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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겉표지 ⓒ 창비
두 명의 중학생이 지저분한 소파에 앉아 탁구대를 보고 있다. 주위에서는 공사 소리가 한창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들은 탁구대로 다가간다. 그러자 분위기가 변한다. 장면은 그대로인데 공사 소리 대신 기이한 소리가 들린다. 핑, 퐁, 핑, 퐁.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핑퐁다운, 탁구 치는 소리다.

탁구 치는 소리가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는 발상은 누가 할 수 있을까? 박민규다. <핑퐁>은 그렇게 시작한다. 탁구라는 소재를 본다면 자연스럽게 야구를 파트너로 삼았던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 사이 <카스테라>가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엉뚱함의 미학이 생동했던 <카스테라>, 그것을 기억한다면 <핑퐁>의 탁구가 그렇게 순순히 정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이다. 왕따를 당하는 두 아이가 우연히 만난 탁구대에서 탁구를 치더니 본격적인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배우는 내용이 좀 이상하다. '탁구'인지 '세계'인지 아리송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보충수업을 받는 아이들처럼 태연하게 그것을 배운다. 그 사이 점점 인생이 변한다. 왕따의 인생이 변한다고 해서 ‘인생 뒤집기’같은 그런 것이 아니다. 끝까지 왕따 인생은 계속된다.

그럼 무엇이 변한다는 것인가? 왕따의 주체가 바뀐다. 이들이 세상을 왕따시켜 버리는 것이다. 언제부터일까? 탁구공이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로 변한다. 엉뚱함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다. 인류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는 또 어떤가. 풍차를 거인이라고 외치며 달려갔던 돈키호테가 떠오를 지경이다.

<핑퐁>은 배신하고 있다. 누구나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를 예상하고 이야기의 결말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핑퐁>은 핑, 퐁 소리를 내며 그 모든 것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것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행간을 나누는 것이야 이미 박민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일이니 그러려니 할 수 있겠는데 핵심은 ‘다음 이야기’의 방향을 예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납작하게 생긴 것이 탁구대인가 하고 가까이 가보면 낙지가 튀어나와 검은 물을 찌익 하고 뿌린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핼리인가 싶어 걱정했다가 다시 보면 하얀 비둘기다. 하얀 비둘기라 안심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웬 탁구공이다. 크게 보이길래 가까이 왔나 싶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원근법이 반작용하고 안다. 그것도 안 보일 때야 한다. 안 보이는 순간에는, 이미 얼굴에 명중한 상태고 탁구공에 맞아 기절했더니 친절한 다수의 친구들이 쉬쉬하며 빌딩 옥상에서 내다버리고 있다. 한마디로 추측불가다. 적어도 <핑퐁>만큼은.

하지만 단순히 엉뚱함으로 치장한 것은 아니다. <핑퐁>은 중요한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꺼내들고 있다. 이 세상 어디선가, 어쩌면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부당하게 맞고 있다. 그럴 때, 다수는 가만히 있는다. 누군가는 또 억울하게 맞아죽고 있다. 그럴 때도 다수는 가만히 있는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다수인 척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그것은, 다수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핑퐁>에서 언급된 ‘전철’을 타는 남자의 고백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가 있다. 남자는 전철을 탄다. 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철 자체가 편한 건 아니다. 그건 고욕이다. 그러나 정신은 아늑하다. 당신 요즘 뭐하느냐는 질문이 없고 어디 가느냐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다수인 척 할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전철인 셈이다.

<핑퐁>은 다수를 향해 묻는다. '그래서 좋습니까?'라고. 묻는 <핑퐁>은 내처 스매싱까지 휘두르는데 그것이 꽤 강력하다. 원근법이 다르기에, 그래서 예측할 수가 없기에 받아내기가 힘들다. 게다가 다수의 기대를 배반하기에 다수인 척 하는 다수는 ‘받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받아내면, 묵직한 공을 받아낸 뒤에 손목이 얼얼한 것처럼 가슴 속이 얼얼해진다.

그렇다 할지라도 탁구대를 벗어날 필요는 없다. 이 탁구대와 <핑퐁>이야말로 다수인 척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위한 진실게임이라는 것을 알 테고 이윽고 다수가 아니어도 그들처럼 강력한 스매싱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그래서 핑, 퐁, 핑, 퐁, 울리는 소리에 귀를 막지 않는다. 오히려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핑, 퐁, 거리는 소리, 그게 바로 나갈 길을 찾는 중요한 단서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등록했습니다.


핑퐁

박민규 지음, 창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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