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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에서 왔어요."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요." ⓒ 한나영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델? 한복의 아름다움에 관객들이 탄성을 질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델? 한복의 아름다움에 관객들이 탄성을 질렀다. ⓒ 한나영

"엄마, 나 이번에 패션쇼에 나가게 됐어."
"에엥, 웬 패션쇼? 그럼 네가 모델?"

학교에 갔다온 딸이 패션쇼 모델을 하게 됐다고 들떠서 말한다. 난데없는 패션쇼 발언에 귀가 솔깃해진 내가 궁금한 표정을 짓자 딸이 선 채로 설명을 하는데….

"힐란데일 파크에서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거기서 자기 나라의 고유 의상을 입고 패션쇼를 하는 거래."

지난 30일 이 곳 해리슨버그의 힐란데일 파크에서는 '해리슨버그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열렸다. 1997년에 처음 시작된 이 행사는 서로 다른 문화의 외국인들이 자신의 고유한 음악·미술·춤·음식과 다양한 활동 등을 소개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공유하고 고양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축제에 올해 처음으로 패션쇼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딸아이는 '패션'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의 소개로 이 쇼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HANBOK, 핸복이 아니라 한복이요"

각 나라의 민속공예품도 선을 보였다.
각 나라의 민속공예품도 선을 보였다. ⓒ 한나영
멕시코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
멕시코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 ⓒ 한나영
그런데 패션쇼 참가는 행사 당일에 한복만 입고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패션쇼 나레이터가 모델의 옷을 소개할 때 그 옷이 어떤 옷인지 자세히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복이 어떤 옷이긴, 그냥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의상이지. 중국의 치파오나 일본의 기모노, 베트남의 아오자이처럼 말이야."
"하여간 주최 측에서 전화를 할 거라고 하니까 엄마가 전화받으면 한복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줘요."

딸은 '한복 숙제'를 내게 떠넘기고 학교로 가버렸다. 그날 오후, 이번 축제를 주관하는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댁의 자녀들이 이번에 패션쇼에 나오죠?"
"네."
"제가 지금부터 15개의 질문을 드릴 텐데요."
"뭐, 뭐라고요? 15개라고요?"
"개수만 많지 별 건 없어요. 아이 이름이 어떻게 되죠? 철자를 불러 주세요."

이름을 묻는 첫 질문에 이어 나이·성별·국적·직업, 체류 기간 따위를 묻는 쉬운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 다음 우리 고유의 전통 의상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한복이요. H·A·N·B·O·K"

불러주는 대로 철자를 받아적던 여자가 내게 다시 물었다.

"핸복이라고요?"
"아니요. 핸복이 아니고 한복이요. 한·복"

각 나라 고유 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무대 뒷모습.
각 나라 고유 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무대 뒷모습. ⓒ 한나영
ⓒ '해리슨버그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홈페이지
또박또박 발음을 해줬더니 그때서야 '한복'이라고 발음을 한다. 한복이 핸복이 된 것은 이들이 영어 철자 a를 '아' 대신 '애'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내 성(姓)도 '한'이 아니라 '핸'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 UN 사무총장으로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이름도 '밴'이라고 발음하는 걸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한복을 '핸복'이라고 발음한다. 그렇게 발음을 교정해준 뒤에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데 이번에는 쉽지 않은 질문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한복이 정치적, 종교적, 혹은 개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지리나 기후에 맞게 만들어진 옷인가. 날마다 입는 일상복인가. 특별한 날만 입는다면 주로 언제 입는가. 나이에 상관없이 입는 옷인가. 이번 패션쇼에 참가하는 아이들의 한복은 집에서 만든 것인가, 산 것인가. 어디에서 맞춘 것인가. 한복이 갖는 특별한 상징성이 있는가. 한복의 역사와 특징은 무엇인가.

패션쇼 내레이터용으로 준비된 질문은 생각 밖으로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전화를 끊은 뒤 인터넷을 찾아가며 답변을 준비한 뒤 다시 전화 연결을 하기도 했다.

지금 한국에서는 얼마나 입었을까

3살 된 한국 입양아 메이시 (소희)의 부모들이 한복에 관심이 많았다.
3살 된 한국 입양아 메이시 (소희)의 부모들이 한복에 관심이 많았다. ⓒ 한나영
패션쇼에 참가하는 모델이라고 '특별 대우'를 받았다. 골프 카트를 타고 행사장으로 가다.
패션쇼에 참가하는 모델이라고 '특별 대우'를 받았다. 골프 카트를 타고 행사장으로 가다. ⓒ 한나영
패션쇼 참가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대표선수(?)들이었다. 이들은 중국·네팔·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과 유럽·아프리카·남미 등지에서 온 학생들과 시민들이었는데, 어떤 모델은 화려한 의상을 뽐내며 프로 모델 뺨칠 정도의 출중한 매너로 온 무대를 휘어잡기도 했다.

패션쇼가 끝난 뒤 밖으로 나간 '한복소녀'들은 카메라 세례를 많이 받았다. 어떤 꼬마애는 우리 애들을 가리켜 황송하게도 '공주'라고 말하면서 사진을 요청했다. 이 밖에도 다른 많은 사람이 두 딸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바람에 아이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이번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을 통해서 아이들은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아이들은 평소 입지 않던 긴 한복에 꽃고무신까지 신어 불편하다고 했지만 한국을 알릴 좋은 기회였기에 시종 생글거리며 앵무새처럼 떠들고 다녔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요."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끝난 뒤 학교에 간 아이들은 친구들에게서 "TV에서 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졸지에 스타가 된 것이다. 물론 한복 덕분이었다.

추석 명절을 맞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름다운 한복을 갖춰 입었는지 궁금하다.

교환학생으로 온 여대생도 한복을 입고 TV 카메라 앞에 섰다.
교환학생으로 온 여대생도 한복을 입고 TV 카메라 앞에 섰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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