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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선자령에 다녀왔다. 선자령은 이름과 달리 고개가 아니라 평창에 있는 산이지만 횡계나 대관령 옆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찾아가기에는 더 쉽다. 횡계행 버스를 탄 나는 그곳에서 내려 걸어가거나, 아니면 택시로 대관령 휴게소까지 가려 했으나 내가 탄 버스가 횡계에 들르는 것을 깜빡하여 강릉에서 다시 대관령을 넘어 횡계로 돌아가는 바람에 곧장 대관령에서 버스를 내릴 수 있었다. 산은 길이 완만하여 크게 부담이 없었다.

ⓒ 김동원
선자령의 산길로 접어들면 초입에 나무들이 울창하다. 함께 간 그녀가 저만치 간다. 나무는 그녀의 키를 세 길, 네 길, 다섯 길을 넘어서고, 그녀의 키는 금방 초록빛 숲 속으로 잠긴다. 그녀는 숲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초록이 깊은 숲 속으로 금세 사라져 버린다. 산을 오를수록 나무들의 허리가 가늘어지고 키도 점점 낮아진다. 나무들이 키를 낮추면 가지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볕의 양은 점점 많아진다.

ⓒ 김동원
그러다 보면 선자령 정상 부근의 풍력발전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무들도 이제는 한 길 정도의 키로 사람들과 눈을 맞추기 시작한다.

ⓒ 김동원
계속 길을 가다 보면 억새가 하얗게 손을 흔들며 지나는 사람을 반긴다. 당신도 잊지 말고 억새에게 손을 흔들어 주시라. 손을 흔들 때는 당신도 하얗게 흔들어야 한다.

ⓒ 김동원
이제는 길가의 풀과 나무들이 허리 아래쪽으로 몸을 낮춘다. 그때쯤 시선이 멀리 산등성이로 먼저 올라서서 이만치 서 있는 우리에게 빨리오라고 손짓을 한다. 하지만, 다리는 시선의 손짓을 짐짓 모른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 김동원
선자령의 정상 부근은 목장의 일부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상 부근에선 넓게 목초지가 펼쳐진다. 그곳에선 풀들이 한껏 발돋움을 해도 우리들의 발목 아래이다. 그곳에선 목초지의 옆에 앉아 한참 동안 볕을 쬐며 시간을 흘려보내도 좋다. 이곳에 앉았을 때 메에에 울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 김동원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초록이 일렁이는 둥근 초지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나는 그것을 비행접시 착륙장으로 명명했다. 나는 그녀에게 "저곳에 가면 분명 최초로 착륙하는 비행접시에겐 착륙장 이용료를 면제해준다는 안내판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내게 "가서 직접 확인하고 오면 안 되겠니?"하고 말했다. 하지만 난 이상하게 가서 확인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 김동원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 선자령은 나지막한 산이었지만 정상의 표지석은 백두대간을 모두 호령할 만큼 높고 우람했다.

ⓒ 김동원
선자령을 오를 때는 곳곳에서 풍력발전기를 만나게 된다. 풍력발전기란 것이 바람의 힘으로 날개를 돌려 전기를 얻어내는 것이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물속에 산소알갱이가 녹아있듯이 아마 바람 속엔 전기알갱이가 녹아 있을 거야. 가끔 바람을 시원하게 호흡할 때면 온몸이 짜릿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건 분명한 것 같다.

나는 풍력발전기의 날개는 물고기의 아가미와 비슷해서 용케도 바람 속에서 그 전기알갱이를 골라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내려오다 그 생각을 바꾸었다. 풍력발전기는 바람보다는 구름을 뚫고 내려온 저녁 햇살을 잔뜩 받아두었다가 그걸 우리에게 보내 밤을 밝혀주는 게 틀림없었다.

ⓒ 김동원
내려오는 길에 구름이 가면놀이를 하자고 잠시 발길을 잡을지 모른다. 오늘의 구름은 대마왕 가면을 썼다. 구름의 가면놀이에 동참하고 싶다면 임시방편으로 양손의 엄지와 집게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그 동그라미를 적당히 눈에 가져다 붙인 뒤 '배트맨!'을 외치면 된다.

ⓒ 김동원
선자령이 너무 낮아 왠지 산에 오르고도 허전한 느낌이 든다면 중간에서 대관령 휴게소 쪽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반정으로 가는 샛길을 택하여 대관령 옛길로 내려가면 된다. 그러면 강릉으로 향하게 된다. 대관령 옛길로 내려왔다면 그 길을 벗어나는 지점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옛길만나가든"에서 식사를 하시라.

정선 태생이라는 그 식당의 주인어른은 젊었을 적 한 미모 하셨을 아주머니와 함께 그 식당을 꾸려오다 지금은 식당의 운영을 서울분에게 맡기고 있었다(사진에서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는 분과 맨 오른쪽 분). 하지만 새로 짓고 있는 펜션은 두 분이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두 분은 짙은 어둠에 잠긴 대관령 옛길을 내려온 우리 두 사람을 자신들의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 앉혀주었으며 술까지 건네주셨다.

아주머니는 버스 시간에 늦지 않도록 우리를 대관령 박물관까지 태워다 주셨다. 훈훈한 인정을 맛본다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다. 두 분과 식당을 건네받아 운영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두루 고마울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 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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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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