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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은 모아두면 결국 버려야 하지만 사람은 모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버릴 사람이란 아무도 없다.
ⓒ 들샘공동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의 일부인 노숙자 문제는 아직도 정부가 나서도 현실적으로 풀지 못하고 있는 과제다. 그런 가운데 현직 목사가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재활을 돕고 있어 화제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일명 '노숙자목사'로 불리는 권태완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교인 30여명의 개척교회의 담임목사인 그는 6년 전 노숙자들의 쉼터인 '들샘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는 6년째 노숙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노동을 통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달 30일 경북 포항에서 권 목사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목회만큼이나 참다운 사랑의 실천이라며 더욱 큰 희생을 각오하고 있었다.

권 목사의 고향은 경북 포항 구룡포. 바다가 있는 어촌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고향인 삼정2리라는 마을은 구룡포해수욕장에서도 한참 떨어져있는 산골동네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그는 초·중·고는 구룡포에서 다니고 대학은 대구에서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다닌 동네의 삼정교회에서 봉사를 꿈꾸며 목회자로서 희망을 싹틔웠고 결국 신학을 전공했다.

"우리 마을에서 대학물을 먹은 사람이 딱 둘뿐이었는데 당시의 주위 친구들은 가스배달이나 공장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나는 과수원집 아들로 태어나 대학을 다니다 보니 친구들에게 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았어요."

이 작은 짐이 권 목사를 자신의 일보다 사회를 더 크게 보는 사람으로 만든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목사가 된 그는 IMF 외환위기 이후 길에서 동사하는 노숙자들을 보고는 이들을 위한 사역을 다짐했다. 노숙자들의 환경을 알아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노숙자들이 모여드는 동대문 지하도, 서부역, 서소문 공원에서 직접 노숙을 했다.

그러는 동안 권 목사는 노숙자들을 모아 들샘공동체를 만들었고 노동자들과 함께 건축현장에서 노동일을 했다. 그는 "차라리 노숙이 더 편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고된 노동의 삶이었다"며 "노숙자들에게 숙식을 해결해 주는 것도 좋지만 노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벌어서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의 도우미로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 '막노동'의 '막'자는 마지막이란 뜻이라고 생각한다. '막장'이란 말이 있다. 예전에는 석탄을 캐는 일이 인생의 마지막 종착 일터였는데 요즘은 일용근로자들의 일터를 막장이라 보면 된다. 여기서 탈락하면 노숙자가 되고 그러면 병도 얻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어려워진다.
ⓒ 들샘공동체
▲ 벽돌을 지고 운반하고 있는 권 목사
ⓒ 들샘공동체
▲ 권 목사는 일용근로자 공동체를 세우기 전에는 서울역 등에서 노숙자와 상담을 하면서 사역을 했다.
ⓒ 들샘공동체
들샘공동체는 2000년 3월 5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노숙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일용근로인들이 노숙인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생겨났다. 현재는 일용근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용근로인들의 월수입은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 120만원 정도이며 혼자 사는 독거인인 경우는 70~90만원 정도이다. 들샘공동체 식구들이 사는 곳은 여인숙 또는 고시원이다. 권 목사는 이러한 일용근로인들은 노숙인과 다르지만 둘 사이의 경계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건강상 이유나 본인들의 경제관리에 문제가 발생하면 일용근로자들도 노숙인으로 전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같이 일감이 없고 유지가 힘든 겨울이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한다. 곧 닥칠 추위는 이들에게도 힘든 계절임에 분명하다. 들샘공동체는 건설현장, 집수리현장, 이삿짐센터 등 사람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사람을 소개하고 있으며 철거현장이 생기면 함께 일을 하고 있는 공동체 삶의 터다.

권 목사는 들샘공동체 시작 당시의 어려움도 털어놓았다. 처음엔 술에 취한 사람들 때문에 하루가 멀다할 정도로 사고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칼을 들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사무실 집기가 세 번이나 박살난 경우도 있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동체 사무실 집기가 수시로 뒤집어졌고, 유리창도 매일이다시피 깨졌어요. 아래에 있는 식당은 우리 식구들 때문에 하루에 몇 번씩이나 문을 닫은 적도 있습니다. 동대문 경찰서 조사계에 일주일에 네번이나 불려가서 '당신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여기 구두 닦으러 온 거냐'고 핀잔을 들을 때도 있었어요."

어쩌다 나간 일용직일로 월 수십만원 정도를 벌어 여인숙, 쪽방 등에서 사는 이들은 가슴에 맺힌 상처로 대인관계가 원만할 수가 없었다. 소문을 들은 건물주가 임대 계약을 해주지 않았을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초기 들샘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들뿐이라 재정이 어려웠다.

"지하실에서 라면박스를 쌓아놓고 설교했어요. 노숙자 가운데 어떤 이는 예배 중에 일어나서 자신이 '설교'를 하기도 하지요. 문턱이 없는 쉬운 교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한 잔 먹어도 올 수 있고 교회 앞에서 담배도 피우고 그런 사람들까지 품어줄 수 있는 교회…. 사회가 냉정히 외면하는 사람들을 어느 누군가는 품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환경에 권 목사는 노숙자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갔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일하며 친구처럼 지냈다.

▲ 처음 그가 개척한 교회에는 십자가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일을 나갔다 온 노숙자들이 공사장에서 주워온 목재들을 이용하여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십자가를 세웠고 이를 통해 공동체 식구로써 서서히 마음을 열어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 들샘공동체
가끔 노숙자 식구들 중에서는 남들이 하룻밤 도박으로 몇천만원을 번다고 하니까 노동일에는 인생의 비전이 없다며 인근 경마장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는 "술 때문에 가는 식구들이 너무 안타깝다"며 "가슴까지도 가난한 이런 사람들이 와서 쉬었다 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인터뷰 끝에 권 목사에게 가금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 그에게선 '오토바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현재 공동체에 일감이 없다"며 "오토바이라도 하나 구해 건설현장으로 뛰어 다니며 일감을 얻어 왔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교회가 덩치를 키우기 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손 내미는 일을 많이 해야한다"며 "변함없이 노숙자들과 더불어 값진 땀을 흘리며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들샘공동체 전경
ⓒ 정태현
▲ 권 목사는 교회화단에 보리를 심고 있다. 먹을 것이 없을 때 양식이 된 보리는 들샘공동체가 추구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 들샘공동체

덧붙이는 글 | 문의전화: 들샘공동체(권태완 목사) (02) 967-8219, 011-756-8219 
후원계좌: 제일은행 153-20-290339(권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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