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3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핵 실험을 예고한지 6일만에 실제로 실험을 강행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아직 핵실험 징후가 없다"고 여러번 강조했으나 상황은 벌어지고야 말았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6일 의장 성명을 통해 북한 핵실험에 대해 군사적 공격 가능성까지 암시하며 강력하게 경고했다. 그러나 이런 경고도 소용없었다.
북한은 3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대외적으로 발표했을 뿐 아니라 대내적으로 전 매체를 동원해 주민들에게 알렸다.
선군정치가 정권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북한에서 전 주민들에게 핵실험이 공지된 이상 미국의 극적인 태도 변화가 없는한 핵실험 강행은 수순이었던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대외적인 목적과 함께 대내적인 체제 결속의 의미가 짙다.
실험 날짜가 지난 199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총서기로 취임한 8일, 1945년 노동당 창건일인 10일 사이에 끼여있다.
9일 <조선중앙통신>은 "핵시험은 100% 우리 지혜와 기술에 의거해 진행된 것"이라며 "강위력한 자위적 국방력을 갈망해온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다"라고 강조했다.
100% 독자적인 핵개발에 성공함으로써 '강성대국'의 자부심을 주민들에게 심어주려는 의도가 보인다.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기획실장은 "핵실험은 북한 내부용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본다"며 "이 기회에 내부 결속을 더 강화하고 후계구도를 준비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미, 북한 공격할 병력이 없다…그러나?
지난 6일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은 "만약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이는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며, 북한이 국제사회의 요청들을 무시하면 안보리는 유엔헌장하의 책무에 부합되게 행동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라는 말은 군사조치를 취할 수 있는 유엔 헌장 7조를 원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유엔헌장하의 책무에 부합되게 행동할 것'이라는 문장은 헌장 7조에 따른 군사적 제재 조치를 강하게 암시하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이 군사 공격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15만명 이상의 미군이 배치되어 있다. 북한을 공격하려해도 일단 가용 병력이 거의 없다. 이라크와 달리 북한에 대한 공격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가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으나 군사 공격에 선뜻 동조할 것으로 예상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 핵을 용납하거나 미온적으로 대응할 경우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추진중인 이란도 핵 보유로 나갈 것이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국의 대북 군사 공격에 대해서는 현재 예단하기 힘들다, 특히 북한이 핵을 가진 상태에서 미국은 더 신중할 것"이라며 "그러나 미국이 북한핵을 잘못다루면 이란핵을 막지 못할 것이다, 이 점은 북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도 협상할수 밖에 없다"
반면 결국엔 미국이 북한과 협상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미국 내부에서 북 핵실험을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의 의견 대립이 심해질 것"이라며 "그러나 강경파들이 현실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 11월 중간선거를 거치며 연말까지는 협상에 무게가 실리도록 정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 실장은 "지난 9월30일 미 의회에서 통과된 국방수권법안에 따르면 대통령의 서명이 있는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대북정책 조정관을 임명하도록 되어있다"며 "이 사람은 과거 클린턴 행정부 때 윌리엄 페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리는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었고 이에따라 미국은 북한과 수교직전까지 갔다.
문제는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남북관계는 당분간 거의 파탄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이 군사적 공격은 현실적으로 할 수 없다고 해도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를 강화할 것은 분명하다. 남한에 대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남북한 비핵화선언이 무력화된 이상, 국내 여론이 들끓을 것이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유지는 현 정부에게 아주 부담스러울 것이다. 중국도 '끝까지 북한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북한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됐다.
왕광야 유엔주재 중국 대사는 지난 5일 "북한은 핵실험을 할 경우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며 "나쁜 행동(핵실험)을 한다면 누구도 그들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쁜 행동에는 보상이 없다'면서 북한의 핵폐기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거부해왔던 부시 행정부의 어법과 비슷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같은 경고도 가볍게 무시했다. 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핵실험 20분 전에 북한으로부터 사전 통보를 받은 게 고작이다.
'북한의 보호국'으로 불리는 중국이 분노할 만하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 붕괴를 방치하는 순간 중국은 미국과 압록강을 경계로 대치하게 되는 끔찍한 순간에 직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