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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문, 5ㆍ16 쿠데타 이후 폐쇄되었다가 45년만에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신무문, 5ㆍ16 쿠데타 이후 폐쇄되었다가 45년만에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 김정봉
최근엔 향원정 영역이 가장 많이 변하고 있다. 신무문과 함께 집옥재·팔우정·협길당이 개방되었다. 향원정 서쪽의 태원전이 거의 복원을 완료하여 개방을 앞두고 있고 향원정 북쪽엔 건청궁이 복원 중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10년 전의 경복궁은 하루 가볍게 갔다가 오는 쉼터나 공원 정도였다. 경회루 연못가에는 물고기 밥을 팔고, 어른들은 나무 그늘에서 늘어지게 누워 한나절을 보내기도 하였다. 물고기 밥을 애한테 쥐여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일요일을 가족에게 봉사하며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위로를 받았다.

요즈음 풍경은 사뭇 다르다.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학생들이 소그룹으로 찾아와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어가며 구경을 한다. 해설사도 따분한 설명을 피하고 영화에 나온 장면을 상기시키거나 관련 일화를 많이 들려주며 재미있게 설명을 한다.

한 학생이 경복궁에 들어서자마자 '메롱' 동물을 찾겠다고 달려간다. 영제교 사방에 네 마리의 서수 중 혓바닥을 반쯤 내보이며 귀엽게 금천(禁川)을 쳐다보는 동물을 찾는 것이다. 친구끼리 그 서수를 흉내 내며 낄낄대며 웃는다.

'메롱' 서수,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메롱' 서수,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 김정봉
근정전에 이르러서는 근정전 2층 기단 사방에 조각해 놓은 동물 중에 자기 띠에 해당하는 동물을 찾아 거기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너무도 반가운 광경이다. 경복궁을 더는 따분한 공간, 마지못해 오는 공간으로 여기지 않고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근정전 월대의 호랑이상, 호랑이 띠인 나도 반가워서 찍어 보았다
근정전 월대의 호랑이상, 호랑이 띠인 나도 반가워서 찍어 보았다 ⓒ 김정봉
원래 둘레에 담이 둘러쳐져 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은 폐쇄적 공간이었던 경회루도 작년 6월부터 특별관람으로 개방하고 있다. 멀리서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던 경회루의 참 맛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아미산 굴뚝이 산뜻해졌다. 깨지고 뭉개진 벽돌을 다시 쌓았고 밝기도 밝아져 더욱 화려해 보인다. 굴뚝을 다시 쌓은 것도 그렇지만 경복궁을 찾는 사람 중에 이 아미산을 빼놓고 지나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아미산 굴뚝이 산뜻해졌을 뿐만 아니라 방문객한테 인기가 높다
아미산 굴뚝이 산뜻해졌을 뿐만 아니라 방문객한테 인기가 높다 ⓒ 김정봉
예전엔 힐끗 지나치고 말았다면 지금은 여기에 한참을 머물며 아미산과 굴뚝을 감상하며 담소를 나누는 광경을 쉽게 발견한다. 내가 아미산을 갔을 때도 교태전 툇마루에 앉아 몇 명의 여학생이 담소를 하며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근에 제자리를 찾아가며 가장 많이 변하고 있는 곳은 향원정 영역. 경회루 이층 누각에서 볼 때 멀리 보이던 북악의 봉우리가 이제는 향원정 지붕과 함께 썩 잘 어울리며 한눈에 들어온다.

향원정 서쪽이 시원해졌다
향원정 서쪽이 시원해졌다 ⓒ 김정봉
예전에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쪽에 북악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보이고 그 옆으로 30경비대가 떠난 공간에 태원전이 복원을 완료하고 개방을 앞두고 있다. 향원정 북서쪽으로 이색적인 건물인 팔우정·집옥재·협길당 건물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30경비대가 머물던 옛 태원전터에 태원전이 복원되었다
30경비대가 머물던 옛 태원전터에 태원전이 복원되었다 ⓒ 김정봉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이 열리어 광화문으로 들어와서 신무문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북방을 관장하는 신령한 동물인 현무(玄武)를 뜻하여 신무문이라 이름 붙여졌다. 5·16 쿠데타 이후 군부대가 경복궁에 주둔하면서 폐쇄된 후 45년만에 다시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은 서로 다른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눈길을 끈다. 이 건물은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는 없었던 건물로, 고종이 창덕궁에 있을 때 지은 것을 고종 28년 경복궁으로 돌아오면서 이 자리로 옮겨 온 것이라 한다.

가운데 건물이 집옥재, 왼쪽이 팔우정, 오른쪽 건물이 협길당이다
가운데 건물이 집옥재, 왼쪽이 팔우정, 오른쪽 건물이 협길당이다 ⓒ 김정봉
이 3채의 건물은 각각 다른 이름이 있지만 전체가 연결되는 구조를 하고 있으며, 원래 임금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다고 하나, 그 이후 고종이 서재로 사용하기도 하고 외국사신을 만나는 장소로 이용했다.

가운데 건물인 집옥재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면서도 좌우 벽체와 뒷벽까지 적황색 벽돌로 쌓았고, 뒷벽의 반월창은 화강암으로 만월창은 아랫부분은 화강석으로 윗부분은 적황색 벽돌로 원을 돌렸다. 건물 중앙의 계단에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동물인 서수상을 조각하여 보통 건물이 아님을 말해준다.

집옥재 벽체, 맞배지붕을 하였으면서도 기단부분까지 담황색 벽돌로 쌓아 근세건축물처럼 보인다
집옥재 벽체, 맞배지붕을 하였으면서도 기단부분까지 담황색 벽돌로 쌓아 근세건축물처럼 보인다 ⓒ 김정봉
내부에는 가운데에 만월창이 있고 좌우 양쪽에 반월창을 내었다. 분합문의 창살장식도 모두 이 당시 신식으로 인식되던 중국식으로 꾸며졌다. 현판은 송나라 명필 미불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고 중국식을 따라 세로로 길게 세웠다.

집옥재 반월창, 반월창과 창살무늬가 그 당시 신식으로 여겼던 중국식을 따랐다
집옥재 반월창, 반월창과 창살무늬가 그 당시 신식으로 여겼던 중국식을 따랐다 ⓒ 김정봉
집옥재가 중국식을 따랐다면, 그 동쪽에 있는 협길당은 우리 고유의 전통을 따른 건물이다. 집옥재의 왼편에 있는 팔우정은 건청궁의 장서고로 증층팔각의 정자형 건물인데, 집옥재가 주요건물이고 양쪽 두 채는 부속건물로 보면 된다.

향원정 북쪽으로 건청궁 영역만 공사가 마무리되면 그런대로 구색을 갖추게 된다. 향원정의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 건청궁 영역이다.

건청궁에는 고종의 침소인 장안당과 명성황후의 침소인 곤령합이 있으며 궁중 나인이 주로 사용하던 옥후루가 있다. 옥후루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이거나 시해된 후 시신이 안치되었던 장소여서 비운의 장소로 남아 있다.

명성황후는 예전의 드라마나 영화 혹은 뮤직비디오에서는 시해장소가 옥후루 실내로 그려지고 있으나, 최근에 개봉된 한반도에서는 고종의 침소가 있는 장안당 앞뜰로 그려지고 있다. 최근 발견된 문건에서도 명성황후는 실외에서 살해된 후 실내(옥후루)에 안치된 것으로 밝히고 있다.

1910년경의 옥후루,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1910년경의 옥후루,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 김정봉
건청궁의 공사가 끝나고 태원전이 개방을 하면 향원정 영역은 경복궁 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곳이 될 것 같다. 건청궁은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이고 일제에 의해 철저히 망가진 이후 복원된 곳이고, 태원전은 90년대까지 군부대가 주둔한 후 복원된 곳이다.

색칠을 다시 하고 벽돌을 새로 쌓는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일제뿐만 아니라 군사문화로부터의 완전한 복원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후련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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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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