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여성신문
[김미량 기자] 산, 들, 바다 그리고 넉넉한 농민의 품성까지 배어 있는 곳이니 그저 부지런하기만 하면 먹고살 수 있다는 땅 전북 부안. 이 같은 소문이 솔솔 전국으로 퍼져나갔는지 부안에는 도시에서 귀농하고자 찾아오는 외지 사람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이곳 부안에서 '여성농업인센터'를 운영하는 임덕규(41) 대표 역시 도시 출신이다. 16년 전 농민운동을 하겠다며 당찬 포부를 갖고 농촌으로 들어왔지만, 그는 정작 '농민이 되는 법'을 배우며 행복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이고 있다.

어린이집, 방과 후 공부방, 여성농민상담센터, 이주여성 교육을 비롯해 도·농 교류사업까지 여성농업인센터는 말 그대로 종합복지관의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02년 지원 하나 없이 문을 열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지역민의 신뢰를 얻기까지 그는 여성 농업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믿음으로 지탱해 왔다. 해야 할 일에 비해 자금도 인력도 늘 부족하지만 발전 가능성을 믿기에 임 대표는 주 7일 근무하는 현재의 생활을 '보람'이라고 말한다.

수배자의 몸으로 귀농... 이젠 당당한 부안 농민

"왜 부안을 선택했냐고요? 이유는 간단해요. 수배자는 도망 다닐 때 절대 연고가 있는 곳으로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 철칙이죠. 부안은 저와 어떤 관계도 없는 곳이었거든요."

서울대 영문학과 86학번인 임덕규 대표는 8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전대협 농민분과장을 지내면서 결국 수배자의 명단에 올랐다. 부안에 발을 들이고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누에치기. 벌레라면 지독히도 싫어했던 그는 이때 정말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누에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농업은 생명을 키우는 직업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이라고요."

임 대표는 부안에 내려온 이듬해 같은 학교 동기생이었던 유재흠씨와 결혼했다. 역시 귀농을 꿈꿨던 남편은 정미소에서 쌀을 지고 나르는 일도 기꺼이 맡았고, 임 대표는 12마지기 밭을 혼자 매면서 농촌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이웃들은 그를 보며 '정말 독하다'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들 부부를 부안 농민으로 받아들였다.

그동안 벼와 콩, 보리, 밀 등 논·밭 농사를 두루 경험해본 임 대표 부부는 현재 지역 80여 가구와 함께 5년째 친환경 벼 재배 농법을 실현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2002년 여성농업인센터를 시작하면서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이 가장 아쉽다는 임 대표는 텃밭에서 고추, 참외, 상추, 방울토마토 등을 재배해 센터 어린이집 아이들의 먹거리로 내놓는 것으로 대신 위안을 삼고 있다.

여성들이 기피하는 건 농업이 아닌 농촌사회

농촌 사회에서 여성으로 생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그는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임 대표의 남편이 자연스럽게 설거지를 도와주고,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두고 주민들은 '이상한 여자가 이사왔다'며 눈총을 주기 일쑤였다. 그는 "여성들이 기피하는 것은 농업이 아닌 농촌 사회"라고 단언한다.

농촌에서 여성의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에 비해 권리는 제자리걸음이다. 농업의 생산 형태는 대부분 가족형이다. 이 경우 수매 대금은 집안의 가장 어른 즉 시아버지에게로 간다. 부부농업에서는 당연히 수입은 남편 몫이다. 하지만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들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아직도 평등부부 얘기만 꺼내도 과민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임 대표는 "농촌에 양성 평등적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여성들은 농촌에서 자신의 비전을 찾을 수 있고, 농촌은 '여성'이라는 인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그는 여성 농민의 전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 대표는 "여성들의 경우 1년에 2박3일 정도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어려운 현실을 바탕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동시에 "모든 교육장에는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시설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7명으로 시작 센터 건립... 주민들 사이 인기 시설로

여성농업인센터를 세우는 일은 그에게, 또 지역 여성들에게는 매우 절실한 일이었다. 보육, 상담, 여성 농업인들의 커뮤니티 형성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임 대표는 좋아하는 농사도 잠시 미뤄두고 센터 건립에 몰두했다. 정부 지원만 받으면 될 것이라며 무작정 시작했는데 일은 처음부터 간단하지 않았다. 2002년 4월 센터를 개설했는데 정작 지원은 9월부터 가능했던 것. 지원 비용도 인건비가 전부인 터라 공간을 마련하는 것 등 세세한 모든 일이 그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센터 건립을 위해 참여했던 여성 7명이 모두 빚을 얻어 돈을 마련하고, 정식 지원이 되기까지 자원봉사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두 명씩 손을 들고 나가더군요."

그에겐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센터는 근방 3개 면 주민과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시설 중 하나가 됐다. 최근에는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읍내에서 영어교사까지 초빙했다.

"지원은 적은데 자꾸 욕심을 내니 교사들 복지에 너무 무심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센터는 결국 지역을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는 향후 센터를 지역 여성 농민들이 주축이 되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주 여성 문제 같이 고민... 도·농 교류프로그램도 운영

현재 부안 인구 6만3000명 중 이주 여성이 300여 명에 달한다. 임 대표는 이들을 위해 매주 일요일 '한국어 교실'을 비롯해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농촌이 워낙 보수적인지라 한국인 며느리들도 대접받기 어렵다 보니 이주 여성들은 폭력과 폭언 등에 더 쉽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임 대표는 이 문제는 이주 여성들이 한국말을 더 잘하고, 지역민들이 며느리들의 나라와 문화에 대해 이해할 때 풀 수 있다고 믿는다. 굳이 일요일을 내어 주 7일 근무를 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확신에서다.

센터는 '도·농 교류' 프로그램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마련한 '우렁이 잡기' 행사에는 무려 300여 명이 참가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깨끗한 논에서 우렁이 잡는 재밌는 놀이에 참가했던 도시 사람들은 이후 직거래 고객이 되었다. 또 경기도 과천의 어린이집과 진행하는 상호 방문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도시와 농촌은 서로 다른 공간에 사는 낯선 사람들이 아니에요. 함께 어우러져 산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임 대표의 얼굴엔 확신으로 가득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프로필

임덕규 대표 1998~2000년 전북여성농민회연합 정책부장/ 2000~2003년 APWLD(아시아태평양 여성·법·개발에 관한 포럼) 여성농민분과위원회 위원/ 2002년 농림부 장관 표창/ 2004년 여성가족부 ‘농업인력육성 정책의 성별영향평가’ 공동연구원/ 2005년 부안교육장상 표창/ 현 전국여성농업인센터협의회 사무국장/ 부안군 여성농민회 부회장/ 전북여성농민회연합 사무처장

댓글

(주)여성신문은 1988년 국민주 모아 창간 한국 최초의 여성언론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