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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캠프 페이지 전경
춘천 캠프 페이지 전경 ⓒ 오마이뉴스 선대식
지난 9월 24일, 반환 했거나 반환 예정인 29개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실태가 드러났다.

그동안 SOFA의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 A'를 핑계로 완강하게 공개를 거부하던 환경부가 일부 내용을 국회에 보고 한 것이다.

춘천에 있는 반환미군기지인 캠프 페이지(Camp Page)도 560개 토양오염 조사지점 중 185곳이, 지하수 71개 채취지점 중 10곳이 오염기준치를 크게 초과해서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언론은 캠프 페이지의 토양 오염정도가 심각해서 공장부지로 활용하기도 힘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55년부터 존재한 캠프 페이지는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 결과 지난 2004년 7월 전국의 14개 미군기지와 함께 우리 정부에 반환하기로 결정되었다.

춘천은 의암호를 비롯해 3개의 커다란 인공호수로 둘러싸인 '호반의 도시'로 여성스럽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유명한 도시다.

그런데 춘천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경춘선을 타고 춘천역에 도착하면 먼저 호수가 있는 멋진 풍광을 만나는 게 아니라 볼썽사나운 시멘트벽이 둘러친 군사기지와 훈련에 바쁜 아파치 헬기를 마주하게 된다.

20만평이 넘는 캠프 페이지는 춘천의 도심지 한가운데에 있어 도시공간을 기형적으로 왜곡하였고 캠프 페이지 주변지역 주민들의 삶을 파괴했다. 캠프 페이지는 춘천의 심벌인 의암호 가까이에서 시작해서 강원도청, 춘천시청, 겨울 연가 촬영지로 유명해진 '춘천명동' 등 구도심의 중심지역 사이에 있다.

장소로 보면 춘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춘천의 얼굴이 50년 넘게 '국가안보'때문에 아파치 헬기와 외국군대의 위용에 자기 모습을 찾지 못한 채 숨죽여 왔다. 2005년 9월 열린우리당 최성 의원은 캠프 페이지가 적어도 1987년 까지는 핵 기지였다고 폭로했다.

주한미군의 핵기능이 '주한병기지원분견대(WSD-K)'에 의해 통합 운영되었는데 WSD-K의 사령관은 서울의 용산기지내 핵 계획·작전사단(2462빌딩)에 사령부를 두고 있었지만 참모 대부분은 캠프 페이지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는 것을 보면, 춘천시민들이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핵무기에 저당 잡히면서도 일그러진 얼굴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기막힌 세월을 보낸 것이다.

2001년 11월 '춘천시민연대'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함께 캠프 페이지 주변지역인 근화동 주민 60여명의 헬기소음에 대한 청력반응, 스트레스 지수, 정신 심리적 상태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근화동 주민들의 건강상태는 다른 지역 주민보다 현저히 나쁜 것으로 드러났고 2003년 3월 근화동 주민 42명은 원고인단을 구성해서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 하여 1심에 승소,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004년 7월 캠프 페이지 반환 결정 이후 춘천시민들은 캠프 페이지 터에 춘천에 잘 어울리는 얼굴을 복원 하기위해 골몰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 도입 이후 중앙에 예속된 지역이 아니라 지역만의 색깔을 가진 독특한 자립적 발전의 길이 모색되고 있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대안적 삶을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지역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보아 춘천이 자신의 얼굴을 조각해 가는 과정은 '자치'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또 다른 시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군기지 환경오염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을 국정 목표로 삼고 있는 참여정부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지난 7월 14일 끝난 9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 결과를 보면 미군이 8개 항목 치유를 끝냈으니 미군은 할 일을 다 했고 우리정부는 이를 '믿고' 반환 받는 것을 합의하겠다는 내용이다.

SOFA에 규정되어 있고 정부 스스로 늘 주장해온 '오염자 부담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미군이 환경정화에 대한 성의를 보이고 있다며 미군의 입장을 수용 하려고만 하는 국방부는 반환미군기지 주민을 분권·분산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국가안보를 위한 영원한 희생자로 밖에 여기지 않는 듯하다.

캠프 페이지는 지난 6월부터 지하수의 기름을 제거하기 위한 정화에 들어갔지만 정화 방법 및 정화업체의 자격, 정화비용 문제 등으로 정화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확산되는데도 강행되고 있다. 그리고 환경부는 여전히 환경오염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 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고 행자부는 지방자치단체에 미군기지 반환지역의 개발계획을 조기에 완성해서 보고하라며 다그치고 있다.

'국방·외교'는 중앙정부의 고유권한이므로 참여정부는 '중앙정부'의 역할에 충실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빨리 확보하도록 해서 '협력적 자주'를 조기에 완성, '자주국가'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걸까?

어쨌든 중앙정부의 무원칙한 용기에 민주주의의 밑거름인 '지방자치'의 싹이 찬바람을 맞게 생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유정배씨는 '참여와 자치를 위한 춘천시민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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