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끝내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로써 길게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 가동이 포착된 1980년대 중반 이후 20년만에, 짧게는 2002년 10월 북미간에 우라늄 농축 문제를 둘러싸고 충돌이 벌어진 지 4년만에 북핵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동안 추정으로 존재해왔던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는 1994년 전쟁 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져온 대북포용정책은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여러 가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을 잇는 끈으로 작용해온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사업도 핵실험의 유탄을 맞아 휘청거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북 포용정책 총체적 위기...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한다면
한반도 밖에서의 움직임도 숨가쁘게 전개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 등 대북강경책을 주도해온 국가들은 북한의 핵실험을 강력히 비난하는 한편, 유엔 안보리를 통한 본격적인 대북 제재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엔 안보리는 의장 성명을 통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유엔 헌장에 따라 그 책무에 맞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어, 이번에는 대북 제재가 포함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영국·프랑스 등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원을 받아 경제·군사적 제재까지 가능한 유엔 헌장 7조를 새로운 결의안에 포함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 지는 한반도의 향후 정세에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이들 국가가 대북 제재에 동의할 경우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북한의 입장과 정면 충돌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추가적인 상황 악화는 안 된다"며 대북 제재에 반대하거나 그 수위를 낮추는 데 주력한다면 위기 지수는 그만큼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7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직후, 강경 기조의 대북 결의안에 찬성한 바 있고 국제여론 역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대북 제재를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는 대북 제재가 포함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는 찬성하고 대북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 무력 사용은 힘들겠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부시 행정부가 무력 사용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해왔으나, 미국 안팎의 여건을 볼 때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이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미국이 또 다시 전쟁, 그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군사력을 보유한 북한과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한국·중국·러시아 등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 역시 미국의 무력 사용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힘들다. 가장 우려되면서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미국이 한반도 안팎에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일본과 함께 대북 해상 봉쇄에 나서는 것이다.
이미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실험 계획 발표 직후부터 대북 해상 봉쇄 방안을 강구해왔다. 또한 2003년 하반기부터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PSI 훈련을 실시해왔고, 이지스함 등 해군력도 대폭 강화한 상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대북 봉쇄의 조건과 환경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대북 제재까지 명시된다면 그 발걸음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만약 미국과 일본이 대북 경제제재 강화와 군사력 증강, 그리고 해상 봉쇄까지 나선다면 '전쟁불사론'을 감수하기로 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은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천명하면서 전시체제로 돌입할 것이 확실시된다.
상황이 여기까지 악화되면 한반도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달을 것이고, 이에 따라 우발적 충돌에 따른 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걷잡을 수 없는 위기 올 수도... 그러나 희망은 있다
그러나 희망의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전쟁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희망의 근거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고, 이는 문제 해결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전쟁이 사실상 민족공동체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의 입장에서 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선 정부는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막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꺼져가고 있는 6자회담의 불씨를 살려두는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이 미국의 제안으로 이뤄졌고, 북한 역시 "6자회담을 통해 얻을 것이 더 많다"고 여러 차례 밝혔던 만큼, 6자회담의 불씨를 살려두는 것은 극단적인 위기를 방지하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