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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 시인
ⓒ 윤여문
"나는 'Korea'라는 단어를 보면 고은 시인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그가 신들린 듯 시낭송을 하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내 입장에선 한국과 고은 시인은 한 덩어리다. 그의 시는 여전히 안녕하신가?"

1990년대 후반에 '시인동맹(Poet's Union, 한국의 시인협회와 비슷한 단체)'의 회장을 역임했던 리처드 앨런은 기자를 만날 때마다, 오른 팔을 꼬아올리며 시를 낭송하는 고은 시인의 흉내를 내면서 그의 안부를 묻는다.

1년에 한 번 꼴로 '고은 시 낭송회'를 주선하는 로빈 이안슨 시인은 짧은 시 몇 편을 한국말로 낭송한다. 그 중의 한 편이 세 줄짜리 시 '아침이슬'이다.

1995년 호주에서 발간된 고은 시선집 <아침이슬(Morning Dew)>의 타이틀 시다.


여기 어이할 수 없는 황홀!
아아 끝끝내 아침이슬 한 방울로 돌아가야 할
내 욕망이여!

Ecstasy without word:
my craving must in the end revert
to being single drop of morning dew!

- '아침이슬' 전문


▲ 1992년 2월 시드니대학교에서 열린 '고은 문학의 밤'에서 고은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 윤여문
호주의 귀신들을 깨운 고은의 시낭송

고은 시인이 호주를 처음 방문한 게 1992년이니 햇수로 15년이다. 그후 두 번 더 호주를 방문했는데 매번 문학행사에 참여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그런데 시인 질 로렌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은의 호주 출현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왜 그런 얘기가 나왔을까?

1992년 2월, 시드니 대학교의 초청으로 호주를 첫 방문한 고은 시인은 교수회관에서 '고은 문학의 밤' 행사를 가졌다. 그는 호주시인들과의 첫 만남을 기꺼워하면서 자신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소개했다. 아슬아슬하게 통과해온 인고의 세월이었고 시대를 증언하는 작품들이었다.

거기까지는 여느 문학행사와 다름이 없었다. 문제는 다음날 호주작가협회 강당에서 열린 시낭송회에서 발생했다. 실내악연주 무용공연 등 우아한 축하순서가 끝난 다음 그날의 주인공인 고은 시인이 포도주병을 들고 단상으로 나갔는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괴성(?)이 강당의 천장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고은의 시낭송이었다.

강당을 가득 메운 호주시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강당은 쥐죽은 듯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고은 시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10여 편의 자작시를 신들린 듯이 낭송했다. 다음의 시로 넘어가기 전에 포도주 한 잔씩 들이키면서….

한글과 영어로 된 책자를 들고 차분하게 시낭송을 감상하려 했던 청중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 다음엔 시고 뭐고, 온몸을 쥐어짜내는 듯한 강렬한 몸짓과 지축을 울리는 듯한 고은의 음성에 다들 넋을 놓은 모습이었다.

마침내 시낭송의 순서가 끝나고 마이클 와일딩 시드니대 영문학부 교수(소설)가 나와서 다음과 같은 마무리발언을 했다. 처음 만나는 두 사람이었지만 죽이 척척 맞았다. 하긴 예술인들은 보통사람들과 다른 인종(人種)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했지만….

"오늘 고은 시인의 행사를 갖는 작가센터는 약 100년의 전통을 가진 옛 로젤정신병원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신병원 건물에 작가센터가 들어서자 예상했던 대로 여러 우스개들이 들려왔습니다.

'작가라는 위인들은 원래 약간 머리가 돈 사람들이라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게 여러 사람들을 위해 유익하다'라는 말이 사람들, 특히 기자들 사이에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왜냐면 앞으로도 작가들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게 뻔하며, 계속 금지된 사안에 문제제기를 하고, 수많은 골칫거리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곳 로젤정신병원에서 죽은 선배작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스마트, 아처 볼드, 프란시스 웹 등이 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동안 꿈쩍도 않더니 고은 시인이 나타나서 한바탕 굿을 하니까 라이벌이 나타났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 1997년 '한국문학의 밤, 시드니' 행사에서 호주원주민이 무용과 함께 고은의 시를 낭송하고 있다.
ⓒ 윤여문
출판과 동시에 매진된 영문 시선집 <아침이슬>

고은 시인의 호주데뷔는 문자 그대로 '스타 탄생'이었다. 그 결과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작가들이 초청되는 시드니작가축제(Sydney Writers' Festival)에 1996년 주빈으로 초대됐다. 아주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고은 시인은 96년 1월에 열린 시드니작가축제에 참가해서 더 많은 청중들 앞에서 한국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고은 선풍을 이어갔다. 1992년에 인연을 맺어서 개인적으로 고은 '왕팬'이 된 마이클 와일딩 교수는 때마침 호주작가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고은 시인을 적극 지원했다.

호주의 페이퍼 바크 출판사(Paper Bark Press)에서 출간한 영문 시선집 <아침 이슬(Morning Dew)>이 출간되자마자 매진되었고 아주 이례적으로 1년여 동안 4판까지 판매가 이어졌다. <아침 이슬>은 당초 한정판으로 계획되었는데 결국 6판까지 찍은 다음 절판됐다.

뿐만 아니라 호주의 최대 유력지인 <시드니모닝헤럴드>와 <켄버라 타임즈>에서도 고은 시인의 시와 함께 그의 시세계를 소개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서도 호주특파원과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한편 호주에서 발행되는 대표적인 종합문예지 <울리타라> <로드> 등은 다투어 고은 특집을 게재했다. 특히 <울리타라>의 편집주간 J.S.헤리는 2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평론을 통해서 고은의 시가 왜 호주에서 선풍을 일으키는 지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마이클 와일딩 교수는 "고은과의 만남이 호주시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특히 그의 밑도 끝도 없는 불교시가 역설적으로 막연하기만 했던 동양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고 불교가 궁극적으로 깨달음의 종교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평론을 멜버른에서 발간되는 문예지 <민진>에 썼다.

그는 이어서 "섬뜩할 정도의 80년대 저항시편들이 투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시적 품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랫동안 서정시를 써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호주 시인들이 마련한 고은 시 낭송회 모임
ⓒ 윤여문
"시는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만인보'에 소개된 한국서민들의 해학적인 삶을 통해서 한국정서를 미루어 짐작하고 있는 호주의 독자들은 만인보에 수록된 작품들이 보다 많이 영역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호주 국영방송 SBS-TV에서 'Book Show'의 진행을 맡고 있는 마거리트 스트리튼은 "96시드니작가축제에서 만난 고은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만인보중에서 한 편을 한국말로 낭송할 때 나는 영역본의 제목만을 읽은 상태였지만 그의 몸짓과 음성을 통해서 그의 시가 담고 있는 분위기를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 시를 영역본으로 읽고 나서 나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고 기뻤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서 "한마디로 그에게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기가 느껴졌다, 이 말은 그의 프로그램을 지켜본 시청자들이 재방송을 부탁해오면서 우편으로 보인 반응이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고은 시인이 출연했던 'Book Show'는 문화관련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재방송 됐다.

고은 시인의 시낭송과 특이한 몸짓은 호주시인들 뿐만 아니라 이곳의 연극인들에게도 화제가 된 바 있다. 호주최고의 셰익스피어 배우인 존 벨은 "내가 고은의 영역시편들을 낭송하면서 당한 낭패감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이어서 "딕슨 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의 시낭송을 보고 들으면서 열띤 호응을 보낸 반면 내가 똑같은 시를 영어로 낭송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그는 나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망가뜨린 시인이지만 나에게 '시는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스승"이라고 말했다.

호주는 전통적으로 문학활동이 활발하고 문학동호인도 아주 많은 편이다. 매년 5월에 개최되는 시드니작가축제를 기점으로 각주의 주도에서 문학축제가 계속해서 열리고 있다. 노벨상 수상작가를 포함한 전 세계의 유명작가들을 초청하고 있는 문학축제는 주립도서관의 주관과 기업들의 협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주정부의 특별한 배려를 받고 있다.

"자넨 시인이면서도 저놈들의 얘기가 안 들리나?"

▲ 지난 2001년 호주 D.H. 로렌스가 머물렀던 바닷가에서 포즈를 취한 고 시인.
ⓒ 윤여문
고은 시인은 메모광이다. 그는 여행할 때나 누구와 대화를 나눌 때, 대학노트에다 열심히 받아 적는다. 아침에 꺼낸 새 노트가 저녁 무렵이면 맨 뒷장까지 간다. 2001년, 행사를 마친 고은 시인은 기자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영국출신 작가 D.H.로렌스가 호주에 머물렀던 캥거루밸리를 찾아 나섰다.

D.H.로렌스는 소설 <차타레 부인의 사랑>의 노골적인 성적 묘사 때문에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판결을 받자, 호주로 도피해와서 캥거루밸리에 은거하며 <캥거루>라는 유명한 소설을 썼다.

그 날도 고은 시인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풍경을 보면서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문득 그의 대학노트가 궁금해졌다.

"선생님, 뭘 그렇게 계속 쓰세요?"
"음, 저 해변의 나무들이랑 새들이 자꾸만 말을 건네 오잖아. 난 그냥 받아쓰기만 하는 거야. 자넨 시인이면서도 저놈들의 얘기가 안 들리나? 그런데 저 나무가 내 오줌을 먹고 싶다고 하네. 차 좀 세워라."

물아일여(物我一如),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에 이른 고은 시인의 일탈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 꾸밈이 없고, 그가 살아온 신산(辛酸)했던 생의 무게가 가감 없이 실리기 때문이리라.

고은 시인을 맞는 호주시인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다는 것. 그의 거침없고 천진스런 행동과 꺼질 줄 모르는 문학에의 열정이 파란 눈빛의 시인들을 15년 동안 사로잡는 듯하다.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을 기자 이상으로 학수고대하던 로빈 이안슨 시인한테서 오늘 아침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아쉽다, 그러나 고은 시인의 위대함은 아무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자는 고은 시인이 수상실패의 소식을 접하고 썼다는 짧은 글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주었다. 고은 시인답지 않은가.

"내 문학의 정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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