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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북한 문제 전문가들이 나와서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을 거론한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미쳤고’ ‘편집증환자’라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물론 부시의 외교정책이 실패한 것을 비난하기도 하고 향후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TV를 보면서 서울에 있는 특파원을 연결할 때면 솔직히 마음이 편치 못하다. 왜냐하면 비디오에 잡히는 격렬한 데모 장면과 보수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사람의 거침없는(?) 사나운 말, 그리고 화형식 등이 마치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학교에 갔다온 애들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편치 않은 심기를 드러낸다.
“엄마, 오늘 사회선생님이 수업하면서 북한의 김정일이 미쳤다고 말했어. 핵 실험을 했다고. 애들도 대놓고 북한을 심하게 욕하고.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이 나한테 와서 '넌 남한에서 왔지?'라고 말했지만 좀 씁쓸했어.”
"어느 쪽 코리아에서 왔냐?"
북한은 정말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나라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종종 이곳에서 실감한다.
맥아더가 묻힌 버지니아주의 노폭(Norfolk)에 있는 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안내를 맡고 있는 한 퇴역 군인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은 뒤 이렇게 말했다.
“남한에서 왔다고? 북한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남한? 그런데 무섭지 않았냐? 다른 사람들도 너처럼 무서워하지 않냐? 나는 무서워서 남한에 못 간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딸기밭에서 만난 어느 할아버지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해서 충격을 받았다.
지난 봄, 딸기밭에서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내게 할아버지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역시 “어느 쪽 코리아냐”고 다시 묻는 것이었다.
“당연히 남한.”
할아버지는 마침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하와이에 근무하고 있는 사위가 몇 년간 대구에 근무했다고 내게 설명을 했다. ‘대구’라는 어설픈 한국 말에 귀가 솔깃해진 내가 "사위 있을 때 한 번 오지 그랬느냐"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일본까지는 가 봤다. 하지만 한국은 별로 가보고 싶지 않았다.”
딸과 사위가 사는 한국을 굳이 마다한 이유를 묻자 할아버지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김정일이 무섭지 않냐? 그 사람은 미쳤고 럭비공처럼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다. 그런데 만약 한국에 갔다가 큰일(전쟁이라도 나서 미국에 못 돌아오는 상황)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냐. 한국은 일본과 비슷하지 않냐. 그러니 일본만 가봐도 되지 않느냐?”
물론 내가 만난 이런 특이한(?) 미국인들이 미국 일반의 정서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남한을 떠올릴 때면 그 생각 다른 한편으로 핵무기의 북한을 생각하고 있는 게 현실인 것 같다.
같은 '코리아'를 쓰고,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가진, 그래서 우리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인 북한에 대해 어떤 해법을 가지고 더불어 공존하는 법을 찾아야 할지 생각이 많은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