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9일 핵실험을 했고 14일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됐다. 일단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코너에 몰렸다. 그러나 현재까지 가장 이익을 본 쪽은 북한이다. 북한 핵에 당장 군사공격을 실시할 것 같았던 미국은 중국·러시아의 반대(당연히 이를 미리 상정했을 것이다)로 경제제재로 수위를 낮췄다.
경제제재 효과를 극대화하는 화물 검색도 강제가 아닌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 각국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결국 북한은 현재 핵 보유국임을 묵인받은 상황이다. 지난 9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보유 자체보다 제3국이나 테러단체에 핵을 이전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이 대북 지원과 남북 경협을 다 중단해도 중국과 북한의 교역로 13개가 열려있는 한 김정일 정권의 붕괴는 힘들다. 지난 1991년 걸프전 뒤 유엔은 이라크에 대해 10년넘게 경제제재를 했지만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다. 미국 바로 밑에 있는 쿠바는 50년 넘게 버티고 있다.
물론 1990년 중반 수백만명이 굶어죽었던 '고난의 행군'이 북한에서 되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은 인민들이 하는 것이지 김정일이 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공격 없이 경제제재만 지속된다면 북한은 일본까지 사정권에 넣는 노동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능력을 갖출 시간을 벌 수 있다. 이에 성공한다면?
이제까지 대북 군사행동은 직접 피해를 입는 한국과 중국이 반대했다. 그러나 핵탄두를 탑재한 노동미사일이 등장한다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악몽을 겪은 일본이 쉽게 군사행동에 동의할 지 의문이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미국에 의한 군사 공격을 반대할 나라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불량국가 지도자들에게 주는 학습효과
북한 다음으로 이익을 본 쪽은 일본이다. 일본 보수세력의 정치적 입지는 더 강화됐다. 이미 43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핵재처리 시설까지 갖춘 일본은 핵무장까지 넘 볼수 있다. 물론 미국이 핵 비확산 차원에서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영국핵이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것처럼, 중국과 북한핵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핵을 용인할 가능성도 100%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보수 정치인 가운데 일본 핵무장을 지지하는 발언이 가끔 나온다.
다음은 손해를 본 쪽이다.
우선 미국이 손해를 봤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을 최고의 외교·안보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라크를 공격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는 대량살상무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부시가 후세인을 잡는데 한눈이 팔린동안 김정일은 핵무기를 만들었다.
미국은 그들이 멸시했던 이른바 '불량국가'들에게 큰 교훈을 줬다. 불량국가의 지도자들은 '만약 사담 후세인이 이스라엘을 사정권에 넣는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고 있었다면 공격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핵실험을 했는데도 바로 공격당하지 않는 북한이 증명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은 핵 확산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핵 확산에 가장 기여한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보유를 묵인했다. 중국을 견제하기위해 인도의 핵을, 대 테러 전쟁에 협조한다는 이유로 파키스탄의 핵을 인정했다.
가장 손실을 입은 나라는 한국이다. 포용정책을 유지하든 포기하든 한국 정부는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유지할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유엔 결의 또는 미국의 압력과는 별개로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개성공단은 더 이상 추가분양을 할 수 없다. 시범단지의 15개 기업만이 가동되는 '극 소규모 공단'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금강산도 관광객 수가 계속 줄어들 것이고 현대아산도 장기적으로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핵무장을 한 북한을 상대로한 남한의 재래식 군사력 증강은 별 의미가 없다. 방법은 두가지다. 남한도 핵무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의 강한 반대에 부닥쳐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1992년 한국에서 철수한 미군의 전술핵무기를 다시 들여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4일 <워싱턴포스트>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지난 12일 "미국 외교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에 있다"고 언급한 점을 들어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은 아주 적다고 지적했다. 실제 1992년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철수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위한 명분을 쌓기위한 것이었다.
중국은 매 말리는 시누이?
큰 손해를 봤지만 한국보다는 약간 덜한 쪽이 중국일 것이다. 후진타오의 간곡한 만류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함으로써 중국의 체면이 심각하게 깎였다는 분석이 주류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중국은 그동안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동북아외교 무대에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북 핵실험으로 6자회담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대결을 하든 협상을 하든 앞으로 모든 것은 결국 북·미 양자간의 관계로 좁혀졌다.
6자회담 공간에서 중국이 누렸던, 최소한 '동북아 외교 부통령급' 지위는 이제 박탈당했다. 한국 속담에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6자회담이 질곡을 겪으면서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딱 시누이에 해당한다.
일부 외신 보도에 의하면 북한은 핵실험 사실을 러시아에는 2시간 전에 통보했고 중국에는 20분 전에 알렸다. 20분이나 2시간이나 시간상 큰 차이는 아니지만 1등이냐 2등이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물론 중국이 정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북한을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960~1970년대 중·소 대립이 한창일 때 북한은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왔다갔다하는 등거리 외교로 생존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을 끊었을 때 세계 최대의 자원 대국인 러시아가 이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가? 압록강에 주한 미군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 붕괴를 꺼려한다는 상식이 맞다면, 러시아는 두만강에 주한미군이 나타나는 것에 무관심할까?
애초 유엔 결의안에 군사적 제재를 넣으려던 미국에 반대했던 나라에 중국 뿐 아니라 러시아도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가 북 핵실험의 성공 여부에 의문을 표하고 있을 때인 지난 10일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북한의 핵실험 폭발 규모는 5~15kt에 이른다, 북한이 9번째 핵보유국이 됐지만 국제사회는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려 한다"고 말했다.
'통일 한국'은 중국과 대립할 가능성 높아
1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홍콩의 시사주간지 <아주주간>은 최신호에는 북 핵실험을 분석하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등장하는 베이징의 한 군 소식통은 "북중 접경의 영토분쟁은 항상 잠복해 있는 문제"라며 "김정일 심중의 향후 전략적 동맹국은 미국·러시아·일본·중국 순이다, 어느날 갑자기 미국이 북한과의 양자회담 개최에 동의하게 되는 날 북한은 어느 때라도 중국을 팔아치우고 미국의 앞잡이로 제2의 베트남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 군 인사의 발언이지만 중국의 북한(또는 한민족 전체에 대한) 불신의 일단이 드러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외교의 최고 우선순위를 미국에 두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중국은 북한 붕괴로 인한 부담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이 알지못하는 사이에 이뤄지는 북·미 사이의 극적 타협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북한을 포기한다면 한반도는 아마 통일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민족 전체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 중국에게 접수되는 시나리오에 비교하면 그래도 차악(次惡)일 수 있다. 물론 최선은 평화적 통일이다.
통일된 한반도는 미국이 아닌 중국과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영토적 야심은 없지만 중국은 간도 문제 등 영토 문제가 끼어있다. 이런 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북핵 실험으로 최대의 적자를 기록한 쪽은 중국이 될 수 있다.