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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제2권.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제2권. ⓒ 휴머니스트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제2권은 '고전소설'과 '고전시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옛소설 편에는 김시습의 <금오신화>(김종철의 글), 허균의 <홍길동전>(신병주의 글), <유충렬전>(이창헌의 글), 김만중의 <구운몽>(송성욱의 글), <토끼전>(정출헌의 글), <춘향전>(서지영의 글), <완월회맹연>(한길연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이 중에 <완월회맹연>이 낯설다. 이른바 오늘날의 <토지>나 <태백산맥> 이전에 있었던 대하소설의 원류란다. 무려 180권 180책으로 오늘날의 소설 분량으로 환산하면 족히 20권이 넘을 분량이라고 한다.

<완월회맹연(玩月會盟宴)>은 '달밤에 모여 잔치를 벌이면서 맹약을 한다'는 뜻으로 주된 줄거리는 이 맹약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소설 역시 조선시대의 유교질서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한 듯하다. 충, 효, 열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렇다.

그러면 이 소설의 작가는 누구일까? 현재 안겸제의 어머니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재삼이 지은 <송남잡지>의 남정기 조에 "'완월'은 안겸제의 어머니가 지은 것인데, 궁중에 흘려보내 명성과 영예를 넓히고자 했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장헌의 딸 장성완이 남주인공 정인광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낯가죽을 벗기고 귀를 베어내어 한 덩이 육괴(肉塊)가 되는 장면은 섬뜩하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신의를 지켜 정인광과 혼인한 장성완은 오히려 혼인 후 더한 고통을 당한다. 정인광이 그의 부친을 모함하려 했던 장인, 즉 장성완의 부친을 이유로 들어 죄 없는 아내를 박대하고 심지어 자결까지 강요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사위가 처가에 들어가 사는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이 일반적이었으나, 그와는 달리 후기에 이르면 며느리가 시집에 들어가 사는 친영례(親迎禮)가 보편화 됨에 따라 여성들은 상당한 고난을 겪는다. (중략) 이러한 혼례제도의 변화 속에서 친정과 시댁의 당파(黨派)가 서로 다르기라도 하면, 여성들은 시댁에서 원죄의식을 가지고 고통스럽게 지낼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시가에서는 '죄인'이 되는 것이다. 장성완은 바로 이런 처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 (153~154쪽)

옛노래 편에는 월명사의 '제망매가'(정재영의 글), '청산별곡'(임주탁의 글), 이황의 '도산십이곡'(한형조의 글), 정철의 '관동별곡'(조세형의 글), 이정보의 사설시조(신경숙의 글), '아리랑'(조해숙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이황의 '도산십이곡'은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해석이 돋보인다(실제로 이 글을 쓴 이는 철학과 교수다). 이를테면 이황의 시와 시조에서 그의 삶의 구도와 철학 세계를 찾아본다.

그는 자연을 빌려, 산수를 빌려 자신의 내면 풍경을 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면의 완성을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216~217쪽) / 시를 지으려면, 우선 "창자 속의 속되고 지저분한 비린내와 기름기를 씻어내야 한다." 이는 또한 사람 되는 공부의 기초이기도 하니, 그런 점에서도 시와 철학은 둘이 아니다. (217쪽) / 수련을 오래 계속하면, 마음이 점차 순일(純一)해지고, 오고감에 걸림이 없어진다. 그 궁극처에서 물아무간(物我無間), 나와 남 사이의 구분이 엷어진다. 이황은 주자학에 입각하여 나와 너, 주체와 대상 사이가 서로 호응하고 간격이나 갈등이 없는 경지, 즉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상으로 설정했다. (218쪽)

그러나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황의 '도산십이곡'이 그리 친근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시로 읽기에는 텁텁하고 메마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의 글을 읽고 보니 새로운 맛이 이는 듯싶기도 하다. 이때의 맛은 시와 삶의 일치에서 오는 맛이거나 직서적 술회에서 비롯하는 돈독함에서 오는 맛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황의 시조는 자신의 삶의 기록이자 철학적 언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산(靑山)은 엇뎨하야 만고(萬古)애 프르르며,
유수(流水)난 엇뎨하야 주야(晝夜)에 긋디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호리라.
- '도산십이곡' 11


이정보의 사설시조는 여느 사대부들의 시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이정보는 당시 대제학까지 지낸 사람이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서민적이고 세속적이다. 신윤복의 풍속화가 있었다면 시조에는 이정보의 풍속시가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정말 이 사설시조의 작가가 이정보가 맞는가 할 정도로 의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의심의 눈길에 대해 "정작 윤리적 시선을 가지고 원작자를 의심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우리"이며 "조선시대 사대부보다 우리의 시선이 훨씬 경직된 채 작품과 작가를 대해왔다"고 말한다.

이정보의 작품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작품들은 시정바닥의 인물군상들을 노래한 것들이다. 그의 사설시조를 감상한다는 것은 바로 18세기 시정풍속과 마주하는 일이다. (252쪽)

그럼 이정보의 사설시조 한 편을 감상하여 보자. 이 작품에 대하여 필자는 이 시조에 등장하는 '중놈'과 '사당년'의 과도한 모션은 이정보가 발견한 하층민 삶 안에 자리한 생의 활력이라고 말한다.

중놈이 젊은 사당년을 얻어 시부모께 효도를 그 무엇을 하여 갈꼬.
송기떡 갈송편과 더덕편포 천초자반 뫼으로 치달아 시금치라 삽주고사리 그런 멧나물과 들밭으로 내리달아 곰달래 물쑥 게여목 꽃다지와 씀바귀 잔다귀 고돌빼기 두루 캐어 바랑에 꾹꾹 넣어가지, 무엇을 타고 갈꼬.
어화 잡말 한다, 암소 등에 안장 놓아 세삿갓 모시장삼 고깔에 염주 바쳐 어울려 타고 가리라.


필자는 다른 몇 편의 사설시조들을 추가로 예시하며 이정보 사설시조의 매력은 '솔직함'이라고 덧붙인다. "자신의 내면과 정직하게 마주하고, 노래할 수 있는 솔직함"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고전소설이나 고전시가를 오늘의 시선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시대로 훌쩍 뛰어넘어가서 현대인의 편견과 사견을 벗어나 작품 속에 담긴 그대로 작품 그 자체에 나타난 풍모와 풍경 그대로를 들여다볼 필요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김종철 외 12인 / 펴낸날: 2006년 9월 18일 / 펴낸곳: 휴머니스트 / 책값: 1만 2000원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1 - 고전문학上 신화.민담.여행기

김명호 외 지음, 휴머니스트(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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