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라 이 땅 한반도에 피끓는 투쟁이 있는 한 해방의 그날은 오리라... 해방의 그날을 위해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핏빛 눈초리로 적들을 응시하며 흐르는 피를 씻어주고 서로를 사랑하는 처절한 마음으로 적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박자."(1986년 10월 31일 건국대 사회과학관 벽서 중에서)
1986년 10월 28일 오후 3시 20분. 전국 26개 대학 2000여 명이 건국대에 모여 반외세 반독재 시위를 벌였다. '민족해방가'가 울려 퍼지고 독재정권 허수아비가 불탔다. 그와 동시에 경찰의 SY44(다탄두 연발 총류탄) 최루탄 발사기가 시위대를 향해 불을 뿜었다.
건대 항쟁이 막이 오른 것이다. 경찰의 해산을 피해 본관, 학생회관, 사회과학관, 이과대학, 중앙도서관 등으로 몸을 숨긴 학생들이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31일 오전 8시 40분, 작전명 '황소 30'. 헬기를 띄우고 경찰이 진압작전에 나섰다. 90분 만에 상황 종료.
사흘 밤, 나흘 낮 66시간 50분 동안 진행된 이 항쟁으로 1447명이 연행되고 이 가운데 1288명이 '공산혁명분자'로 몰려 구속됐다. 이듬해 6월 항쟁의 불씨가 된 건대항쟁은 우리나라 학생운동 사상 최대의 공안사건으로 기록됐다.
항쟁 20돌인 올해, '10·28 건대항쟁 2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수석위원장 김석 건국대 교수) 주관으로 다채로운 기념사업이 건국대에서 펼쳐진다.
18일 오후 7시 건대 항쟁의 역사적 의의를 뒤돌아보는 공개토론회가 항쟁의 주역들이 참가한 가운데 학생회관에서 열린다. 당시 서울대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자민투) 위원장으로 항쟁을 이끌었던 정현곤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사무처장이 주제발표를 한다.
또 노래패 출신 선후배들이 함께 민중노래를 부르는 '노래로 보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 문화제'가 26일 오후 6시 노천극장에서 펼쳐진다. 28일에는 오후 3시부터 20돌 기림식과 현장 체험, 사진전 등이 펼쳐진다. 준비위원회는 백서와 20돌 기념 자료집도 펴낼 예정이다.
김희준 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건대 항쟁은 언론에 의해 '공산혁명분자의 난동'으로 매도되면서 처절하게 끝이 났지만 이후 6월 항쟁의 불씨가 되었다"고 설명한 뒤 "군사독재와 외세의 폭압 속에서도 민주화 기치를 높이 들었던 건대 항쟁의 현재적 의미를 되살리고자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