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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 도착한 날 늦은 저녁, 찐반칸은 비닐봉투에 뭔가를 들고 거실로 들어왔다. 아무 말 없이 탁자 앞에 앉은 그는 술병 하나를 기운 없이 내려놓았다. 평소 쉼터 내에서 음주가 금지돼 있지만,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옆에서 TV를 시청하던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손짓으로 '한잔하라'고 권하기 시작했다. 무슬림 친구들이 다들 손사래를 쳤다. 그 와중에 얼마 전 직장을 잃은 헹키(Hengky)가 곁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묻고 답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이 제대로 통하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는 동안 사망 원인을 알기 위한 사체 부검도 끝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들이 마무리되어 예상보다 빨리 출국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데리고 출국 당일 공항으로 갔다.
출국심사대로 들어가기 앞서 찐반칸은 마디 굵은 손을 내 손에 얹고 "목스. 깜언..."이라고 입을 연 뒤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앞에 선 나도 목이 메었다. 사실 벌건 눈을 꿈벅꿈벅하며 이어갔던 그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식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홀몸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의 마음이야 굳이 말로 다 할 필요가 없었다.
| | 고향 | | | 출처: 정지용시집(1934) | | |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 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힌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정지용 | | | | | |
게다가 약속된 유해송환이 관련업체의 실수로 이틀이나 미뤄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공항에서 갑작스레 전해 듣고 혼자 비행기에 올라야 했던 그로서는 더더욱 복받치는 것이 있었을 터.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에 온 후 옷과 가방 등 아들 유품을 돌려 받았을 때, 사진을 비롯한 근로계약서 등 보험관계 서류들을 돌려받을 때, 유해가 안치된 병원영안실에 갔을 때, 국과수 부검실에 갔을 때, 가는 곳마다 먼저 간 자식을 떠올리며 울었던 그가 다시 어깨를 들썩이는 것이었다. 험난했던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자식만큼은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보냈던 타향살이고 보면, 눈물이 마르지 않는건 당연했다.
그렇게 떠났던 그가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의 시신을 받고 다시 연락해 왔다. "목스. 깜언..."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라고 눈물지었던 정지용 시인의 탄식처럼, 가을 하늘은 높기만 한데 험난한 인생을 살며 자식이 전부인 양 살았던 그의 삶의 궤적들이 떠올라 다시 한 번 먼 하늘을 올려보았다.
덧붙이는 글 | 인도네시아에 위치한 갈랑 난민촌에 수용돼 있던 베트남인들은 1991년 캐나다 1만3516명, 이어 호주 6470명의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팔을 벌리지 않았다. 일본 11명을 비롯 스페인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아일랜드 등은 각각 20명에 못 미치는 인원을 받아들였다. 그 와중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승선인원을 가득 채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난민촌으로 들어왔고 매달 50여 명의 아이들이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보고에 따르면 베트남 보트 피플 중 25만 명이 바다에서 살인 폭풍 질병 굶주림 등으로 죽었으며 현재 160만 명의 보트피플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이들은 미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홍콩 한국 필리핀 등에 산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