 때는 그런 티가 나지 않았습니다. 복구를 거의 다 해놓은 것이었습니다.

장영희 님의 책 <내 생애 단 한번>에 그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 받는 자는 용감하고, 사랑 받은 기억만으로도 용감할 수 있다", 복구를 한 힘도 이런 많은 이들의 애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 아파트. 새들에겐 사람마냥 고공공포증 같은 건 없을테지.
새 아파트. 새들에겐 사람마냥 고공공포증 같은 건 없을테지. ⓒ 박태신
‘허브나라’는 허브의 정원입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의하면 “잎 줄기와 잎이 식용, 약용으로 쓰이거나 향기나 향미가 이용되기도 하는 식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향기’뿐 아니라 ‘향미(香味)’까지 포함된다는 점에서 일반의 꽃이나 풀과는 다른 정의를 허브는 지닙니다.

그래서 허브를 좀더 확대해서 정의하면 “그 성분물이 식품, 음료, 그 외의 제품에 향수, 화장, 세정의 효과를 기대하여 쓰여지는 식물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먹는 마늘, 파, 생강, 박하 등도 허브에 속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소개한 타샤 튜더 할머니의 말 중에 나오는 카모마일도 허브입니다.

정원 곳곳에 새집이 허브와 어울려 세워져 있다. 어쩌면 밤마다 허브의 요정들이 새집 사다리를 오르내릴지도 모른다.
정원 곳곳에 새집이 허브와 어울려 세워져 있다. 어쩌면 밤마다 허브의 요정들이 새집 사다리를 오르내릴지도 모른다. ⓒ 박태신
정원 곳곳에 예쁜 새집 모형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새와 허브는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새들도 허브를 약용으로 먹을까요?

사실 봉평을 찾을 때 같이 들르고 싶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이곳 흥정계곡 어딘가에 살고 있는 ‘새집 목수’(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 올해 8월호 참고) 이대우 님의 집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새로 배운 목수 기술로 새집을 만들며 노년을 보내는 분입니다. 현관 근처에 새집이 많이 세워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새집을 이곳 ‘허브나라’에서 보았습니다. 집이 지척이니 혹시 이 곳의 새집들은 그분의 작품이 아닌지 추측해봅니다.

새 미용실.
새 미용실. ⓒ 박태신
‘허브나라’ 정원은 14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약용정원’, ‘향기정원’, ‘명상정원’, ‘성서정원’ 등등. 그곳을 하나하나 지나가면서 살펴봅니다.

'향기정원'에는 아름다운 향을 지닌, 이름도 귀에 익숙한 쟈스민, 로즈마리, 페퍼민트 등이 있습니다. '약용정원'에는 약으로 쓰이는 허브인 라벤더, 세이지 등을 모아놓았습니다. 옛날 허브를 가지고 치료를 하는 사람을 허벌리스트라고 불렀답니다.

'자생정원'은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허브를 사용해왔음을 증명합니다. 각종 한약재, 약초, 마늘 등의 양념 등도 다 허브이니까요. 이곳에는 방앗잎, 산마늘, 원추리 등이 있습니다.

'명상정원'에는 마음을 다소곳이 하는 정원입니다. 특히 페퍼민트와 라벤다는 신경 안정과 피로 회복에 좋은 허브입니다. 정원 곳곳에는 좋은 글귀들을 푯말에 적어 세워놓았는데 이곳 '명상정원'의 푯말에 가슴을 치는 구절이 있어 적어 봅니다.

"직장에는 정년이 있지만 인생에는 정년이 없다. 흥미와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한 그는 아직 현역이다. 인생에 정년이 있다면 탐구하고 창조하는 노력이 멈추는 바로 그때다.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 그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라. 그래서 당신의 인생을 꽃 피우라."

'세익스피어 정원'은 작품 속에 항상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삼은 세익스피어를 기립니다. <한여름밤의 꿈>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저는 영화로 보았고, 멘델스존의 교향곡 <한여름밤의 꿈>도 들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듣는 결혼행진곡도 이 곡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헬리오트로프, 스켄티드 제라늄, 카모마일 등의 허브가 있습니다.

'모네 정원'은 생전에 그림 같은 정원을 가꾼 클로드 모네를 기립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꿈꿀 권리>라는 책에서 모네의 수련을 두고 이렇게 찬탄했습니다.

"그토록 많이 되찾아진 젊음, 낮과 밤의 리듬에 대한 그토록 충실한 복종, 새벽의 순간을 알리는 그 정확성 이것이야말로 수련으로 하여금 인상주의의 꽃이 되도록 한 이유인 것이다."

프랑스 지베르니에 가면 모네의 정원이 있습니다. 사실 모네는 "부유해지자 그토록 나이 들어서! 지베르니에 살고 있었을 적에, 연못 전문의 정원사들을 고용하여, 꽃핀 수련의 넓은 잎사귀의 더러움을 전부 씻어내게 하기도 하고, 적당히 뿌리에 자극을 주는 흐름을 부추기거나" 했다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모네의 정원에서>라는 동화책을 보십시오. 스웨덴 작가와 화가가 사이좋게 만든 책입니다. 두 사람 정원에 대한 책을 여러 권 같이 만들었고, 이 책도 모네의 정원을 즐거운 여행기와 아름다운 그림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창가를 장식하는 데에도 허브가 그만이다.
창가를 장식하는 데에도 허브가 그만이다. ⓒ 박태신

인터넷을 뒤지니, 포세식 변기는 "네코놀이란 무공해 특수세제와 물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변기에서 24시간 하얀 거품이 생산되어 변기내부를 감싸며 흘러내려 오물을 깨끗이 씻어주는 방식"이라 나온다.
인터넷을 뒤지니, 포세식 변기는 "네코놀이란 무공해 특수세제와 물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변기에서 24시간 하얀 거품이 생산되어 변기내부를 감싸며 흘러내려 오물을 깨끗이 씻어주는 방식"이라 나온다. ⓒ 박태신

정원을 둘러보고 온실에 들릅니다. 허브 꽃집입니다. 원하는 허브 모종을 예쁜 화분에 옮겨서 분갈이 해 줍니다. '허브나라'의 화장실은 남다릅니다. 이곳의 포세식 변기는 상하수도 및 정화조 시설이 필요 없어 오물 오수를 발생하지 않는답니다.

허브 상품점인 '향기의 샘'에 도착합니다. 허브 아이스크림을 얄밉게 먹으며 둘러봅니다. 허브에 관한 상품을 '얄밉도록' 멋지게 모아놓은 '향기의 샘'의 상품들은 선물로는 그만입니다.

'향기의 샘' 2층에 있는 허브 전시관 안의 주방 컨셉.
'향기의 샘' 2층에 있는 허브 전시관 안의 주방 컨셉. ⓒ 박태신
이 건물 2층은 허브 전시관입니다. 허브에 관한 백과사전 식 지식과 견본들, 도서들을 아름답게 전시해 놓았습니다. 허브에 관한 외국의 역사는 상상을 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터울'이라는 곳에 들릅니다. '한국과 터키가 하나되는 울타리'라는 뜻을 지닌 이름인데 정말 그럴듯하게 지었습니다. 터키의 문화를 소개하는 곳인데 아주 예쁘게 터키의 농기구, 수공예 제품, 식기류 등을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사적으로 '허브나라'는 터키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터키가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지닌 우방이기도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허브나라'의 이미지와 잘 어울립니다.

문 닫을 시간이 될 즈음 정원 벤치에 앉아 가방을 정리합니다. 야외무대인 '별빛무대'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볼 기회는 갖지 못했습니다. 그 별들 아래서 가끔 공연이 열린 답니다.

이곳 직원들이 봉고차로 퇴근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봉평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곳이라 퇴근할 때는 그렇게 모여서 퇴근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문의 문을 닫지 않습니다. 문이 있었나 싶습니다. 정원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갑니다. 그러니까 '허브나라'의 밤은 그대로 자연 속의 정원이 됩니다. 어쩌면 별 하늘을 지붕 삼고, 흥정계곡을 울타리 삼은 이곳 야외 정원을 자물쇠로 걸어 잠그는 것은 걸맞지 않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허브나라' 홈페이지 www.herb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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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번역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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