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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 톱 스토리로 뜬 기사(www.dnronline.com)
1면 톱 스토리로 뜬 기사(www.dnronline.com) ⓒ DNR인터넷판
세종대왕의 한글 덕에 스타(?)가 되다.
세종대왕의 한글 덕에 스타(?)가 되다. ⓒ 한나영
"헬로, 나영. 제닛이에요. 오늘 아침 신문에 딸이 나왔던데, 봤어요? 와우, 그것도 1면에 대문짝만하게…. 로웰과 함께 그걸 보고 기뻐했어요. 신문이 필요하다면 갖다줄게요." (제닛 웽거의 전화)

"굿모닝, 나영. 오늘 아침 신문에 딸이 크게 나왔더군요. 새벽에 신문을 읽는데 딸 사진이 나와서 기뻤어요. <데일리 뉴스 레코드>의 온라인 판(www.dnronline.com)을 클릭해 보세요. 딸을 볼 수 있어요." (앤 윌의 이메일)

"하이, 귀여운 소녀들! 여길 보세요. 신문을 오렸어요.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 가운데 이렇게 신문 1면에 나온 환자는 처음이에요. '유명한 환자'이기 때문에 여기 붙여놨어요." (병원 사무실의 애나)

"우리 학교 밴드부가 지금 뜨고 있어요. 저기 벽에 붙은 신문을 보세요. 크게 나왔죠?"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밴드 디렉터, 미스터 스노우)

"어제 신문 1면에 나온 소녀네요. 신문 5부를 달라고요? 저기 가셔서 말씀하세요." (DNR 신문사를 딸과 함께 방문했을 때)

"따님이 며칠 전 신문에 크게 나왔죠?" (식당에서 만난 어느 학부모)

작은 딸이 신문 1면에... 해리슨버그에서 스타가 되다

작은딸이 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 해리슨버그에서 스타가 되었다. 이 지역의 유일한 일간지인 <데일리 뉴스 레코드> 1면에 딸이 제법 크게 나왔기 때문이다. 사진은 거의 신문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컸다. 시쳇말로 '뜬'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딸이 뭔가를 잘해서 신문에 실린 게 아닌지라 크게 자랑하고 우쭐댈 일은 아니다. 그냥 '우연히' 기자 눈에 띄어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사진 관련 기사는 풋볼 시즌을 앞두고 밴드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밴드부 이야기다. 이 기사는 이들이 연주하게 될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 미제라블>과 3만 달러를 들여 새로 맞췄다는 유니폼 이야기 등 밴드부 관련 소식 뿐이다.

그러니 딸아이 개인이 신문에 크게 나올 만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어쩌다가 밴드 디렉터와 비브라폰을 연주하고 있는 딸 사진이 크게 실렸고 그 바람에 얼떨결에 우리 가족이 축하를 받게 된 것이다.

우리는 딸아이가 신문에 나올 거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딸이 학교에 찾아온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며 흥분되어 집에 돌아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크게 1면에 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

그나저나 밴드부에 있는 인원이 모두 85명이나 된다는데 왜 하필 우리 애가 기자에게 뽑혔을까. 연주를 잘 해서? 밴드 디렉터 눈에 들어서? 아니면 미모가 뛰어나서?

그 어느 것 하나 아이가 신문 1면에 나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애는 지난 8월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평범한 신입생으로 뽑힐 만한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왜...? 다 '한글' 덕분

바인더 겉 표지에 우리글이 가득하다.
바인더 겉 표지에 우리글이 가득하다. ⓒ 한나영
아마 모르긴 해도 딸이 입은 특이한(?) 티셔츠가 사진 기자의 눈을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실제로 그 기자는 딸에게 와서 물었다고 한다. "티셔츠 앞에 뭐라고 씌어 있는 거냐"고.

작은 딸은 자신이 한국에서 왔다고 말을 한 뒤 한국어로 쓰인 '앞'은 'Front'라는 뜻이고 '뒤'는 'Back'이라는 뜻이라고 설명을 해줬단다(그걸 누가 모르냐고?).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뒤집어지며 깔깔거렸다고 한다. 하여간 딸이 입은 한국어 옷은 금세 '히트 상품'이 되어 졸지에 딸아이는 스타가 되었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하듯, 우리 아이들 역시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우리 물건을 좋아한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한국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운다는데….

세계사 시간에 그려오라고 한 아시아 지도 숙제에 원래 책에 나와 있던 '일본해' 대신 '동해'라고 표기를 하고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하고, 엊그제는 유엔 사무총장 후보인 반기문 장관을 북한 출신이라고 말한 교생 선생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정정을 해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 들고 다니는 바인더 겉표지 장식도 한국어로 도배가 되어 있는데, 친구들이 글꼴이 예쁘다고 하면 한국어 전도사(?)가 되어 미국 아이들에게 한국말과 글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예를 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을 한국어로 적어달라고 하는 아이들의 손등에 '호랑이'도 적어주고 '개''고양이''얼룩말'도 적어주었는데 미국 아이들은 예쁜 글씨를 보면서 열심히 한국어를 '그린다'고 한다.

한국 초등생들은 국어보다 영어를 잘한다는데

이곳 미국 학교에서는 ESL 부모(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의 부모)에게 모국어를 잘 읽고 쓸 수 있도록 지도하라고 조언한다.
이곳 미국 학교에서는 ESL 부모(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의 부모)에게 모국어를 잘 읽고 쓸 수 있도록 지도하라고 조언한다. ⓒ 한나영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를 기념하고 이 날을 뜻깊게 보내기 위한 한글날이 올해 다시 국경일로 부활되었다고 한다.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한글날에 듣는 우울한 소식은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국어 학업성취도가 영어 학업성취도 보다 떨어진다고 하는 뉴스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과 관련하여 이곳 미국 학교에서 ESL 부모(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의 부모)에게 주는 팸플릿의 한 구절을 소개하려고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국어를 잘 읽고 쓸 수 있는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학업 성취도가 훨씬 뛰어나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와 계속해서 모국어로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시고 자녀들이 이중언어자가 되도록 격려해 주십시오."

영어를 빨리 익히게 한다고 자녀들에게 한국말을 못 쓰게 하는 이곳 한국 부모들이나 영어 공부에만 전념시키는 한국의 부모가 귀담아 들을 말이다.

그나저나 신문에 난 딸의 사진을 보고 수십 년 전에 한국을 떠나온 분이 궁금하다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저 티셔츠 뒤에는 정말 '뒤'라고 씌어 있나요?"

학교 '트윈 데이'때 두 딸이 똑같이 입고 갔다.
학교 '트윈 데이'때 두 딸이 똑같이 입고 갔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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